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에서 만난 세 종류의 개
캄보디아에 와서 많은 개를 봤다. 프놈펜에 있을 때도, 바탐방 와서도 그랬는데 바탐방에서 더 많은 개를 봤을 것이다. 당연한 일, 바탐방은 프놈펜보다는 작은 도시이고 또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니까 개가 많이 다니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들이다. 한 마리,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정도가 이곳저곳 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거나 아니면 그저 엎드려서 망중한을 즐기는 그런 모습의 개 말이다. 가장 속 편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내가 만난 두 번째 개는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면해 있는 길 건너 집 옥상에서는 개를 키우는 모양이다. 옥상에 개집이 있고 그곳에는 최소 다섯 마리 정도의 개가 있다.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개는 밤 시간, 특히 잠자리에 들 무렵인 열 시가 좀 넘으면 단체로 짖는다. 한 마리가 짖으면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다. 다행인 것은 짖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몹시 신경이 쓰인다. 우리집이 4층,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하면 5층인데 개가, 개들이 살고 있는 곳도 우리집과 비슷한 높이의 옥상이다. 그러니까 개 짖는 소리가 방 안까지 거침없이 밀려든다. 시끄럽다. 왜 이렇게 개를 개장 안에 넣어 키울까? 식용으로 사용하려는 것일까? 늘 자유롭게 다니는 개들만 보아온 내게 그렇게 갇혀서 슬픈 소리로 우는 개를 보는 것이 상당히 낯설다.
한 번은 주말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간 적이 있었다. 바탐방에 와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간 곳, 그러니까 댐이 있는 곳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 나는 엉뚱하게도 들판에 난 길로 달리고 있었다. 그 길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집을 만났는데 그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두 마리 개, 제법 덩치가 큰 개가 나를 보고 맹렬히 짖더니 그 중 한 마리가 나를 따라 달려왔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도 논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어 금방 개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멀리 들판 가운데 있는 집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개는 그것을 무시하고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자전거 위에서 비틀거리면서 발로 그 개를 쫓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그 개는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따라왔다. 위협적인 소리와 몸짓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집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그 개는 내 뒤를 쫓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순간적으로 개에게 물리면 어떻게 하냐는 생각과 함께 무척 겁이 났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 공수병 예방 주사를 두 번 맞았다. 동남아 지역으로 파견을 가는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접종을 하는 주사다. 그만큼 개물림 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그런 예방 조치를 취한 것이겠지만, 개에게 쫓기기 전까지는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일전에 우리 동기 한 명이 프놈펜에서 여러 마리의 개가 달려드는 듯해서 엄청 놀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다. 물론 나를 쫓아온 개의 모습은 내가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보아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개라 하더라도 목줄을 하지 않은 채 풀어놓지는 않는다. 그리고 집집마다 담장이 있어 집 안에 있는 개가 밖으로 뛰쳐나와 지나가는 행인을 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들판에서 만난 개는 목줄을 하지 않았고 또 그 집 역시 울타리가 없는, 말그대로 들판 가운데 홀로 서 있는 그런 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서 만난 개들, 집 옆으로 지나갈 때 맹렬하게 짖으며 대문을 바락바락 긁는 개의 모습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 개는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 혹은 주인의 요구에 충실한 것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개에게 쫓기면서도 그것이 개의 본성적인 모습, 혹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캄보디아에 와서 본 것은 이렇게 세 종류의 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협하지도 않는 개, 갇혀서 울부짖는 개, 그리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다고 생각되는 개. 무엇이 진짜일까? 어쩌면 개는 이 세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서로가 간섭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개나 사람이나 서로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그만큼 무심할 수 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갇혀서 지내는 개는 스스로 그 상태를 용납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짖는다. 내게만 왜 이러냐고 하소연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 자신의 영역을 지나갈 때,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몸짓 또한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개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주어진 환경에 따라 살고 사랑하는 방식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 단지 본능 만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덧붙여 이야기하면 내가 캄보디아에 와서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로드킬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도에서 차를 달릴 때 길 위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짐승들을 가끔 본다. 물론 개 종류는 아니다. 주로 고라니를 비롯하여 야생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생 개가 흔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집에 묶어두는 개는 그리 많지 않다. 목줄을 하고 사람과 같이 다니는 개는 보기 드문데 그러한 개는 주로 서양인들이 산책을 할 때 같이 다니는 개다. 그래서 버스를 타거나 툭툭을 타고 도로를 지나갈 때 길 옆에 엎드려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개를 아주 많이 만나게 된다. 가끔은 개가 도로를 건너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그래도 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한 개를 본 적이 없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기 개는 가야 할 때와 가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멀리서 오는 차가 언제쯤 자기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지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시간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들은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는 법을 몸으로 익혀 유전자 속에 저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과 더불어 살아본 적이 없는, 인간과 함께 살고는 있으나 늘 목줄에 묶여 있어 스스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인간의 판단에 끌려다니기만 했던 개는 능동적으로 상황을 알아차리는 힘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주체적으로 판단을 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개, 그래서 그들은 자기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캄보디아에서 목줄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는 개들을 보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