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졸업식이다. 한국어학과 졸업생은 모두 여덟 명이다. 그런데 여기 졸업식은 좀 특이한 것이 많다. 무엇보다, 매년 졸업식을 하지 않고 몇 년에 한 번씩 한다고 코워커에게 들었다. 그래서 한국어학과 졸업생이 여덟 명이지만 사실 올해 졸업하는 학생은 한 명뿐이다. 아니, 한 명이 더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 한국에 유학을 간 상태이고 내일 캄보디아로 돌아오기 때문에 졸업식에 참석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올해 졸업을 하는 학생을 제외하고 일곱 명 중 두 명은 작년에 과정을 마쳤고 다섯 명은 2년 전에 마쳤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졸업하는 친구들이 3개 학년 모두 합쳐서 여덟 명, 내일 한국에서 돌아오는 아이까지 해도 모두 아홉 명이다. 지금은 한 학년에 20명 정도 되는데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유독 적은 이유는 코로나19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마쳤지만 지금 한국에 일하러 가서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이 나라 이 아이들도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 것 같았다. 사실 지금까지 죽 졸업식을 몇 년에 한 번씩 해 왔는지, 아니면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하지 못한 졸업식을 이번에 모아서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침 여덟 시가 좀 덜 된 시간에 집을 나와 툭툭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상커강을 넘을 무렵 보파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 도착하셨냐는 전화다. 지금 툭툭을 타고 가는 중이라 하니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강당으로 오란다. 사무실에 가방을 두고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니 그러면 자기가 강당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9시 정도에 시작하지 않느냐, 그 시간에 강당으로 가면 되지 않냐고 하니까 곧 강당 문을 닫을 것이고 강당 문이 닫히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이번 졸업식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오는 모양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8시 10분, 사무실로 가려고 원래 다니던 길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주차장 쪽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사무실에 들러야 한다고 하니 그래도 주차장 쪽으로 가라는 손짓만 한다. 그래서 약간은 둘러서 사무실에 올라가 가방을 놓고 바로 맞은편 건물에 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강당 밖에 대형 텐트가 몇 개 처져 있었고 그곳에 졸업생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천막 아래는 학사학위를 받을 사람들이, 다른 천막 아래에는 석사학위를 받을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강당으로 모두 들어갈 수 없으니 일부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강당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강당으로 올라가니 보파 선생님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받은 비표를 보여주고 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들과 학사학위를 받을 학생들, 그리고 석사학위를 받을 학생들이 서로 다른 열에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도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이 양복과 제복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바탐방 지역의 유지들 같았다. 그리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 역시 군대나 경찰에서 제법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삼십 여 분 무대 위와 무대 아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니까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대 안에 설치되어 있는 프로젝션 TV에서는 강당 바깥의 모습이 나타났다. 몇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오늘 오기로 되어 있다는 부총리 아들이 강당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 후 부총리의 아들을 선두로 총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강당으로 들어섰고 강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부총리 아들이 자리에 앉자 모두 자리에 앉았고 이어진 국민의례, 간단하게 캄보디아 국가만 연주했다.
이곳 사람들, 정말 긴 시간 동안 말을 한다. 맨 먼저 총장이 부총리 아들에게 공손하게 합장 인사를 한 뒤 무대를 내려왔다. 왜 그러지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총장이 사회자 자리에 가서 사회자가 사용하는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의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총장이 학사 일정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총장의 말이 끝난 뒤에 옆에 앉아 있는 보파 선생님께 물어보니 역시 학교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즉, 오늘 행사는 졸업식과 함께 몇 해 전에 지은 도서관, 내가 이곳에 오고 난 뒤에도 계속 공사를 해서 얼마 전에 완공한 STEM관 기공식을 함께 하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경과 보고를 같이 했다고 한다. 졸업식과 관련된 이야기, 그러니까 졸업생들에 대한 축하의 말 같은 것도 있었냐고 물어보니 그런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단다. 그러면 졸업생들에 대한 인사는 별로 하지 않고 학교 운영에 대한 이야기만 그렇게 길게 했단 말인가. 이 역시 내게는 많이 낯선 풍경이다. 무엇보다 총장이 직접 학사 보고와 기공식 관련 보고를 한다는 것, 그리고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 사회자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더 낯설었다.
