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대학교 아이들과 만든 특별한 시간 13

한국어학과 말하기 대회

by 지천

한국어학과 말하기 대회

처음으로 한국어학과 주관으로 자체 말하기 대회를 했다. 그동안은 외부 기관에서 주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대표 학생을 참가시켜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체 대회이기 때문에 참가를 위한 선발 과정을 거치지 않고 희망하는 학생 모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단, 다른 기관에서 주관한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참가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더 많은 학생들에게 상을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한 달여 전에 학생들에게 행사 안내를 하고 신청자를 받은 결과 모두 여덟 명이 참가하겠다고 했다. 3학년 4명, 4학년 4명 이렇게 총 8명이었다. 그동안 행사 준비를 위해 코워커인 보파 선생님이 애를 썼다. 물론 코이카 봉사단원 3명도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학교 주관 말하기 대회는 다른 기관에 대표를 보내서 참가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우선, 교사의 도움이 전혀 없이 학생들 스스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제로 진행된 이번 대회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발표 원고를 작성했다. 그 과정에 교사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니,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한국인 교사 3명 모두 심사위원으로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회 직전 학생들이 제출한 원고를 보니 글로만 봤을 때는 문장, 맞춤법 등에서 잘못된 부분이 많이 나왔다. 그래도 그것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수정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발표 준비를 하게 했다.

다른 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학교 대표로 참가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참가자가 원고를 작성해 오면 몇 차례에 걸쳐 그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잘못 사용된 어휘는 없는지,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자는 없는지,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러운지, 듣는 사람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내용인지 하는 것들을 다 따져가면서 제대로 된 원고를 만드는데 공을 들인다. 원고 수정이 끝나면 발표 연습을 한다. 가장 먼저 신경을 쓰는 것은 발음 부분이다. 글로 썼을 때 나타나지 않는 모든 것, 한국어 발음, 억양, 끊어 읽기 등 세심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수정을 해 가면서 발표 연습을 시킨다. 거기에 더해 비언어적 요소까지 같이 연습을 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동영상으로 찍어서 같이 검토를 한다. 그러다가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하고 수정된 것을 다시 말해 보게 함으로써 무대 위에서 긴장하지 않고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대부분 큰 실수 없이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모두 여덟 명이 원고를 제출하고 발표를 했는데 정말 놀랐던 것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 세 명 정도는 이전 대회 예선에서 탈락했던 원고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지만, 그래서 아주 매끄럽게 발표를 했지만 나머지 아이들도 생각밖으로 발표를 잘해서 깜짝 놀랐다. 더구나 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성한 원고는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말하기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이 아이들 중 입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심사를 하는 내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회자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학년인 2학년 학생 두 명이 맡아서 했다. 남학생 소왓은 한국어로, 그리고 여학생 린나는 크메르어로 진행을 했다. 소왓은 한국에서 2년 정도 일하다 돌아와서 다시 한국어학과 2학년에 편입을 한 학생이다. 두 사회자의 개회 선언, 이어서 양국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이어졌다. 먼저 캄보디아 국기에 대한 경례, 가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이제는 조금씩 흥얼거리며 따라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태극기에 대한 경례,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좀 남달랐다. 이래서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원래는 총장이 참석하여 축하 인사를 하기로 했는데 바빠서 못 오고 대신 부총장 중의 한 명인 Mr. Tieng Morin 부총장이 축사를 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축사를 무척이나 길게 하는데 부총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지난 2월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총장이 인사를 길게 했고 와타나 학부장 역시 학교 안내를 긴 시간 동안 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좋아해서 긴 시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행사에 몇 번 참석했을 때,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 무척이나 많은 이야기를 길게 한다는 것을. 하지만 어느 행사에서든 아이들은 다름이 없었다. 축사를 하는 동안 딴짓하는 아이는 물론 없고 조는 아이 역시 없었다. 한결같은 태도로 그 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에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축사를 길게 할 때마다 늘 감탄을 하면서도 슬쩍 입꼬리를 올리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 앉은 권선생님이 축사가 끝나자마자 참 길게 한다면서 슬쩍 웃음을 보내왔다. 권선생님도 나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같은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슬쩍 웃음을 보내는 것으로 그 말에 동의를 했다.

