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서도 독기와 몰염치를 볼 수 있을까
2학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짠타가 저 앞에서 친구들과 걸어가고 있다. 내가 짠타를 불렀다. 슬금슬금 다가온 짠타, 어렵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언제 가냐고, 한국으로 언제 가냐고 묻는 질문이다. 어렵게 말을 꺼낸 짠타가 고맙다.
짠타는 1학년 때도 나와 같이 공부를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예쁘고 또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한국어 발음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한국인 발음과 유사한 것 같아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보다 결석하는 날이 많다. 교회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결석한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고향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향이 어딘지, 고향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소통을 할 수 없어 내가 안타깝다.
아침에 일어나 폰을 열어보니 시골 초등학교 동창들 모이는 단톡방에 첫눈이 내렸다는 말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보니까 제법 많이 내렸다. 아니, 벌써? 이제 11월 말, 아직 12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눈이 왔단 말인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이 함께 따라온다. 오후에는 대구에도 눈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눈이 오지 않는 이곳 캄보디아에서 첫눈 소식을 듣는 것도 즐겁다. 이 아이들, 대부분 눈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눈에 대해 물으면 알긴 안다. 이 아이들은 눈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마냥 신기하기만 할 뿐 별 생각이 들지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눈과 관련된 기억, 혹은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눈싸움, 눈사람, 미끄러운 눈길, 그리고 첫눈에 서린 다양한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거세된, 그저 자연 현상의 하나로 하늘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내린다는 그 정도의 느낌만이 있지 않을까? 그저 신기한 느낌 이상의 어떤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모든 것은 신기하게 느끼는데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호기심이 다른 삶, 다른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곳 아이들이 눈에 대해 신기하게 느꼈던 만큼 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녁에 한창훈의 소설 『홍어』를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네들에게 세월이란, 수줍음이 무늬가 되던 몸에서 독기가 새록새록 피어 나오다가 끝내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지는, 그 독한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다.”
바닷가, 거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어머니들 이야기, 정말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아니 바닷가의 삶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자신이 만든 가정이라는 그 위대한 것들을 온전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어쩌면 자신보다 더 소중하고 더 아름다운 자식들을 위해서 그들은 독기를 피워올리고 끝내 스스로 몰염치의 아성을 굳혀가는 것이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이곳 사람들 역시 그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 어쩌면 우리의 어촌이나 농촌, 혹은 도시의 골목에서 살아가는 어머니들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의 어머니들을 만나면 쉽게 독기와 몰염치를 떠올릴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인가? 가족에 대해, 혹은 자식에 대해 애정이 덜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좀더 초탈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집을 마련한다거나 돈을 모아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 이국의 한국 어머니들보다 약해서 그런가? 생각해 볼 일이다. 시장 난전에 과일을 펼쳐놓고 연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여성, 과일 서너 개에 1000리엘, 우리 돈으로 약 300원 가량을 받고서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 이들에게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하긴, 우리네 어촌, 농촌, 도시 골목의 어머니라 한들 모두가 한결같이 독기나 몰염치를 달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독기나 몰염치를 시도때도 없이 풀풀 풍기면서 사는 것은 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울타리, 가족의 울타리가 침범을 당했다고 느낄 때, 특히 자식의 삶이 관련된다고 느낄 때 거침없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평소 자신의 삶과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을 때는 독기나 몰염치 역시 드러나지 않게 저 밑바닥에 감추고 있을 터다. 그래서 내가 이곳 어머니들을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라고 자신의 삶이 없고 자식이 없고 또 가족이 없을 것인가? 이들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침범을 당하는 일들이 없을 수 없을 터, 그러한 일이 벌어질 때 이들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고 이들이 내뱉는 말은 또 어떤 것일까? 우리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이곳 어머니들 역시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는 어떤 몸짓도 보이지 않는 낯선 사람, 그것도 먼 이방에서 온 사람에게 독기나 몰염치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고 또 이들의 이해 관계에 한 발 물러선 상태에서 만나는 것이기에 이들은 웃음으로 나를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순수한 미소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은 결코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들의 삶이, 이들의 생각이, 이들의 울타리가.
