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한 1박2일, MT

by 지천

오늘은 한국어학과 MT 가는 날, 아침 일찍 학교에서 코워커인 보파 선생님과 장선생님, 그리고 몇 명의 학생을 만나 퍼사 트마에(트마에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학과 학생 중 희망자가 참여하는 행사인데 30명이 넘게 참가를 해서 장을 보는 시간이 꽤 걸렸다. 1박2일 동안 먹을 음식을 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많이 산 것은 고기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각 10Kg, 닭 다섯 마리, 그 밖에 채소를 비롯하여 음식 재료들도 무척 많이 사고 또 물을 비롯하여 음료수도 많이 샀다. 이렇게 산 음식을 오토바이에 나눠 싣고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 근처 식당에서 장보기에 참여한 아이들과 같이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25인승 카운티와 12인승 봉고가 학교에 도착했다. 두 대의 차 모두 한국에서 만든 차다. 학생들이 모두 모였을 때 학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가 프놈섬뽀우를 거쳐 가기에 그곳이 집인 학생 네 명은 기념사진을 같이 찍지 못했다. 그 중 특이한 참가자가 한 명 있었다. 3학년 소캇이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여학생 한 명을 데리고 온 것이다. 분명 학과 행사인데 학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학생이 참가를 한 것도 특이했는데 더 이상했던 것은 학생이나 현지인 교수 요원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학생과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프놈섬뽀우에서도 현재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남학생 한 명이 탔다. 그래도 그는 한국어학과를 다녔던 학생이라 들었다. 3학년들과 같이 입학을 해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으로 일하러 갔는데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포기를 하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온 학생이다. 그래도 이 학생은 3학년과 동기생이니 지금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처럼 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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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승합차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길 양쪽에 툭툭과 차들이 주차해 있어서인지 승합차는 빠르게 도로 중앙으로 달렸는데 마주오는 차와 부딪쳐 사이드미러가 다 부숴졌다. 운전자는 차를 길가에 대 놓고 걸어서 상대편 차에 가더니 운전자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금방 돌아왔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듯, 심하게 다투는 것 같지 않았다. 차량 보험에 대해 보파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운전을 안 해서 잘 모른단다. 나중에 알아보니 캄보디아에서는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보험을 가입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각자가 자신의 차를 고치는 정도에서 끝낸다고 했다.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 캄보디아에서는 상업용 차량인 경우 의무적으로 보험을 가입해야 하지만 개인 승용차는 가입이 의무 사항은 아니라 한다.

