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연습, 그리고 짧은 공연
사물놀이 연습, 그리고 짧은 공연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를 할 때 사물놀이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사무실에 있는 악기를 살펴보았다. 장구가 셋, 북이 넷, 징이 하나. 그런데 꽹과리와 징채가 안 보였다. 사무실 케비넷 구석구석 찾아봐도 없다. 난감했다. 그냥 장구와 북만 가지고 연습을 하나? 별 재미가 없을 텐데, 학과 행사를 할 때는 어떡하지? 많은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찾을 수가 없었다. 북과 장구, 그리고 징이 있는데 꽹과리가 없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혹시나 싶어서 철제 캐비넷에 있는 물건을 들어내고 안쪽까지 살펴보니 구석진 자리에 괭과리와 징채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여기서 바로 악기를 구입할 수 없고 꼭 해야 한다면 한국에서 사야 하는데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행사 준비도 할 수 없을뿐더러 행사 당일 공연도 할 수 없다.
첫날, 다섯 시가 다 되어 같이 연습을 하기로 한 아이들이 모였다. 졸업생 뽄러, 3학년 사븐, 는, 그리고 쏘폿이 함께 했다. 2학년은 파나위, 리응이 왔다. 특이하게도 고등학생 두 명이 사물놀이 연습을 하겠다고 왔다. 그 두 명은 바탐방대학교에서 저녁마다 하는 태권도 강습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태권도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또 사물놀이에도 재미를 느낀다면 이 아이들 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어학과에 진학할지도 모르겠다.
같이 악기를 들고 2학년 교실로 갔다. 2학년 교실 뒤편에 있는 책상을 치우고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칠판에 사물놀이라고 쓰고 그 아래 꽹과리, 징, 장구, 북 이렇게 쓴 뒤에 아이들에게 사물과 사물놀이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어서 장구를 중심으로 채를 잡는 방법과 채편과 궁편 치는 방법에 대한 설명한 뒤 덩, 쿵, 따를 연습했다. ‘덩’은 채편과 궁편을 같이 치는 것, ‘쿵’은 궁편만, ‘따’는 채편만 치는 것이다. 이것이 장구 장단을 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장구가 세 대뿐이어서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일부 아이들은 북을 가지고 연습을 했지만 아이들은 진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도 제법 그럴싸하게 나왔다. 생각보다는 잘 따라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의외로 아이들은 우리 가락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물론 소리가 분명하지 않고 또 채를 잡는 모습이나 치는 모습이 어설펐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고쳐나가면 될 듯하다. 이어서 휘몰이 장단을 가르쳐주고 같이 쳤다. 아무래도 박자 감각이 전혀 다른 이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제자리인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아이들이 잘 따라오는 것 같아 나도 힘을 냈다. 연습 3일차에 휘몰이 네 장단 익히고 다음 시간에 배울 자진모리 두 장단까지 미리 알려주었다. 지금은 월요일과 수요일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한 시간씩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필요하면 시간을 더 늘리든지 아니면 날짜를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참, 뽄러에게 오늘 처음으로 괭과리를 치도록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에도 누군가가 연습을 주도할 사람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뽄러마저 한국으로 떠나버리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다.
행사가 가까워지면서부터 악기를 정해서 연습을 했다. 그 전에는 모두가 장구를 쳐 보고 또 모두가 북을 쳐 보는 방식으로 연습을 했는데 공연까지 연습 시간이 부족할 듯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괭과리 1명, 장구 3명, 북 4명, 그리고 징 1명. 이렇게 구성을 하니 북 하나가 남는다. 남은 북 하나는 내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공연이 끝나면 다시 조정을 할 것이다. 처음 연습했던 대로 모든 사람이 장구와 북, 그리고 징을 연습하는 것으로 말이다. 괭과리는 쉽지 않을 듯해서 희망하는 사람만 칠 수 있도록 하면 될 듯하다. 한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악기를 쳐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듯해서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휘몰이 장단과 자진모리 장단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리고 굿거리 한 장단만 추가로 연습했다. 그런데 의외로 굿거리 장단을 잘 쳤다. 느린 장단이고 또 내가 알려준 가락이 단순해서 그런 모양이다.
이렇게 한 달여 기간 연습을 마치고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한국의 날 행사 첫 번째 무대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풍물공연을 먼저 하기로 했다. 무대 위에 한 줄로 앉은 아이들은 처음에 긴장을 했는지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습 시간이 짧은 것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긴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를 보는 두 학생이 재미있게 사물놀이 팀을 소개하고 덩달아 객석에 앉은 아이들이 박수로 호응을 해 주니 그에 맞춰 아이들의 얼굴도 서서히 풀려갔다. 무대 아래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나 역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처음에는 조금 굳은 얼굴로 아이들과 무대 위를 바라보다가 곧 편하게 무대와 아이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원래 뽄러가 괭과리를 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실제 연습은 3학년 남학생인 소포앗이 괭과리 연습을 많이 했다. 관심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다. 그래서 행사 당일인 오늘은 소포앗이 괭과리를 치게 되었다. 상쇠 소포앗의 첫박에 이어 사물놀이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힘있게 악기를 연주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가락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무대 밖에서 내가 악기를 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손으로 신호를 보내도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여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고 또 자기의 가락에 너무 몰두를 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연주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지라 서로 어긋난 가락으로도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무대에서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힘껏 박수를 보냈고 덩달아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아이들에게 힘을 보내주었다.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가 끝나고 한 달 정도 사물놀이 연습을 더 했다. 하지만 인원은 많이 줄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남학생 5명, 여학생 3명 모두 8명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는데 행사가 끝난 뒤에는 여학생 세 명 모두 나오지 않고 또 고등학생인 남학생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네 명이 남았는데 이들은 사물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또 열심히 연습을 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감각도 괜찮아서 연습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이곳 캄보디아를 떠나더라도, 후임자가 누가 오더라도 사물놀이 연습과 공연을 동아리 활동의 하나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 현재 나오고 있는 학생은 졸업생이면서 가끔 저학년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뽄러, 3학년에 다니고 있는 쏘폿, 2학년 학생 리응이다. 그리고 한 명은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이 아이가 한국어학과로 진학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국어학과에 입학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네 명만으로도 사물놀이를 할 수 있을뿐더러 이 아이들에게 악기 네 가지를 모두 다루도록 한다면, 그래서 이 아이들이 희망자를 모집해서 연습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면 사물놀이 동아리는 꾸준히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악보를 좀더 정리를 해서 내가 없어도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행사 한 달 후 방학에 들어가면서 연습이 이어지지 않았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10월에는 11월에 있을 TOPIK 시험 응시생 지도를 하느라고 경황이 없었다. 게다가 사물놀이 연습을 하던 아이 역시 TOPIK 시험 준비를 하느라고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두 달 정도, 수업을 계속 해야 했고 또 파견 생활 마무리를 해야 하기에 나 역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뒷날 사물놀이 지도를 할 수 있는 단원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이들과 함께한 사물놀이 연습과 공연은 그렇게 마디맺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