금요일에 있을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사무실에서는 전체 진행 순서를 정리하고 또 당일 행사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포스터를 만들고 행사 마지막에 보여줄 한국 영화를 결정하기 위해 구글 설문을 통해 후보작 다섯 개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택시 운전사>, <국제시장>, <장화 홍련>, <클래식>, <곡성>, 이렇게 다섯 편을 아이들에게 제시해 주고 보고싶은 영화를 선정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의 아픈 현대사인 6ㆍ25 전쟁과 이어진 가난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순정 영화, 그리고 공포영화들이다.
3학년 교실에서는 행사에서 노래를 부를 아이들이 노래 연습을 하고 있으며 2학년 교실에서는 춤 연습이 한창이다. 점심을 먹고 2학년 교실에 가 보니 2학년 학생 쏙리와 마니, 그리고 쏘다위가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몸짓들이 제법이다. 박수를 치니 조금은 쑥쓰러워한다. 이어서 3학년 니가 춤을 춘다. 몸동작이 몹시 과격하면서도 흐름이 있다.
3시가 좀 넘은 시간 사회를 볼 3학년 쓰레이로엇과 2학년 쏘피아가 사무실에서 진행 대본을 놓고 의논을 하고 있다. 먼저 쓰레이로엇이 한국어로 말하면 이어서 쏘피아가 크메르어로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쓰레이로엇이 만든 초안을 어제 내가 약간 수정을 했고 수정한 대본을 보파 선생님 도움으로 캄보디아어로 바꾸었다. 두 명은 그렇게 만든 시나리오를 두고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역할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기에 두 명 모두 정성을 들이고 있다. 기대가 된다.
세 시 조금 넘어 시작한 연습이 7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어제 쓰레이로엇이 가져온 시나리오를 내가 조금 수정을 해 주었는데 오늘 쓰레이로엇과 쏘피아가 같이 연습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고칠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수정한 원고는 내가 봐도 너무 재미가 없고 그냥 의례적인 멘트에 불과했다. 그것을 재기 넘치는 장선생님이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고친 대본을 보파 선생님이 크메르어로 수정을 해야 하니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고쳐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날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내가 너무 쉽게 생각을 한 모양이다. 좀더 공연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했다면 오늘 시간이 적게 걸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모두에게.
어떤 일은 준비하는 과정이, 그 시간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종일 사무실이 분주하다. 내일 한국어학과 행사에 필요한 달고나를 만드느라 사무실에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가스불의 열기 때문인지 에어컨을 켜 놓아도 시원하지가 않다. 그래도 달고나보다 더 단 아이들과 선생님들이다.
달고나는 어제 시험삼아 몇 개 만들어보았다. 나도 달고나 만들기에 참여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몇 개를 실패하고 나서 겨우 한두 개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렸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는 4학년 몬타이, 3학년 스레이디와 같이 몇 개 만들어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200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많은 양을 어떻게 만들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늘은 오전부터 2학년이 중심이 되어 달고나 만들기를 하고 있다. 보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달고나 만들기를 하면서 한국어 문화 수업을 하는 것이다. 쏙리, 릅, 마니, 엠 완나, 스레이돔이 먼저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는 3학년 수업.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어제 달고나 만들기에 참여했던 스레이디를 사무실로 보냈다. 달고나 만들기 시범을 보여주고 다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스레이디는 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로 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가 보니 같이 달고나를 만들고 있는데 무척이나 진지하다. 어느덧 달고나 만들기에 4학년 몬타이가 결합해 있고 또 2학년 중에서도 몇 명이 와서 같이 만들고 있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오니 1학년 학생도 사무실에 와서 달고나 만드는데 손을 거들고 있다. 피싸이, 푸엉, 그리고 레악싸다. 이들은 두 시가 될 때까지, 내일 행사 리허설 때문에 공연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모두 빠진 뒤에도 남아서 계속 달고나를 만들고 포장을 했다. 참 대단한 아이들이다.