다시 캠핑장을 향해 가는 길,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늘이 어두워져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나와 장선생님 뿐인 듯, 아이들 얼굴에는 날씨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4시 경 목적지인 촘방 캠핑장에 도착을 했을 때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에 구름만 많이 낀 상태였다. 대신 바람이 많이 불어 짐 정리를 하는데 고생을 해야 했다. 잠은 방갈로와 방갈로 앞 데크에 텐트를 쳐서 그곳에서 잔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텐트는 쳐 있지 않았다. 방갈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원룸 형식의 방 하나와 화장실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무척 좁은 공간이었다. 방에는 침대 메트리스 하나만 깔려 있을 뿐이어서 세 명 이상 자기기 쉽지 않을 듯했는데 그래도 숙소와 텐트에 모두 아홉 명이 자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좁은 공간에서 자야 했다. 애초 숙소를 구할 때 교수 요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그냥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참가자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도 그렇고 여학생들과 같이 잠을 자야 하는 장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지인 교수요원도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선생님 자리가 불편할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현지인 교수요원도 학생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한국어학과에서는 학생들과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룻밤을 같이 자는 행사는 처음이라 하더니 처음부터 이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같이 자기 힘들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 역시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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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갈로 네 채가 모여 있는 공터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장선생님이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르니 캠핑장 입구에 있는 건물 2층을 빌려서 그곳에서 식사와 행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냥 야외에서 식사를 해도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일단 공간을 이용해도 될지 문의를 해 보고 결정을 하자고 해서 전화로 문의를 하니 공간을 이용해도 좋다는 답을 들었다. 다만 2층에서는 가스 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1층에서 고기를 구워 2층으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도 주인의 양해를 얻어 2층에서 가스는 쓰지 않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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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스스로 알아서 준비를 했다. 학생 개개인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을 사러 간 아이, 꼬치구이를 만들기 위해 소고기와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아이, 대형 스피커를 비롯하여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 건물 2층으로 옮기는 아이 등 한 명도 놀지 않고 같이 준비를 했다. 나는 돼지고기를 들고 이동을 했는데 고기의 양이 많아서 꽤나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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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음식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섯 시가 되어 숯불을 피워야 한다고 몇 명의 학생이 말을 했지만 나는 숯불 피우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기 때문에 일찍 불을 피우는 게 좋다고 하면서 다섯 시가 좀 지난 시간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선 주변에 있는 종이와 널빤지 그리고 가지고 온 태권도 연습용 판자를 가지고 불을 붙이고 거기에 숯을 얹어 불을 피웠다. 불이 피고 돼지고기를 굽기 시작했을 때 음식 재료를 다듬던 아이들이 모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를 굽다가 중간에 소고기 꼬치를 굽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냈는데 아이들은 무척이나 잘 먹었다. 아마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꼬치가 맛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거기에 3학년 여학생 뗍뽀레이가 담아온 김치를 곁들이니 음식을 먹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아이들은 상추와 된장, 그리고 한국식 삼겹살구이를 무척 맛있어 했다.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난 뒤 아이들은 모여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테이블 둘레를 돌면서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같이 추자고 잡아끄는 사람도 없었고 그냥 무리를 지어 춤을 출 뿐이었다. 춤을 추지 않는 아이들은 자리에 둘러앉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때만큼은 아이들도 캄보디아어로 이야기를 나누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모든 아이가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겁게 보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춤과 이야기가 있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러다가는 밤새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아서였다.

“여러분 잠시만 춤과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 같이 놀면 어떨까요? 오늘 이 행사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이고 그래서 여러분이 분명 주인공들이지만 또 이곳에는 주인공 한 분이 더 있어요. 바로 장선생님이에요. 장선생님은 다음 주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이렇게 시작을 해서 본의 아니게 내가 사회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한국어날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던 아이들을 다시 불러내 노래를 들었고 또 아이들의 추천을 받은 학생을 불러내서 노래를 부르게 하기도 했다. 그 중간에 나도 한국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오늘의 또다른 주인공 장선생님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노래를 부르라 하니 극구 노래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캄보디아에서 지낸 1년에 대해, 그리고 떠나는 마음에 대한 말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지만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노래와 춤을 이어갔다. 3학년 소캇이 다시 노래를 불렀고 학과 춤꾼들 역시 흥겹게 춤을 추었다. 물론 한국 노래였고 한국 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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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 되자 돼지고기와 소고기 꼬치도 바닥이 났다. 그래도 노래와 춤은 계속되었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식물 남은 것 따로, 버려야 할 쓰레기 따로 모으면서 아이들은 행사 전과 같은 상태로 공간을 만들었다. 역시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정리를 시키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 일들을 했다. 숙소로 이동을 해서도 야외 공간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또 카드게임을 하면서 그 시간을 즐겼는데 좀처럼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해 온 전등을 나무에 매달아 불을 밝혔고 또 숯불을 피워 옥수수를 굽기도 했다. 장선생님은 옥수수에 버터를 발라 구우면 더 맛이 있다면서 버터를 발라 주었고 나는 잘 굽힌 옥수수 몇 개를 들고 귀여운(?) 1학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제각각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줄곧 노래를 부르고 있는 두 아이에게 다가가 노래 두어 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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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열두 시가 되어갈 무렵 방으로 먼저 들어가 간단하게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그때까지도 밖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러다가 금방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소리는 잠잠해졌다. 밖에 있던 아이들이 방갈로나 텐트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우리 방에도 또 방 앞에 있는 텐트에서도 아이들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자려 했지만 금방 잠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가 자지 않고 있으면 아이들이 신경을 쓸 것 같아 자는 척했는데 그 후 아이들도 잠들고 나도 잠이 든 듯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잠을 깨서 들어보니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밖에 있는 텐트에서 자는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는 없었다. 내 옆으로 누군가 자고 있었고 또 실내가 너무 어두워서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다들 대학생인데 무슨 일이 있겠나 하는 마음도 내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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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여섯 시, 잠에서 깬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고 그래서 나는 잠을 계속 잘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쳤는데 바람은 그때까지도 심하게 불었다. 밖에 있는 몇 명에게 다가가 잠을 잘 잤냐고 물어보니 많은 아이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밤새 내린 비를 텐트가 감당하지 못했고 당연히 텐트 안까지 물이 들어차서 아이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부 아이들은 버스로 옮겨서 잠을 자기도 했다지만 편한 잠자리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또 버스로 가지 못한 아이들은 방갈로 안으로 들어가 좁은 공간에서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다 하니 그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보다는 편하게 잠을 잤으니까. 보파 선생님을 만나 아픈 아이는 없는지, 몸이 불편한 아이는 없는지 확인해 보도록 했다.