다문화 고부열전
아침 여덟 시,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열 시에 아내가 진명고향마을로 어머니 면회를 갔다. 원래는 둘째하고 같이 가기로 했는데 둘째가 일어나지 않아 혼자 갔단다. 진명고향마을은 요양원이다. 그곳에 치매에 걸려 이제는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어머니가 계신다. 원래 상주에 있는 연세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집 가까이 모신다고 해서 지난 2019년 10월에 이곳으로 모셨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진명고향마을로 오신지 벌써 4년 반이 훌쩍 지났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동안 상태가 더 나빠져 이제는 자식이나 손자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주 면회를 갔었고 그때는 생활하고 있는 방까지 가서 모든 것을 살펴보고 대화도 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는 면회를 하기 힘들었고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때도 교도소 면회를 하듯이 마이크를 통해 면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이 3년이고 그래서 어머니의 정신은 더 먼 세계로 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원래 그 프로그램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캄보디아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유투브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그 프로그램이 눈에 띄어 보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은 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세계테마기행을 비롯하여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는데 그때 이 프로그램도 본 것이다. 비록 몸으로 가보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다른 나라 풍광과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본 것은 ‘버럭하는 시어머니, 캄보디아댁 코랍’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살다가 경북 영천으로 시집을 온, 결혼 5년차 샤오 코랍이라는 여성과 시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다. 경북 영천은 농사를 위주로 생계를 꾸려가는 곳이고 이들 역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빠르게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코랍은 어느 정도 알아들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코랍이 사용하는 한국어 역시 경상도 사투리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한국 사람과 결혼을 했을 것이며 당연히 한국어는 경북 영천에서 생활하면서 익혔을 테니까 사투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콩농사와 감따기 같은 농사일이 나오고 부지런한 시어머니와 느려터진 며느리가 나온다. 캄보디아에서 온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보기에 낭창한 사람이다. 그래서 큰소리로 부르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코랍의 입장에서는 그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갈등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어머니가 그렇게 큰 소리로 일을 시키고 아이들 주눅들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와 농사일에 억척인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들의 손에서 자란 코랍, 아직도 코랍이 만든 음식은 짜고 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비록 5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코랍은 아직 캄보디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게 시어머니의 불만이기는 하지만 코랍은 자신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는 시어머니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원래 경상도 말이 거칠고 빠른데 거기에 못마땅함까지 얹어 말을 하니 곱게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그 말이 나오는 상황,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말에 담긴 뜻조차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분위기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어머니를 닮아가는 듯한 코랍의 모습을 남편이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할까.
이러한 코랍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동네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혼자서 말이다. 코랍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또 집 구석구석 다 찾아보아도 코랍이 보이지 않자 시어머니는 코랍의 여권이 제대로 있는지부터 살핀다. 그러면서 시집와서 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을 갔다는 외국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옷장을 열어보지만 옷은 그대로 있다. 그래도 걱정이다. 급하게 집 밖으로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며느리 못 봤냐고 물어보지만 아무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길을 허둥지둥 걷던 시어머니 눈에 멀리서 걸어오는 코랍이 보인다. 어디 가면 간다고 해라, 괜히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고 큰소리 치는 시어머니, 그 소리를 듣는 며느리는 속상해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렇게 이들의 갈등은 조금씩 깊어진다.
딜레마다. 외국에서 온 며느리가 못마땅한 것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보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몰래 떠날까 걱정을 한다. 무엇 때문일까? 어렵게 한 결혼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 며느리가 떠나버리면 다시는 며느리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 그리고 이미 자식을 두 명이나 낳았는데 다시 아들이 혼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이것이 시어머니가 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이 딜레마를 안고 두 사람은 캄보디아 친정으로 향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가 고부 간의 갈등 해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며느리가 살아온 곳에 가서 그들의 삶을 본다면 며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느리 코랍의 고향은 캄보디아 따께오. 프놈펜에서 세 시간 걸린단다. 따께오라는 지명이 반갑다. 우리 동기 두 명이 그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로부터 듣기로 지금은 프놈펜에서 따께오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4년 전인 당시에는 3시간 정도 걸렸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70세 아버지와 41세 큰언니를 비롯하여 코랍의 가족들을 만난다. 엄청나게 기쁜 모습으로 이들을 환대하는 가족들, 그럼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 환대를 몸으로밖에 느낄 수 없는 시어머니, 한국 같으면 큰 소리로 그 기쁨을 나누며 같이 즐거워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그래서 생각한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며느리는 5년 간 어떻게 견뎠을까? 가장 초보적인 이해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답답한 면만 봤고, 그래서 말대꾸하면 더 혼을 냈다는 시어머니다. 하지만 코랍의 식구들과 어울리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연장선에서 며느리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진다. 그리고 왜 며느리가 캄보디아 식으로 결혼식을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졸랐는지도 안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역시 부족하기만 한 며느리지만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있다. 캄보디아에 와서야 이런 대화도 가능했다.
“엄마, 제가 한국 국적 취득하면 안 될까요?”
“국적 취득 벌써 해가 되겄나?”
“벌써 해도 되지. 결혼한지 5년, 6년인데.”
“엄마한테 전화도 없이 나가뿌만 엄마가 믿을 수 있나?”
“이 정도면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지. 니가 자꾸 나가버리니까 겁이 나서 퍼떡 하라 소리도 몬 하겠다.”
“시우 아빠 술 안 먹으면 내가 나가겠나, 나갈 일 있겠나?”
“먹는 술을 우얘 딱 끊어라 하노.”
“하고 싶어요. 내 친구 중에는 내 뒤에 왔는데 벌써 한국 국적 취득이 2년 됐어요.”
“믿으만 하든지 해야지. 생각해 보고 하든지 하자.”
한국에 시집와서 국적을 취득하면 집을 나가 혼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시어머니는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당연히 반겨야 할 국적 취득 문제에서도 머뭇거리게 된다. 어쩌면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랍의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엄마는 제가 가 버릴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가족으로 생각 안 하고 아니면 저를 못 믿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결론은 역시 해피 엔딩. 캄보디아에서 코랍의 참모습을 본 시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의 속내를 알게 된 며느리 코랍은 서로를 이해하며 한국에 돌아가서 더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