두 시, 뒤편 건물에 있는 대강당 모하노코 홀에 가니 출연진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해맑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바탐방대학교에서는 따로 축제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일곱 달 정도 생활했지만 캄보디아 음력 설날인 쫄츠남 때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건 기념식이었지 축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기념식을 할 때 캄보디아 전통 공연을 짧게 하고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모두 야외에 나가 춤을 췄다. 비록 축제라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총장 부부와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이 큰 원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번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는 외국어학부 다섯 개 학과가 같이 진행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고 들었다. 영어과, 중국어과, 태국어과, 프랑스어과, 그리고 한국어학과. 이 다섯 학과가 한 자리에 모여 각 나라의 문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처음 기획했던 행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행사 준비를 하기 어려웠던 학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우리 학과는 행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데는 많은 힘이 든다. 한국에서는 대학 축제를 학생회 중심으로 기획하고 운영을 한다. 교수들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예산 계획 수립부터 축제 일정, 행사의 구체적 내용 설계와 진행을 모두 학생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번처럼 한국어학과의 날이라 이름 붙이고 그 행사를 학생들에게 기획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 학생회가 제대로 구성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고 아직 한국어에 서툰 학생들, 한국의 문화라고 해 봐야 K-Pop이나 K-Drama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많은 부분 교수들이 기획을 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이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시간이 지나 이곳에서도 대학생들 스스로가 학생회를 조직하고 또 자신들의 축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사실 축제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학과의 작은 행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즐겼다. 무대에 올라가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빈 교실에서 춤과 노래 연습에 푹 빠져 있었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어떤 아이들은 3학년 교실에서 목이 아프도록 노래 연습을 하고 어떤 아이들은 2학년 교실에서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춤 연습을 했다. 그리고 사물놀이를 하는 학생들은 주 2~3회 모여서 같이 연습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시간을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과정을 즐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친구들 앞에서, 그리고 선생님들 앞에서 자신을 보일 수 있는 기회라 그들은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일 행사가 어떻게 진행이 되든 이번 기획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 즐길 수만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평을 한 자락 더 넓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일 테니까.
두 시부터 강당에 모여 리허설을 한다고 했지만 정작 세 시 반이 되어서야 리허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행사 진행 순서와 관련하여 강당 음향 담당자와 의논을 해야 했으며 아이들이 부를 노래에 맞춰 반주 음악을 준비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춤을 추는데 사용할 음악 역시 미리 말을 해 놓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그래도 세 시 반에 시작한 리허설은 다섯 시 정도에 마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때까지 아이들은 달고나 만들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아이들 역시 축제의 주인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4학년 학생인 몬타이, 이번 행사에서 3학년인 소캇과 같이 춤을 추기로 한 몬타이, 리허설 마치자마자 다시 달고나 만들기에 매달린다. 이제 완전체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학생들이 모여 같이 달고나를 만든다. 한 아이는 가스 불 위에서 설탕을 녹인다. 다른 아이는 녹은 설탕에 소다를 섞어 부풀린 다음 판에 부어준다. 옆에 있는 아이는 그것을 약간 식혀 하트 모양이나 세모, 네모, 별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달고나를 만들 수 있도록 틀을 잡아 놓는다. 그렇게 해서 달고나가 완성이 되면 비닐 봉지에 포장을 하는 아이가 있다. 그들이 이렇게 만든 것이 벌써 150여 개나 된단다. 그 작업은 저녁 일곱 시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아이들 옷을 입혀 보았다. 전임자가 사물놀이 복장 일색을 다 갖춰두었기에 찾아서 입어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처음 입어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인지라 고름 매는 것부터 행전 차는 것까지 하나하나 손을 봐 주어야 했다. 다행히 장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옷 입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또 매무새까지 손을 봐주어 쉽게 입혀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조끼가 있어 삼색띠는 허리에 두를 빨간색 하나만 매기로 했다. 아이들이 옷을 입고 나서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복도에 나가 뒷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그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사물놀이 가락이 어떤 모습으로 연주될지 모르겠지만 옷을 차려입고 무대에서 공연을 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좋다.
“축제는 공유와 연대를 기본으로 하여 묵은 감정을 발산하고 배설하는 집단 행위이다.” 한창훈 작가가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것으로 한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럼 우리가 이번에 한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는 축제라 볼 수 있을까? 한국어학과의 날이라는 행사 주제만 놓고 보면 축제라 부르기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시간에 아이들이 보인 몸짓을 보면 분명 축제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공유와 연대’는 행사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행사 당일까지 아이들이 보여준 것이기에 그 자체가 축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여섯 시 반, 집을 나와 장선생님과 같이 툭툭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오늘 풍물 공연을 하는 학생들을 일곱 시까지 사무실로 오게 해서다. 행사는 여덟 시에 시작이 되지만 다시 옷을 입어보고 장단도 다시 맞춰봐야 해서 일찍 오게 했다.