잠시 후 뽄러 선생님과 2학년 풋다나가 닭볶음 요리를 시작했다. 어제 만들어 둔 양념, 고추 으깬 것과 마늘 다진 것을 넣고 거기에 식용유를 더해 토막난 닭을 볶아내는 것이다. 물어보니 점심 때 먹을 거란다. 또 방갈로 안에서는 가지고 온 밥솥으로 밥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역시 점심 때 먹을 밥이다. 아침에는 라면을 먹기로 했단다. 많은 인원이 먹으려면 지금 라면을 끓여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두 명이 요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닭볶음 요리가 끝나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가스 버너는 두 개, 그것으로 라면을 끓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와 장선생님, 그리고 보파샘이 라면을 끓였고 다 끓은 라면을 일회용 그릇에 담아 밖에 나와 있는 아이들부터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모두 먹이고 나, 장선생님, 보파샘이 마지막 끓인 것을 나누어 먹었는데 라면이 다섯 봉지나 남아 있었다. 저런, 아이들에게 너무 적게 나누어준 모양이다. 이 아이들 한국 라면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해서 마트 여러 곳을 돌면서 한국 라면을 구했는데 이렇게 남겨 가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라면을 끓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듯해서 남은 라면은 그냥 사무실로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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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출발을 하기 위해 승합차로 오니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오는 길에 접촉사고가 나서 망가진 사이드미러 자리에 손거울 하나가 줄에 묶여 있었다. 사이드미러 없이 운전을 하는 것은 힘이 들고 또 위험할 수 있으니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한 모양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면서 웃고 또 웃으면서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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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출발할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전에 가기로 한 두리안 농장은 포기를 하고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는 계곡 물가로 곧장 갔다. 물가에 이를 때까지 비는 오락가락했고 그래서 원래 하려고 했던 수영은 하지 못하고 계곡 가에 늘어서 있는 원두막에서 비를 피하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1학년들이 대화 상대였는데 계곡을 흐르는 물과 주변 나무 그리고 원두막 아래 엎드려 먹을 것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듯한 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리 준비해 온 밥과 닭고기 요리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바탐방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프놈섬뽀우에 있는 박쥐동굴에 잠시 들르기도 했고 또 폐사지에 들러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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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대학교 한국어학과에는 아직 학생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 학년을 대표하는 학생 한 명이 학생들 출결 사항을 체크하고 또 교사와 학생을 중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은 교수 요원들에 의해 기획이 되고 실행이 된다. 이번 MT 역시 봉사단원과 현지인 교수요원이 준비를 했고 또 진행 역시 그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같이 준비를 하면서 학생 자치 활동에 대한 훈련이 무척이나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물론 학생들은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또 음식을 손수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사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서 체화하는 것인데 그것이 되지 않으니 학생들은 수동적인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현지인 교수요원이 참가자를 모집하고 비용을 걷고 했는데 학생회 차원에서 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참가비가 부담스러워 참가를 하지 못한 학생이 더러 있을 수도 있었다. 원래 학생 한 명당 참가비를 15불로 책정했는데 많은 학생이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금액이 부담스러워 그러나 싶어 학생 참가비를 12불로 낮추고 나머지 금액을 우리 봉사단원이 부담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몇 명의 아이가 추가로 참가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 자치 활동 강화, 그러한 능력 배양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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