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우기인가
새벽에 빗소리에 잠을 깼다. 드문 일이다. 이곳은 우기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비가 생각만큼 자주, 많이 내리지 않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고 온다고 해도 오후에 소나기처럼 한바탕 퍼붓다가 곧 그친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무척이나 거센 소리를 내고 있다. 원래 방 안에서는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옥상에 올라가면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거센데, 오늘은 다르다. 방에서도 빗소리가 제법 강하게 들린다. 이곳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동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도 빗소리는 여전해서 아이들 등굣길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니 등굣길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아예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 더 되었다. 아침에 2학년 니싸이가 오늘 수업을 하는지 텔레그램으로 물어왔는데 아이들 역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출근을 할 무렵, 비가 다소 소강 상태를 보였다. 다행이다. 이 정도 비면 아이들 학교에 올 수 있을 듯했다.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등ㆍ하교를 한다. 그런데 비가 와도 아이들이 비옷을 입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아예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비가 가늘게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를 탄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툭툭을 타고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여덟 시 이십 분 정도, 아니나 다를까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포장도로가 온통 물바다다. 여기는 배수 시설이 좋지 않은지 비가 많이 오면 이렇게 길에 물이 고인다. 다행히 툭툭 기사가 교문을 넘어 물이 고이지 않은 곳까지 우리를 태우고 가서 물길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다.
8시 50분부터 시작하는 2교시, 역시 아직 학교에 오지 못한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았다. 오늘은 아이들이 2학년에 진급을 해서 맞이하는 첫 시간, 보이지 않는 아이는 짠타, 피싸이, 모세, 비타, 푸엉이다. 1학년 때 학교에 오다 말다 한 쯘렝과 킴롱은 결국 학업을 포기한 모양이다. 하긴,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도 치지 않았으니 진급을 할 수 없었을 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리고 남학생 한 명이 편입을 해서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왓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한국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다시 캄보디아로 와서 한국어학과에 편입을 한 친구다. 물어보니 밀양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내 고향이 대구라 하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청도, 동대구와 같은 지명을 이야기한다. 나도 대구에서 청도 지나 밀양, 그리고 삼랑진, 부산으로 이어지는 지명을 이야기하니 그 친구는 더 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에 오래 있었으면 한국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해서 내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 중에서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크메르어로 통역을 해 주기로 했다. 남자가 한 명뿐이었던 2학년, 여기에 한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남자 한 명이 더 들어왔으니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되면 그 친구와 식사라도 하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물에 잠긴 학교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난 뒤 휴대폰을 보니 보파 선생님에게 문자와 사진이 와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선생님. 오늘 오전에는 학교 안에 물이 많아서 학교 안에 못 들어간다고 했어요.”
어젯밤 아홉 시 경에 소나기가 쏟아지다가 곧 멈추었고 또 잠을 잘 무렵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밤새 비가 그렇게 많이 왔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에 잠긴 학교가 궁금해서 그냥 출근하기로 했다. 오늘은 수업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물에 잠겼다는 학교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학교 가는 길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로는 비가 많이 온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상습적으로 도로가 물에 잠긴다는 ‘따 떰봉 크르뇽’ 동상 주변에도 물이 고여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는 왜?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도착하니 정문 쪽에는 사람이 나와서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우리가 탄 툭툭을 가리키며 같이 탔으면 좋겠다는 몸짓을 보내왔다. 그 여성을 태워서 후문 쪽으로 가는 길에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중국에서 왔다고 한다. 공자학당에 파견 나온 사람인 모양이다. 후문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길이 물에 잠기지 않았다. 하지만 후문을 들어서 조금 더 건물쪽으로 가니 건물 주변에는 물이 제법 많이 있어서 도저히 툭툭을 타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툭툭에서 내려 바지를 걷고 물속을 걸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3층에서 물에 잠긴 건물을 살펴보며 사진을 찍었다. 건물을 빙 돌아가며 고인 물은 마치 해자와 같았다. 출근길 도로에는 물 고인 곳이 거의 없었는데 학교 건물 주변은 온통 물웅덩이다. 지대가 낮은 곳에 건물을 세워서 그런 모양이다. 보파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아침에 학교에 갔지만 들어갈 수 없어 다시 집으로 갔단다. 