일곱 시가 되기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올라가니 벌써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아이 몇 명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제 옷을 입어보고 난 뒤에 자신의 옷은 자기가 잘 챙겨두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찾아서 입고 있었다. 약간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옷을 다 입은 후에도 리응이 오지 않아 먼저 옷을 입은 학생들은 행사장으로 가서 장단을 맞춰보도록 했다. 잠시 후 리응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오기에 옷 입는 것을 도와주고 같이 강당으로 갔다. 강당 입구에서 1학년 학생인 리야, 쯘렝, 그리고 까니까를 만났다. 그들은 방명록을 펼쳐놓고 오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이름과 소속을 적게 하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강당으로 들어가니 사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무대 앞 한쪽에서 작은 소리로 악기를 치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는 태권도 팀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춤을 추는 아이들 역시 한쪽에서 작은 소리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리 긴장된 모습은 아니었다. 곧이어 무대 위 화면에는 한국어학과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오고 곧이어 재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이들, 행사 준비를 하거나 행사에 함께하기 위해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아는 사람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특히 뽄러 선생님이나 보파 선생님이 나올 때는 더 크게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지금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현지인 교사들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화면인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호응을 하면서 행사의 분위기를 띄웠다.
8시,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캄보디아 국기에 대한 경례, 이어서 대한민국 국기에 대한 경례. 그런데 애국가가 나오는 중간에 소리가 끊기고 화면도 초기화면으로 바뀌어 버렸다. 특별히 기술적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혼자서 음악과 영상을 관리하는 현지인이 애국가를 제대로 몰라 중간에 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어서 부총장이 인사를 했다. 느릿느릿, 제법 긴 시간 동안 축사를 했다. 중간중간에 꼬래, 꼬이까 같은 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한국어학과 학생들에 대한 덕담, 코이카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한국어학과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먼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태권도 공연과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 태권도는 한국어학과 학생이 일부 있었고 대다수는 바탐방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 소속된 아이들이었다. 그 중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신기에 가까운 발차기 솜씨로 보는 사람의 탄성을 불러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곳 아이들이 태권도에 진심인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어진 사물놀이 공연, 옷을 갖춰 입고 무대 위에 한 줄로 앉은 치배들의 모습을 보니 그럴싸했다. 게다가 조명도 약간은 붉은 빛이 도는 것으로 바뀌어 있어 악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괭과리를 치는 상쇠 소포앗의 신호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진모리와 휘몰이 연주는 힘이 있었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가락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각 악기들이 조금씩 어긋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장구는 장구대로, 북은 북대로 같은 악기들끼리는 잘 맞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전체가 안 맞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상쇠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악기에만, 자기 옆에서 치는 같은 악기에만 집중한 탓이다. 연습할 때도 그렇지만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쇠 소리 들으면서 하라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러니 자연 가락이 빨라질 수밖에. 공연이 끝나고서 아이들 연주가 계속 빨라진다고 장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건 이 나라가 3박 중심이어서 그렇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4박인데, 이들은 3박이 중심이 되니 자꾸 빨라진다는 말이다. 맞는 말 같았다.
이제 본격적인 공연 순서다. 맨 먼저 두 완나가 노래를 불렀다. 두 완나는 2학년 여학생 엠 완나와 같은 2학년 남학생 떼 완나를 함께 부른 말이다. 두 학생은 수업 시간에도 대단히 착실하게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으며 노래 실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둘이 함께 부른 노래는 아이유의 <너의 의미>였다.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부르다 같이 부르기도 하고 또 앉아서 부르다가 일어서서 부르기도 하는 등 노래 솜씨도 제법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 역시 아름다웠다.
이어서 3학년 소캇이 노래를 했다. 소캇은 일전에 시엠립 영사관에서 개최한 대회에 참가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당시 영사관에서 개최한 대회에는 대부분 참가자들이 춤을 췄고 소캇만 유일하게 노래를 해서 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일하게 노래를 부른 소캇에게 상을 주기는 어려웠다는 이야기였는데 확실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소캇은 <선재업고 튀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인 ‘소나기’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좋고 무대 몸짓 역시 좋았다. 소캇의 장래 희망이 가수라는데 그럴 만하다 싶었다. 캄보디아 사람으로서 한국노래를 제대로 부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소캇의 노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사 전달력까지 좋았다. 마치 한국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이어서 춤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3학년 니의 춤이었다. 춤은, 특히 K-Dance는 대부분 여러 명이 나와서 같이 춤을 추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러한 모습만 보아왔는데 니는 혼자서 춤을 췄다. 그래도 춤 솜씨가 워낙 뛰어나 많은 학생들의 함성을 몰고 왔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로봇과 같은 몸짓으로 춤을 추는 니의 모습은 황홀경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나도 큰 박수를 보냈다.