첫 번째 참가자는 스레이디. 4학년 학생이다. 이 학생은 지난 5월 경 한국교육평가진흥원에서 주최한 2024 국제한국어대회에 원고와 동영상을 보냈다가 예선에서 탈락한 학생이다. 당시 3학년이었던 스레이디와 4학년이었던 몬타이가 원고를 보냈고 나는 스레이디를, 그리고 지금은 귀국하고 없는 장선생님이 몬타이를 지도했는데 두 명 다 예선에서 탈락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국가별 참가자를 보면 캄보디아의 경우 여섯 명 정도가 참가를 했는데 두 학생 모두 예선에서 탈락을 한 것이다. 두 학생 모두 열심히 준비를 했고 우리가 보기에도 비교적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탈락을 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스레이디는 당시에 제출했던 원고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왔다. ‘나의 고향 바탐방’이라는 제목 아래 바탐방의 맛있는 음식과 관광지를 소개하는 말하기였다. 스레이디의 한국어는 비교적 발음이 분명하고 또 억양도 그리 강하지 않아 듣기는 좋았으나 활기는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동안 밀어두었던 원고를 다시 활용해서 그런지 아이도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참가자는 3학년 파나위, 지난번 사물놀이 연습을 할 때 참가를 했고 또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 때 사물놀이 공연을 함께 한 씩씩한 학생이다. 그리고 말하기 대회는 처음 참가를 한 학생이기도 하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의 유명한 여행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한 학생은 처음이라 그런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해 나갔고 중간에 생각이 나지 않아 약간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처음 참가한 것 치고는 비교적 무난하게 발표를 했다.

세 번째는 4학년인 이연 뗍보레이가 ‘제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말 그대로 한국의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음식 중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그 이유를 말했는데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발표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연 뗍보레이는 지난 7월 실시한 1박2일 워크숍 때 직접 김치를 담아 가지고 왔는데 그 맛이 한국에서 먹던 김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란 적이 있었다. 당시 가지고 온 김치는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파김치였다. 발표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두어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나는 뗍보레이에게 지난 7월 행사 때 김치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학생들에게 한국 김치 만드는 법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학생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크메르어로 말해도 되냐고 묻기에 그렇게 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3년 공부한 것으로는 한국어로 김치 담는 법을 한국어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리라. 학생은 생각보다 아주 길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학생들을 둘러보니 모두 진지하게 듣고 있다. 다들 한국 음식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김치와 떡볶이, 김밥 등을 이야기하고 또 김치를 먹어본 학생들이 대다수이지만 김치를 만드는 방법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한국어로 말하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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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3학년 섣띠아 학생이 ‘한국의 사계절’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섣띠아 학생 역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이고 또 학년의 일을 앞서서 하는 씩씩한 학생이다. 그래서 발표도 아주 씩씩하게 잘했다. 하지만 이 학생 역시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조금은 매끄럽지 않았다. 그게 아쉬웠다.

