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대학교 아이들과 만든 특별한 시간 10

개천절 행사에 참여하다

by 지천

개천절 행사에 참여하다

시엠립 영사관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국경일 기념 리셉션이란다. 같이 갈까 고민하던 두 분 봉사자도 같이 가기로 했고 따로 초청을 받은 학부장 와타나 선생님도 같이 간단다. 우리는 와타나 선생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보파 선생님 역시 일행이 되었다. 와타나 선생님이 보파 선생님에게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통역이 필요하겠다 싶었는데 보파 선생님이 같이 가면 그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니 잘된 일이다. 원래 다른 사람들은 새벽에 일찍 떠나고 나는 1학년 수업을 하고 따로 갔으면 했는데 두 분 봉사자께서 완강하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8시 50분부터 수업을 시작해서 약간 일찍 마쳤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한국 음식을 배달시켜 같이 먹었다. 그래서 출발한 시간이 열두 시.

시엠립까지 두어 번 쉬면서 갔다. 그래서인지 시엠립에 도착한 시간이 네 시 가량 되었다. 가는 길에 Kim Mart가 있어 그곳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얼마 전에 ‘2024 추석 격려 상품권’을 받았는데 그 상품권은 프놈펜과 시엠립에 있는 Kim Mart에 있는 물건만 살 수 있는 상품권이다. 나는 그곳에서 들기름 한 병과 초코파이 세 통을 샀다. 이제 남은 시간이 세 달 가량이라 음식 재료는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을 듯했다. 더구나 지난 추석 연휴 때 두 아들이 이곳에 오면서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을 몇 가지 가지고 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남은 기간 충분할 듯했다. 초코파이는 내일 학교에 가서 1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이 아이들 한국 과자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초코파이를 많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뒤 일행은 시엠립 세종학당으로 향했다. 세종학당은 생각과 달리 시엠립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학당에 도착하니 큰 건물 두 개가 격자로 서 있었고 그 중간에 운동장이 있었다. 보파 선생님이 연락을 해서 러티 선생님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러티 선생님, 내 두 번째 현지어 튜터였는데 지난 6월에 이곳 세종학당에 취직을 해서 지금은 이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러티 선생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니 세종학당에서 사무를 보고 있다는, 비교적 젊은 한국 남성 한 분이 나와 우리를 안내했다. 강의실, 도서관, 여러 명이 모여 행사를 하는 강당 등등. 이곳은 세 기관이 함께 사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큰 건물이 신학교, 그리고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곳이 ‘Song Of Hope’라는 기관과 세종학당이다. 그러니까 이곳 세종학당은 기독교 단체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을 하는 곳이다. ‘Song Of Hope’ 역시 주변의 아이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했다. 무료로 하는 것이냐고 내가 물어보니 약간의 돈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종학당에서는 세 달 정도의 기간에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한 달에 수강료로 60불을 받는다고 했다. 건물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나는 11월 이곳에서 주관하는 토픽 시험 감독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전에 세종학당 관계자가 우리 학교에 와서 11월에 치는 TOPIK 시험 감독을 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한 일이 있었다. 그걸 물어본 것인데 안내하는 사람은 모르겠다고 한다. 주말에 시험 감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토픽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현장이 궁금해서 시험 감독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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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학당에서 나와 조금 이른 시간에 리셉션장으로 갔다. 리셉션이 열리는 곳은 시엠립 영사관이 있는 리조트였다. Sokha Siem Reap Convention Center, 안으로 들어가기 전, 와타나 선생님은 바탐방대학교 총장을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우리도 밖에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총장은 6시 30분이 다 되어 가도록 오지 않았다. 보파 선생님에게 총장 비서도 같이 오냐고 물어보니 총장님과 기사님 두 분만 오신단다. 그러면 어디까지 왔는지, 언제쯤 도착할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냐니까 보파 선생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알 수 없는 것일 수 있기에. 그러는 동안 보파 선생님이 이번 프놈펜에서 실시하는 말하기대회에 참가하는 뽄러의 원고를 봐 달라고 했다. 텔레그램으로 원고를 받아서 선 채로 수정을 해서 보냈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총장이 도착해서 같이 리셉션 장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무대에 의자들이 죽 늘어서 있고 무대 밖에는 서서 간단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우리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무대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지켜보았다. 무대 위에는 시엠립 총영사를 비롯하여 영사관 간부들, 그리고 시엠립 영사관이 관장하고 있는 인근 지역, 그러니까 시엠립, 바탐방, 민쩨이 등의 시장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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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이 행사가 캄보디아의 국경일,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에 있었던 제헌절 행사를 기념하는 자리로 알았다. 캄보디아 국경일 행사를 왜 영사관에서 주관을 하고 초청장을 보내지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지만 그리 의심하지 않고 참석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개천절을 기념하는 행사라 한다. 그런데 행사장 어디에도 개천절이라는 말이 없었고 대신 국경일이라는 말만 가득했다. 게다가 축하 꽃다발 중 하나에는 ‘창립일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꽂혀 있기도 했다. 웬 창립일? 고개를 갸웃거리다 생각해 보니 개천절을 번역한게 창립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천절을 크메르어로 번역하고 그 말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니 개천절이 ‘창립일’로 변신을 해 버린 것이다. 이곳에서는 기념일에 꽃다발을 들고 가서 주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와타나 선생님도 꽃다발 하나를 들고 와서 총장과 같이 전달해 주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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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축사 두 명, 그리고 기념 공연이 전부였다. 총영사관과 시엠립 부지사가 축사를 했고 기념 공연으로는 K-Dance와 태권도 공연이 전부였다. 1부 행사를 그렇게 마치고 이어진 저녁 식사. 음식은 푸짐했고 또 맛도 있었다. 잡채와 김치 같은 우리나라 음식도 있었고 캄보디아 음식도 있었다. 제법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바탐방으로 돌아오는 길, 8시 20분이 되어 차는 출발을 했고 늦어서 그런지 와타나 선생님이 제법 속도를 높여 달렸다. 그러다가 순간, 갑자기 와타나 선생님이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가 많이 흔들렸다. 얼핏 보니 앞에 짐을 실은 수레가 가고 있었는데 와타나 선생님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핸들을 갑자기 돌린 것 같았다. 순간이었지만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야간에 이동하는 것은 그래서 힘이 들고 위험하기도 하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편도 1차선 도로는 더 그렇다. 늘 추월하고 추월당하면서 달리는지라 차는 가끔씩 곡예를 하고 그만큼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달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시골길을 달릴 때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농번기에 시골길을 달릴 때는 경운기를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빨리 달린 덕분인지 바탐방까지 세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열한 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늘 캄보디아 달력을 바라보며 생활하고 또 캄보디아인들의 삶에서 비롯된 국경일과 휴일을 지내다가 우리 국경일인 개천절 행사를 만나게 된 것은 천지창조만큼은 아니겠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내게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비록 개천절을 기념하는 행사인지도 모른 채 참여했고 또 ‘창립일’이라는 엉뚱한 말에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더구나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한국의 개천절이 국경일이 아니기에 수업을 다 하고 달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영사관 직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또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아주 뜻깊은 하루였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이 된 개천절의 의미를 이 낯선 땅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더 큰 기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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