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능력시험, 시엠립

by 지천

아침 6시 40분에 집에서 나왔다. 7시에 시엠립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시엠립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치는 날이다. 우리 바탐방대학교에서는 열네 명이 신청을 해서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엠립으로 가는 것이다. 대학생들이고 다 큰 성인들인데 구태여 응원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응원을 하면서 시험장 분위기도 보고 싶었다.

길을 나설 무렵 날은 완전히 밝았고 이미 문을 연 식당에서는 몇 명의 사람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다니는 차량이나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거리는 한산했으며 걸어가면서 보니 이제 문을 열기 시작하는 가게들도 더러 눈에 들어왔다. 신발을 파는 가게, 휴대폰 파는 가게 등등. 이곳 사람들은 아침을 집에서 해 먹지 않고 이렇게 식당에 와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식당은 아침에 일찍 문을 열지만 다른 가게들은 그렇게 일찍 문을 열지 않는 모양이다. 이 사람들이 아침을 밖에서 먹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한두 가지다. 먼저 이 사람들의 일과가 우리와는 다르게 빨리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도 7시부터 1교시 수업을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1교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 20분 동안 그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는다. 출근길, 길가에 늘어선 식당에서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음은 전기요금이 비싸서 아침을 해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이 나라는 전기요금이 제법 비싼 편이다.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해서다. 이러니 비싼 전기를 써 가며 아침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41112_082005.jpg

7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5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탑승 인원을 확인한 버스는 곧장 출발했다. 예약한 손님이 다 왔고 현장에서 탑승할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판단에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가장 많이 다녀온 곳이 시엠립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과 같이 가는 일이 많았고 또 프놈펜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각종 행사 때 자주 오갔다. 그리고 명절 바우처를 받았을 때 물건을 사기 위해 시엠립에 다녀온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 시엠립 가는 길은 어느 정도 눈에 익었다. 군데군데 있는 마을의 이름도 알게 되었고 큰 변화가 없는 들판도 눈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건물, 새를 잡기 위해 아주 좁다랗게 세워놓은 건물들 역시 더 이상 낯선 풍경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예정된 10시에 시엠립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리면서 보니 버스 타는 곳 위치와 모양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아마 버스회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모양이다. 다행히 그 회사는 시엠립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학생들이 머무는 숙소, 시엠림 강 너머에 있는 그 숙소까지도 그리 멀지 않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을 하여 뽄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곧 내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숙소를 구경하다가 돌아보니 뽄러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가서 짐 정리를 하고 10시 30분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아마 방으로 다시 올라간 모양이다. 로비는 한산했다. 데스크에 있는 여성에게 하루 숙박비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25불이란다. 비교적 싼 곳이다. 아마 게스트하우스일 터, 이곳에서 아이들은 한 방에 네 명씩 잠을 잤다고 하니 한 사람당 1박 요금이 8불 정도로 이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것 같았다. 호텔 안팎을 둘러보고 있는데 위에서 4학년 여학생 몇 명이 짐을 들고 내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어제 뭘 했는지 물어보니 앙코르와트를 비롯해서 근처 절 여러 곳을 다녔단다.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니, 재미는 있었는데 많이 더웠다고 했다. 일년 내내 더운 이곳에 사는 아이들도 더위는 반가운 것이 아니었나 보다. 아침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스레이디가 말했다. 지난번 클린 캄보디아 행사에 참여하고 받은 상품권, 브라운 커피 상품권이 있어 빵과 음료를 사 먹었단다. 스레이디와 소포앗이 각각 한 장씩 받았으니 합하여 100불, 몇 명의 아이가 먹기는 충분했으리라. 그런면서 소핑백에 든 빵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어서 3학년 아이들, 졸업하고 시험치러 온 아이들, 4학년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로비에 내려왔다. 헤아려보니 14명이다. 점심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은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그중 3학년 여학생 로앗타나는 배가 아파서 밤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도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약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호텔에서 준 약을 먹었다고 한다. 마침 가방에 정로환이 있어 먹어라 주니 안 먹겠단다. 시험을 앞두고 이 약 저 약 많이 먹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정로환은 그냥 가방에 넣었다. 시험장인 세종학당에 몇 시까지 가냐고 물어보니 12시 30분까지 가면 된다고 하면서도 곧 출발하겠단다. 그렇게 일찍 가서 뭘 하냐니까 그래도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한다. 점심을 사 먹일까 하다가 나도 그냥 차를 탔다. 차는 어제 바탐방에서 올 때 임대를 한 것인데 15인승 버스다.