2학년 학생 소다위, 쏙리, 마니의 무대다. 세 명의 여학생이 춤을 췄는데 굉장히 힘이 있고 또 몸짓이 뜨거웠다. 퇴임 전, 한국의 고등학교에 근무를 할 때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추는 춤을 볼 기회가 더러 있었는데 그 몸짓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세 학생은 수업 시간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 특히 쏙리는 더 그러했다. 공부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했으며 열성적이었다. 춤 역시 그러했다. 이 세 명이 추는 춤은 행사 전 교실에서 연습을 할 때 가끔 보기는 했지만 오늘 무대 위에서는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3학년 남학생 소캇과 4학년 여학생 몬타이가 춤을 췄다. 보기 드물게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팀이다. 게다가 한 명은 4학년, 다른 한 명은 3학년이다. 평소 호홉을 맞추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대 위의 학생들에게 몰두했다. 소캇은 노래도 잘 불렀는데 춤 역시 아주 잘 췄다. 끼가 많고 재주가 다양한 학생이다. 4학년 몬타이 역시 평소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몸짓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시선을 끌었다.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무대, 1학년들의 춤 공연이 이어졌다. 남학생인 모세와 여학생인 린나, 그리고 마니엣 세 명이서 춤을 췄다. 유일하게 출연한 1학년들이다. 평소 교실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특히 마니엣이 춤을 추는 모습은 뭔가 낯선 듯하면서도 끌려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교실에서 마니엣은 늘 조용했으며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국어를 꽤 잘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마니엣과 교실에 조용히 앉아 있는 마니엣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다른 두 아이 역시 마찬가지. 아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마지막은 노래다. 요즘 키타 연습에 한창인 마리야와 피싸이, 이 둘은 3학년 여학생이다. 그리고 역시 키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2학년 남학생인 소피아, 이 세 명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앞서 노래한 학생들은 유투브 반주 음악에 맞춰 노래만 불렀는데, 이 세 명은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마리야가 키타를 치고 소피아가 신디를 연주했으며 피싸이는 노래만 불렀다. 음향 시설이 넉넉하지 않아 썩 만족스러운 연주와 노래가 되지는 못한 듯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과 이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넉넉함으로 무대는 빛을 낼 수 있었다.
역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놀기도 잘 하는 것인가? 무대에 오른 아이들 하나하나 교실 수업에서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시험 성적도 좋았다.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제대로 놀 줄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아닌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그리고 인물도 좋은 아이로 키우는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람이라 들었는데 이곳 역시 그런 모양이다.
노래와 춤 공연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 달고나 게임을 했는데 사회자가 바뀌었다. 이번 행사는 3학년 여학생 쓰레이로엇과 2학년 남학생 쏘피아가 각각 한국어와 크메르어로 진행을 했는데 달고나 게임부터는 코워커 보파 선생님과 장선생님이 사회자로 나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장선생님이야 원래 한국인이니까 그렇지만 보파 선생님 역시 한복을 잘 소화해 냈다. 얼핏 한국인인지 캄보디아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전날까지 선생님들과 여러 학생들이 사무실에 모여 애 쓴 보람이 드디어 나타나는 순간이다. 200여 개의 달고나를 만들어 왔는데 참석한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 달라는대로 다 주었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두 개, 세 개씩 받아가기도 했다. 화면에는 영화 <오징어 게임> 중 달고나 모양 만들기 영상이 나오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작업을 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달고나 모양 만들기에 성공하는 아이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상품을 조금만 준비했는데 그것이 금방 동이 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성공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무실로 가서 상품을 더 준비해 와야 했다.
달고나 게임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한국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제목은 <장화, 홍련>이다. 이곳 아이들, 공포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그래서 우리가 제시한 다섯 편의 영화 중 공포영화인 <장화, 홍련>이 가장 많이, <곡성>이 다음 순으로 선택을 받았다. 나는 처음부터 보고 장선생님과 보파 선생님은 사무실에 일 보러 갔는데 영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옆에 있던 2학년 여학생 한 명이 자막은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혹시 자막 설정을 하지 않아 화면에 안 나오나 싶어 사무실로 전화를 하니 두 명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침 쓰레이로엇이 사무실로 간다기에 장선생님에게 자막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더니 곧 원래부터 자막이 없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그래서 자막 없이 영화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고 분위기로 말하는 영화여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영화의 내용이 서사적이지 않아서 나도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과연 이곳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아이들이 끼리끼리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이다. 나도 이들과 어울려 제법 많은 사진을 찍은 듯했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기만 한 아이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참가자 전체가 모인 단체 사진도 찍고 학년별 사진도 찍었다. 캄보디아에 와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많은 학생이 등장하고 또 가장 다양한 모습이 들어있는 사진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