이어서 졸업생 한 명이 나와서 역시 사회자 자리에서 졸업 소감을 이야기했는데 그 학생 역시 제법 긴 시간 동안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부총리의 아들이 축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무대 위에 설치된 마이크를 가지고 했다. 부총리 아들이 일어서니 무대 위 아래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섰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행동을 같이 했다. 부총리의 아들, 공식적인 직책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축사 역시 아주 길게 이어졌다.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톤의 변화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부총리의 아들은 그래도 가끔은 얼굴에 웃음을 띠기도 하고 거기에 맞춰 무대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중간에 박수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야기 중간에 학교 칭찬을 하는지 총장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자 총장이 급하게 일어나 합장 인사를 하면서 몸을 굽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 학교 운영과 관련된 칭찬을 몇 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부총리의 아들 역시 쉽게 끝내지는 않았다. 거의 30분 정도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자리로 돌아갈 때 무대 위, 무대 아래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일어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박수를 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는 박수를 치면서 답례를 하는 것이 일상화되지 않은 듯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뒤 보파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졸업생들에 대한 축하 인사와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30분 동안 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닐 테지만 더 물어보지는 못했다.
축사가 끝난 뒤에 부총리의 아들이 졸업생들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무척이나 공손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합장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졸업증서를 받고 같이 사진을 찍은 뒤 다시 같은 인사를 했다. 그게 끝나면 무대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뒤쪽으로 이동을 해서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자기가 받은 졸업증서를 행사 요원에게 주고 종이 한 장만 받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는지 보파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지금 받은 졸업증서가 자기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돌려주고 나중에 자기 것을 다시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졸업증서를 받고 수여자와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는 이야기였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특이한 점은 승려 졸업생이 졸업증서를 받는 모습이었다. 승려 졸업생들은 무대 위에 올라와서도 부총리 아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졸업증서를 받고 난 뒤에도 그러했다. 오히려 반대로 부총리의 아들이 승려 졸업생을 향해 합장 인사를 했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이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보파 선생님에게 다시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 비록 지위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스님들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에게 졸업증서를 주고 사진을 찍은 부총리 아들이 이번에는 총장을 불러내 목에 메달을 걸어주었는데 그때 총장의 태도는 정말이지 공손 그 자체였다. 이어서 학교 유공자들을 무대 위에 오르게 해서 훈장과 같은 것을 윗옷 주머니에 걸어주었는데 외국어학부 와타나 학부장님도 그 중 한 명이 되어 훈장을 받았다.
훈장 수여까지 마친 부총리의 아들이 강당을 나가고 난 뒤부터 본격적인 졸업증서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좀 젊은 사람이 증서를 주기 시작했는데 보파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교육부의 높은 관리란다. 그 모습 역시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다. 학위 수여식에서 총장이 하는 역할이 낯설었다. 총장은 증서를 주지도, 축사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학사 보고만 했을 뿐 무대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교육부 관리가 수여하던 증서를 어느 순간 총장이 받아서 하고, 또 이를 부총장이 받아서 하다가 다시 교육부 관리가 계속 증서를 수여했는데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강당 안에 있는 졸업생에게 수여하고 나면 다음에는 강당 밖 천막 아래 있는 졸업생 모두에게 증서를 수여한다고 하니 언제 끝이 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4,000명 정도 되는 졸업생 모두에게 졸업증서를 주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아마 오전 중에 끝나기는 힘들 것 같기도 했다.
잠시 강당 밖으로 나왔는데 나오면서 보니까 스피커에서는 계속 졸업생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 소리에 맞춰 강당 밖으로 졸업생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부가 식장 안으로 이동을 한 상태인데도 천막 아래에는 아직 많은 졸업생이 앉아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볼일을 보고 다시 강당으로 들어가니 이제 한국어학과 졸업생이 졸업증서를 받는 순서가 되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같이 밖으로 나와 준비한 꽃다발을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마침 강당 밖에서 줄을 서 있던 한국어학과 나머지 졸업생들을 만나 그들에게도 꽃을 주고 기념촬영을 했다.
한국어학과 졸업생 모두 졸업증서를 받는 것을 보고 난 뒤 사무실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양복을 입은 데다가 날씨마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다. 사무실에서 땀을 식히고 있다가 졸업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러 축구장으로 가는데 아직 졸업증서 수여식은 계속되고 있었다.
1년 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대학의 졸업식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졸업식이 매년 열리지 않고 몇 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박선생님이나 장선생님 모두 졸업식을 보지 못하고 귀국을 했다. 물론 나는 내년에 다시 졸업식이 열린다 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내년 8월이 되기 전, 올 12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졸업한 아이들 중 내가 가르친 아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 졸업한 모두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