약 10분 정도 걸려서 세종학당에 도착했다. 세종학당은 시엠립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다. 지난번 시엠립 영사관에서 주관하는 개천절 행사 참여를 위해 시엠립에 왔을 때 이곳을 방문했는데 그때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금방 도착한 것 같다. 두 번째 방문이어서 그런가? 뭐든 처음에는 멀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힘들게 생각된다는데 그래서인가? 아무튼 일찍 도착해서 야외에 설치된 수험생 대기실로 향했다. 가는 길, 건물 외벽에는 시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크메르어와 한국어로 된 안내문을 읽으며 대기실로 가니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현지어 심화학습 첫 번째 튜터였던 나위 선생님이었다. 나위 선생님은 지금 바탐방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저학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뽄러 선생님의 1년 선배다.

20241110_125142.jpg
20241110_125146.jpg

뜻밖의 인물도 만났다. 내가 이곳 바탐방에 오기 전, 프놈펜에서 현지적응교육을 받을 때 CKCC에서 우리 봉사단에게 크메르어를 가르쳤던 비에스나 선생님이다. 당시 두 명의 여성 분이 우리에게 크메르어를 가르쳤는데 다른 한 분은 나이후이 선생님이다. 두 분 모두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말도 제법 잘했다. 이후 단원들이 파견지역으로 흩어진 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비에스나 선생님은 한국어능력 6급에 도전하고 있는데 시험 잘 치라는 덕담을 건넸다.

12시 30분, 학생들이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난 뒤에 나는 혼자 수험생 대기 장소에 남아 책을 펴 들었다. 하지만 아침을 일찍 먹고 나온 터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좀전에 수험생 대기실에서 스레이디가 건네준 빵 한 조각을 먹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점심 요기가 되지 않았다. 가방을 메고 세종학당 밖으로 나와 뙤약볕 아래 걸었다. 이곳으로 올 때 식당 비슷한 것을 본 것 같아 그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올 때 본 장소에 도착을 하니 아이 한 명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에게 물어보니 밥도 없고 국수도 없단다. 먹을 것이라고는 과자 종류밖에 없었다. 그곳은 식당이 아니라 잡화를 파는 가게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물 한 병을 사서 다시 세종학당으로 돌아와서 계속 책을 읽었다. 하지만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머리가 무겁고 눈꺼풀 역시 무거워 책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철망이 쳐진 밖을 바라보니 세종학당에 접해 있는 집 공터에서 할머니 한 분이 회초리를 들고 소를 몰고 있었다. 집 주변은 논이었는데 벼 수확을 끝냈는지 벼를 베어낸 논에는 물이 조금씩 고여 있었고 그 논에서 젊은 남자 한 명이 릴낚싯대를 들고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얕게 고인 논과 그 옆 연못에서 고기를 낚는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젊은이는 자리를 옮겨가며 한참 동안 낚시를 던지고 거둬들이는 행동을 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는 동안에도 날씨는 더웠지만 그래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20241110_130433.jpg

