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대회

by 지천

어제 저녁 나절에 보파 선생님이 텔레그램에 글을 올렸다. 오늘 8시부터 태권도대회를 한다는 글이었다. 나는 이곳 캄보디아에서 태권도대회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 어제 사 온 대나무찹쌀밥과 과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보파선생님이 지도와 함께 올린 BT Club이 구글 지도에 나오지 않아 가까이 있다고 들었던 City Cafe를 목적지로 해서 찾아나섰다. 걸어서 22분 거리, 상커 강을 건너서도 한참을 가야 한다. City Cafe를 찾아 다시 보파 선생님이 올린 지도를 확대해 봐도 클럽이 나오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그 주변을 몇 번 돌았다. 그러다가 가게에 들어가 BT Club이 어디 있는지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텔레그램에 글을 올렸다. City Cafe까지 왔는데 대회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구글 지도를 확대해서 보니 좀전에 보이지 않던 BT Club 나타나길래 그곳을 목적지로 설정을 해서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헤맸던 곳보다 한 블록 떨어진 골목 안에 대회장이 있어서 내가 찾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함성소리가 요란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보파 선생님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시합을 구경했다. 몇 번의 시합이 끝날 무렵 앞쪽을 자세히 보니 그곳에 보파 선생님이 앉아서 대회 진행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시합 중 이의 신청이 있을 때 비디오 판독을 하는 것 같았다. 가서 인사를 할까 하다가 일에 열중해 있는 것 같아 그만두고 계속 시합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떤 경기든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보고 있는 경기 역시 그러했다. 참가자 모두를 모르는 나는 키가 작거나 아니면 덩치가 작은 아이의 편이 되곤 했는데 그 아이가 초반에 점수를 많이 잃어 한참을 뒤지다가 경기 막판에 힘을 내 따라가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 안타까움이란, 1분만 더 남았으면, 아니 10초만이라도 그 아이에게 더 주어질 수 있다면…….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하고 보내는 시간이 이 순간만큼은 아주 크게,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일상을 이렇게 무겁게 살 수는 없겠지만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일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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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는 시간, 대회장 밖으로 나가 담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내가 코이카 모자를 쓰고 있어서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본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는 캄보디아에 온 지 20년 정도 되었다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캄보디아 경찰 태권도 협회에서 국제 사범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협회 총괄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경찰 태권도 교육원장, CSW 고아원 원장의 직책까지 함께 맡고 있었다. 캄보디아에 고아가 많냐고 내가 물어보니 순수 고아들도 있지만 편부 슬하의 자녀들이 많이 있단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이혼율이 무척 높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일전에 박선생님에게서도 들은 이야기다. 바탐방 대학교 아이들 중에도 부모가 이혼한 사람이 많다는 것, 조손 가정 역시 더러 있다는 이야기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이혼율이 높다고 하던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곳은 모계 중심의 사회이고 가정에서 권한이 가장 강한 사람이 장모입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힘들여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장모가 사위를 내쫓기도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이혼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요. 살다가 그냥 갈라서는 것이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 만나 다시 가정을 꾸리니까요.”

“그러면 아이는 주로 누가 키웁니까?”

“대개 어머니가 키우는데 가끔 아버지가 키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경우 그 아이를 제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보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 고아원이지 어쩌면 보육 시설과 비숫한 곳이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데 국가의 지원이 있습니까?”

“국가에서는 학생의 학비와 학용품비 정도 지원을 해 줍니다.”

“그러면 생활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요?”

“대부분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지요.”

힘이 많이 들겠다고 하니 그냥 웃고 넘어간다. 그 고아원은 코로나19 펜데믹 이전에 자신이 운영했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에 있다가 다시 와 보니 엉망이 되어 있더란다. 아이들은 제멋대로 생활하고 또 이성 간의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안 좋았으며 밤이면 어울려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놀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것을 바로잡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라 조금 의아해했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왜 안 그렇겠냐고 맞장구를 쳐 주니 고마워한다. 이 외에도 통역의 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 원장님이 내게로 와 나를 교수님이라 부르더니, 본부석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 앉아 잠시 경기를 보다가 쉬는 시간에 보파 선생님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바탐방대학교 아이들 시합을 했냐고 물어보니 어제 다 했단다. 그 아이들 보러 왔는데 조금은 아쉬웠다. 그럼 이곳에 바탐방대학교 학생은 몇 명 있냐고 물어보니 일을 도와주고 있는 여자애 한 명 뿐이란다. 밖으로 나와 처음 헤맸던 시티 카페에 가서 아이스 라테 네 잔을 샀다. 한 잔에 2.5불, 이곳 물가치고는 제법 비싼 편이다. 경기장에 도착하여 원장님과 보파샘, 그리고 학생에게 한 잔씩 주고 다시 경기 모습을 지켜보는데 다시 원장이 찾아와 점심 때 라면 끓이는데 같이 먹겠냐고 물어본다. 그러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원장이 데리러 왔기에 가니 제법 큰 냄비에 라면이 끓고 있었다. 내가 한국 라면 냄새가 난다고 하니 신라면이란다. 그곳에서 다른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중의원으로 일하다가 얼마 전에 캄보디아에 왔는데 한 달 후에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라는 분이다. 우리 한국인 외에도 이곳 체육관 관장인 캄보디아인, 그리고 심판을 보던 여성 한 분 이렇게 다섯 명이서 라면을 다 먹었다. 먹고 난 뒤 원장님은 그릇을 씻으러 가고 나와 다른 한국인 한 분은 캄보디아 여성 분이 깎아다 준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과 자신이 친구처럼 지내게 된 계기, 고아원 옆 부지에 의료 시설을 지어 사업을 해 보겠다는 것 등이 그와 나눈 이야기였다. 다시 오후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나는 보파 선생님과 원장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했다. 두 번째 하는 빨래인데 이번에는 깨끗하게 빨린 것 같다. 처음 빨래를 했을 때 찌꺼기가 옷에 많이 묻어나와 관리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처리를 해 주었다. 세탁기를 떼어가서 고쳤는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교체를 했는지 어쨌든 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잠시 태권도 시합장에서 한국인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그 모두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해 봐야 할 것이라 정리하면서 휴일 한나절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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