그리고 오늘 학생들도 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보니 와타나 선생님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Good morning teachers NUBB is flooded now. We have no class today” 그리고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건물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에 다시 밖으로 나와 연못 쪽으로 갔다. 군데군데 물이 고이지 않은 도로가 있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특히 연못은 물이 넘쳐 도로와 구분이 되지 않았고 연못 주변에 놓여 있는 벤치도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나무와 벤치와 도로가 모두 물에 잠겨 있어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우기라 하지만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아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8월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을 한 장선생님이 작년 물에 잠긴 학교를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그때 실감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물속을 걸어서 가끔 가는 연못가 카페에 갔다. 연못에 있던 물이 넘쳐 카페 주변도 온통 물바다인데 그래도 카페는 문을 열었다. 아이스라테 한 잔을 마시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에 게 구글 번역기를 동원하여 이 물이 언제 빠지는지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후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당연히 한국어는 더 모르는 상태였다. 이럴 때 내가 크메르어를 좀더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그러면 이런 학교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까.
커피를 다 마시고 연못을 빙 돌아 학교 건물로 향했다. 카페를 나올 때 종업원이 따라 나와 손짓으로 나무 밑을 보라고 한다. 보니까 지렁이 여러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내가 한국어로 지렁이라고 하니 그 아가씨는 몇 번 지렁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웃었다. 그 웃음을 뒤로 하고 연못 주변으로 걸어가다 보니 물속에 지렁이가 많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엇인가 내 옆을 스쳐 연못으로 빠르게 사라졌고 그것이 지나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 연못에 사는 물고기가 물에 잠긴 도로 위까지 올라왔다가 내 인기척에 놀라 잽싸게 연못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나도 갈라지는 물살과 그 소리에 깜짝 놀랐고 물고기도 놀란 모양이다. 일전에 읽은 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기가 되면 스님들이 탁발을 하지 않고 수도에 전념을 한단다. 그 이유는 물속을 걸어다니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물속에 있는 생물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속을 조심해서 걸었다. 걸으면서 보니까 물속에는 여전히 지렁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물속에는 나뭇가지들도 많이 잠겨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또 놀라기도 했다. 혹시나 뱀은 아닌지 해서 말이다. 다시 건물로 돌아오는 길, 그래도 물속을 걸어서 학교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바지를 걷고 물속을 걷는 사람들, 나와 같은 모습이다. 깨끗하지 않은 물, 흙탕물에 가까웠고 또 물 위로 나뭇잎을 비롯하여 여러 이물질들이 떠 있었지만 물속을 걸어다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밖에는 어느듯 햇살이 내비치고 있었고 사무실 안은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다. 그때 학부장 왓타나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Dear Teacher, According to the weather forecast, the weather in Cambodia will decrease from late November 2024 to late January 2025. So it may be colder than before. During this changing weather, it is easy to catch a cold. So could you please be well-prepared and stay warm.”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 더운 계절에 감기라니. 하긴, 한국에서도 여름에 감기에 걸리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더구나 더운 나라니까 기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적응이 잘 안 될 수도 있겠지. 권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영상 10도 정도까지 떨어지면 얼어죽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늘 30도 이상의 기온과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 심하면 40도가 넘는 더위를 일상으로 맞이하던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와타나 선생님이 보낸 문자를 읽고 나니까. 그런데 따뜻하게 지내라니, 지금까지 더위와 씨름을 하면서 살았는데 따뜻하게?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 학부장님도 캄보디아 사람이지.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 햇살은 쨍쨍한데 물은 별로 많이 빠지지 않은 것 같다. 다리 둥둥 걷고 물속을 걸어서 가는데 햇살이 강해서 그런지 물이 조금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물속을 걸을 때는 시원하거나 혹은 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사이 햇살을 받은 물이 뜨거워진 듯했다. 아직까지 학교에 고인 물이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 같은데 내일도 학교에 아이들이 못 들어올까 걱정이 된다. 내일은 2학년 수업.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서 그런지 수업을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다. 적어도 중간고사까지는 수업을 해야 하고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도 역시 절반쯤은 나가야 내 뒤를 이어서 하는 사람에게 덜 미안할 듯도 하다. 오늘 저녁에는 비가 더 오지 않기를, 그래서 아이들이 내일은 모두 등교해서 수업받을 수 있기를 빌어 본다.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다