다섯 번째는 4학년 소쿤 학생이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학생은 한국의 문화 중 음식 문화에 대해 계절별로 소개를 했다. 날씨가 따뜻하고 꽃이 피는 봄에는 화전, 더운 여름에는 화채나 팥빙수, 그리고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다양한 과일,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에는 팥죽이나 군고구마, 붕어빵 같은 것을 많이 먹는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4계절과 음식을 연결하여 발표한 것은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었으며 발표 태도 역시 차분하고 좋았으나 내용이 단순하게 음식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른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한국 음식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이 소거된 것이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섯 번째는 3학년 엠 완나 학생이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엠 완나 학생은 한국어를 배우는 세 가지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첫 번째는 케이 팝, 두 번째는 한국 음식, 그리고 마지막이 한글의 특성이었다. 엠 완나는 지난 번 프놈펜에서 실시한 말하기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원고와 동영상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예선에서 탈락을 한 학생이다. 당시 본선에 대비해서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발표도 아주 매끄럽게 잘했다. 특히 엠 완나의 한국어 발음은 무척이나 훌륭했으며 목소리 또한 듣기 좋았다. 발표가 끝난 뒤 다른 심사위원이 한국 노래를 해 보라고 하니 망설임 없이 한국 노래 한 소절을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일곱 번째는 역시 3학년 학생인 떼 완나가 ‘제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는데 참가자 여덟 명 가운데 유일하게 남학생이었다. 떼 완나는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된 한국 드라마와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또 한국어를 배우고 난 뒤에 캄보디아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학생 역시 엠 완나와 같이 프놈펜에서 실시한 말하기 대회 예선에 원고와 동영상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엠 완나처럼 본선에 대비한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발표는 매끄럽게 잘했다. 하지만 한국어 발음이 분명하지 않은 게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발표가 끝난 다음에 이번에는 내가 한국어 노래 한 소절 불러달라고 했다. 지난 6월, 한국어학과의 날 행사 때 떼 완나는 엠 완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을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기에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 것이다. 떼 완나 역시 노래를 아주 잘했고 많은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4학년 섬 쓰레이로엇이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스레이로엇이 중학생일 때 부모가 다른 나라에 돈을 벌러 갔고 그때부터 오빠와 함께 생활을 하다가 오빠마저 프놈펜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여 혼자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교회 센터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영상 통화로 달랬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어학과에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고 또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했다. 비록 말투가 좀 강하여 전달이 덜 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태도는 무척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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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발표가 모두 끝난 다음 10분 간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했다. 그 결과 1등은 마지막에 발표한 쓰레이로엇, 2등은 3학년 엠 완나, 그리고 3등은 4학년인 뗍보레이에게 주기로 결정을 했다. 사실 모두가 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발표를 잘했고 그래서 순위를 정하기 무척 어려웠지만 대회이니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발음이나 내용, 자신감, 전달력을 종합적으로 봐야 했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순으로 입상자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했던 것은 이전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원고를 준비하고 연습을 했던 세 명의 아이들, 스레이디와 엠 완나, 그리고 떼 완나 중 상을 받은 학생은 엠 완나 한 명 뿐이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입상자 두 명은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를 했고 교내 대회인 만큼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원고나 발표 모두 훌륭하여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된 이유가 매끄러움보다는 원고 내용, 그리고 무대 위에서 청중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얼마나 분명하게 전달되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케이 팝 공연을 했다. 2학년 학생 두 명, 3학년 학생 세 명, 4학년 학생 한 명, 그리고 졸업생 두 명이 한 팀을 이룬 춤공연이었다. 매번 놀라는 것은 이 나라 학생들은 선후배 사이에 스스럼이 없고 또 기회가 되면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는 것이다. 학교 행사를 할 때 매번 이런 것을 느낀다. 물론 여기도 선후배 간의 위계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나는 잘 보지 못했다. 이번에 공연한 학생들 모두 지난 번 한국어 학과의 날 행사에서는 각기 다른 팀으로 나와 공연을 했다. 당시에는 학년별로 팀을 꾸려 공연을 했지만 이번에는 학년 구분이 없이 같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다. 그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웠고 또 보기에 좋았다.

공연이 끝난 다음 시상식, 상을 받게 된 아이들이 무척이나 기뻐했다. 물론 상을 받지 못한 아이들 역시 수상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시상식이 끝난 다음 다양한 촬영행사가 이어졌다. 상을 받은 아이들만 한 컷, 거기에 한국인 교사가 결합을 하여 다시 한 컷, 그리고 모두가 한 컷, 이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가끔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리라. 나 역시 11월 8일의 캄보디아를 다른 날보다 더 의미있게 기억을 할 테고. 준비하느라 애 쓴 보파 선생님, 졸업한 뒤에 저학년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 주고 있는 뽄러 선생님에게, 그리고 사회를 보면서 대회를 진행한 2학년 학생 두 명에게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덕분에 행사가 아주 훌륭하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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