4시 20분, 시험을 마친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보니 다들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몇 명에게 물어보니 무척이나 어려웠단다. 특히 읽기 문제가 어려웠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많았다. 누구든 시험을 치고 나면 대개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번 시험은 정말 어려웠던 모양이다. 6급을 목표로 하는 비에스나 선생님 역시 어려웠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시험을 마친 아이들이 모두 모였을 때 저녁 식사를 어디서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시엠립은 이 학생들에게도 역시 낯선 곳, 말이 통한다는 것을 빼고 나면 어쩌면 나보다 더 정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전에 장선생님이 내게 알려준 크메르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20241110_120603.jpg

시내 중앙 펍 스트리트 가까이 있는 식당은 아직 초저녁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은 서양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각자 메뉴판을 들고 자기가 먹을 음식을 고르기에 바빴다. 나도 캄보디아 음식인 록락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종업원이 땅콩을 가져다주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볶은 땅콩이 맛이 있어서 금방 다 비워버렸다. 그때 한 아이가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길래 쳐다보니 그 아이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자리를 옮겨 내 자리 가까이 오게 하여 맥주를 주문하려니까 그 옆에 있는 여학생 한 명이 자기도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네 명이 가볍게 생맥주 한두 잔씩 마셨다.

내가 이 식당으로 가자고 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사 주기 위해서였다. 인원이 많아 조금 부담이 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 시험친다고 고생을 했으니 밥 한 그릇 사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어쩌면 아이들이 시험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듯하여 더 그랬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하고 난 뒤에 저녁은 내가 사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저녁값을 자기들이 내겠다고 했다. 내가 내도 괜찮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밥값은 각자 내고 대신 내가 음료수를 사 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착한 아이들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이미 해는 졌고 도시를 벗어나니 사방천지가 깜깜했다. 게다가 시소폰까지 가는 두 시간 정도의 거리는 편도 1차선 도로라 우리가 탄 차는 앞차를 연신 추월했다. 때로는 아찔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차를 추월하기도 하고 또 다른 차가 우리 차를 추월하기도 하는 것이 마치 자동차 경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차 안은 천하태평이다. 아이들은 내게 편한 자리를 준다고 맨 앞자리, 그러니까 운전석 옆자리에 앉도록 했다. 15인승 차량인데 나까지 모두 15명, 운전사를 제외하고 15명이 탔으니 다소 비좁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앞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가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주마처럼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나는 쉽게 편해질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다른 아이들의 대선배가 되는 뽄러 선생님이 앞자리,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바닥에 앉아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뭘 하나 했더니 유투브를 통해 노래를 계속 입력해서 듣는 것이었다.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캄보디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몇 곡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국 노래를 찾아서 들려준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그러는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차 안에 울려퍼지는 노래는 대부분 내가 모르는 노래였는데, 뽄러 선생님을 포함한 아이들은 그 노래를 잘 따라불렀으며 노래가 끝나면 지체하지 않고 다른 노래를 입력하라고 소리쳤다. 이렇게 한국 노래가 몇 곡이 계속되었지만 나는 노래는 고사하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내게는 캄보디아 노래나 한국 노래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캄보디아 노래도 몇 번 들으면 그 가락에 익숙해지니까 말이다. 그렇게 계속되던 한국 노래는 어느듯 팝송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그때부터는 차 안이 조용해졌다. 따라부르는 아이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약간 흥얼거리는 수준이어서 따라부르는 소리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캄보디아 노래로 바뀌면서 드디어 세 시간의 여정이 모두 끝이 났다.

이곳 아이들, 겉으로는 무척이나 조용한 듯한데 이렇게 자리가 마련이 되면 거침이 없다. 망설이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망설이지 않고 춤을 추기도 한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또 시끄러운 소리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관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다. 몇 명의 아이가 좁은 차 안에서 노래를 따라부르면 운전자가 시끄럽게 느낄 법도 한데, 운전사의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저 묵묵히 어두운 밤길을 달릴 뿐이었다. 그런 운전자가 고마워서 숙소 앞에서 내리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아 올리면서 인사를 했다. 어꾼 쩌라은!(대단히 고맙습니다!)


keyword
이전 16화한국어 말하기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