이곳 바탕방에 와서, 아니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으로 비옷을 입고 퇴근을 했다. 오후 네 시쯤, 아이들 시험친 결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곧 그치겠거니 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졌다. 빗줄기가 약했다 강했다 반복을 하면서 비는 계속 내리고 자전거를 타고 갈지 툭툭을 타고 갈지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래도 잠시 기다리다 보면 비가 그칠 것 같기도 해서 5시 30분이 될 때까지 계속 일을 했다. 우기가 시작된 이후 거의 매일 비가 오지만, 대부분 소나기처럼 왈칵 쏟아지다가 금방 그치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출ㆍ퇴근 시간에 비를 맞은 일이 거의 없었다. 간혹 집에 가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더라도 크게 젖지 않고 집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을 보니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대개 하늘을 보면 비가 그칠지 계속 올지 알 수 있다. 여기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안다. 여기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험을 해 보면 안다. 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더라도 하늘 한 켠이 맑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비는 금방 그친다. 반대로 비가 오고 하늘 역시 어두컴컴해지면 이 비는 더 많이 더 오래 올 것이다. 오늘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도로에는 물이 고인 곳이 많았으며 흙탕물이기에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물이 고이지 않은 부분으로 달리고자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오토바이나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칫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물 속을 자전거 타고 가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움푹 파인 구덩이는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하지만 같이 위험하다면 운전자를 믿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도로에 있는 물을 피해 중앙 쪽으로 간다고 해도 그들은 나를 피해 가거나 아니면 천천히 운전을 해서 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도로에 고인 물을 피해가면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따 떰봉 크르농 동상이 있는 네거리 가까이 갔을 때, 젊은 남녀가 탄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에 있는 물 속을 질주해 갔다. 당연히 나는 물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오토바이였기에 물벼락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오토바이가 갈라 놓은 물살이 내 자전거와 거기에 타고 있던 나를 덮친 것은 사실이다. 급히 피하려 했으나 그럴 경우 더 위험할 수 있기에 그냥 달렸다.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 사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가장자리에 고인 물 속으로 가더라도 천천히 가면 옆사람에게 그리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문제는 속도를 많이 냈을 때 물살은 상대적으로 더 커져서 옆사람을 덮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물에 젖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세계 어디에 가도 있는 짖굿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이 나라 사람의 특성은 아닌 것 같았다. 집으로 가면서 비슷한 경우를 몇 번 더 당했는데, 대부분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물 속을 천천히 갔다. 그래서 옆에 가는 나는 별 문제 없이, 물세례를 별로 받지 않고 내 길을 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지역에나 있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사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운전하는 남자아이는 젊었고 또 뒤에 타고 있는 여자 역시 젊었기 때문에, 충분히 치기를 부릴 나이였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그 모습을,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는데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등학생 정도 된 아이 둘은 교복을 입은 채 비를 맞으며 재빨리 달려가며 입으로는 무엇인지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옷을 입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달렸다. 몇몇 사람들이 비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중에 조심해야 할 것은 역주행을 하는 오토바이들이다. 이곳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는 역주행을 해서 달리는 일이 많다. 빙 돌아서 유턴을 해서 달리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그 일이 일상화되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조심은 해야 한다. 특히 비 오는 날, 내리는 비로 인해 안경이 뿌옇게 되고 그래서 앞이 잘 안 보일 때는 더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 상대편의 시야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가로수로 심어놓은 나무, 그 나무에 달린 꽃에서 아주 진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평소에 늘 맡아오던 향기였지만 오늘은 유달리 더 진하게 다가왔다. 아마 비가 내려 공기가 아래로 처지기 때문에 꽃향기가 더 진하게 다가왔으리라. 그꽃 이름, 일전에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보아서 그런지 이제는 익숙하다. 흰 꽃이 나무에 매달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도 익숙하고 또 우리나라 동백처럼 송이째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도 익숙하다. 일년 내내 피어 있는 것 같은 그 꽃의 향기는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향기롭다. 그래서 그 꽃이 나는 좋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저녁을 먹고 난 뒤 잠시 멈춘 듯하다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빗줄기도 강했다 약했다 하면서 내 생각을 멀리멀리 보내버린다. 이렇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비옷을 입고라도 집으로 가야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 아주 잘한 일 같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도 집에 오지 못했을 것 아닌가?
소나기, 말 달리는 소리
어제 2학년 시험을 친 것으로 2학년과 3학년 2학기 학사일정을 모두 마쳤다. 오늘은 그래서 수업이 없다. 하지만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에 있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더 좋다는 것은 덜 게을러지고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전에 파견 동기 대표에게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 캄보디아에 오는 신규 단원들, 그러니까 162기와 163기 단원들 현지적응교육을 받을 때 동기 대표가 그들 앞에서 캄보디아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해 와서 메일을 보낸 것이다. 어제 메일을 받고 마침 사무실에 있는 장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메일을 받았는데 자기가 짧게 답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같은 동기로서 좀더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 오늘 메일을 보낸 것이다.
보파 선생님과 함께 학교 밖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잠시 일을 보고 있다가 연못 쪽으로 갔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으며 멀리서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처음이다. 비가 몰려오는 것을 소리로 듣는 것이. 두두두두 마치 말들이 달리면서 내는 듯한 소리,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으로 하늘만 쳐다보기는 했지만, 하여튼 그것은 비가 몰려오면서 내는 소리였다. 아니나다를까 곧이어 엄청나게 거센 소나기가 쏟아부었다. 건물 밖으로 난 복도, 지붕으로 덮여 있는 그 복도는 금세 들이치는 빗물에 젖어버렸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다가 나도 같이 젖어버렸다. 바람에 실려온 빗줄기는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사무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오니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복도에 고인 물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퍼내고 있다. 짧은 시간 내린 비가 복도까지 들이쳐 흥건하게 물이 고인 것이다.
소나기가 그친 듯하여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가는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가랑비를 맞으며 연못 쪽으로 걸어가니 연못 옆에 있는 축구장에서 축구 연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유니폼은 제각각인데 같이 패스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 벤치에는 학생 두 명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벤치가 비에 젖었을 텐데, 하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운동장을 보다가 벤치를 보고 벤치를 보다가 다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참 싱그러운 모습이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학생 두 명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가까이에서 보니 니싸이와 비타다. 둘 다 1학년이고 둘 다 여학생이다. 마주 서서 어디 갔다 오냐고 하니까 니싸이가 도서관에요 한다. 도서관에서 뭐 했어요? 하니 숙제 했어요 하고 대답한다. 니싸이는 1학년이지만 벌써 어느 정도는 대화가 가능하다. 옆에서 웃고 있는 비타에게 어디 갔다 오냐고 물으니 한참 있다가 더듬거리며 도서관이라고 대답한다. 비타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듯한데 아직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을 쳐다보니 웃고 있다. 풋풋한 웃음을 지은 얼굴, 그만큼이나 풋풋한 몸짓. 아 이 아이들 19살이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어떻게 웃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을 보면 어떠한 웃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눈꼬리가 약간은 올라가는 듯한 웃음, 선한 미소다. 두 아이 모두 그러하다. 이곳 아이들, 아니 사람들은 잘 웃는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음을 보낸다. 살며시 웃는 미소도 있고 입술을 약간 벌리고 웃는 웃음도 있다. 두 아이 역시 교실 안에서 보던 웃음을 눈가에 매달고 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걸어가는 뒷모습 역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