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우리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바탐방대학교 4학년 학생 3명과 코워커인 보파 선생님이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 집을 찾은 마지막 손님이 될 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생활하는 공간에 아이들이 찾아올 일은 거의 없다. 동료 단원들 역시 그러했다. 만날 필요가 있을 때는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면 된다. 그래서 내가 동료의 집에 가는 일도, 동료가 내 집에 와서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얼마 전에 4학년 뗍뽀레이가 김치를 담았다며 사무실로 한 통을 가져와 내게 주었다. 이 아이는 유투브를 통해 김치 담는 법을 배웠다는데 꽤 잘 담는다. 지난 7월 썸롯으로 1박2일 워크숍 행사를 갔을 때도 이 아이가 김치를 담아왔더랬다.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그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지난 11월, 학과에서 주관한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학생에게 김치 담는 법에 대해 학생들에게 말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김치를 받고 내가 고맙다, 잘 먹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 집에 오면 김치찌개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언제 가면 되냐고 묻기에 금요일 집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일이 성사된 것이다.
11시, 조금 일찍 도착한 뗍보레이와 주차장에서 만나 봉축 시장으로 갔다. 돼지고기와 파, 그리고 고추를 조금 사기 위해서였다. 시장에서 이것 말고도 계란과 당근, 오이 등을 샀는데 이건 내가 먹을 것이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약속한 1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아직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 보게 하니 피싸이는 곧 도착을 할 것 같고 릴리는 좀 늦을 것이라 했다.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 피싸이가 도착을 하여 집으로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김치찌개 끓이기를 위한 준비를 했다. 먼저 방금 사온 돼지고기를 먹을 만큼 잘랐다. 처음에 칼로 하다가 칼이 너무 안 들어 가위로 잘랐다. 다 잘라갈 무렵 피싸이가 칼을 밥그릇에 문지르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칼날을 날카롭게 만든 모양인데 제법 그럴듯했다. 돼지고기를 썰고 난 뒤 김치를 써니 잘 들었다. 참, 그동안 미련하게도 잘 들지도 않는 칼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나 보다. 칼을 가는 도구가 없다는 생각만 했지 다른 방편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힘주어 칼질을 하거나 칼 대신 가위를 쓸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김치를 썰어서 찌개 냄비에 넣은 뒤 냉장고에서 들기름을 꺼내 아이들에게 냄새를 맡게 해 보았다. 이곳에서는 들깨를 생산하지 않아서 들기름을 잘 모른다. 수업을 할 때 그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냄새가 좋다고 하면서도 고소하다는 말을 몰라서 그런지 고소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참기름 남은 것을 꺼내서 역시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둘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표정을 봐서는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약간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보파 선생님이 아래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릴리가 마중을 나갔다. 나는 김치를 살짝 볶은 다음 물을 넣고 끓이면서 거기에 돼지고기와 햄을, 그리고 파와 고추를 넣어서 끓였다. 그 과정을 아이들은 내 뒤에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덕분에 찌개를 만드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밥이 되고 찌개도 완성이 되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반찬을 꺼내서 상을 차렸다. 다들 잘 먹었다. 다 먹고 난 뒤 아이에게 김치찌개 맛이 어떻냐 물어보니 조금 망설이다가 한국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 먹은 김치찌개는 신맛이 강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신 김치를 많이 넣어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김치를 들기름과 함께 조금 볶으면 신맛이 덜하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아이들이 가지고 온 과일, 수박과 단감, 그리고 파파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한국의 음식과 과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중 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캄보디아에는 감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 감은 수입된 것이냐 하니 그럴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감은 떫은 맛이 나는데 이 감은 단감인지 떫은 맛이 나지 않는다. 코워커를 비롯하여 아이들은 ‘떫다’라는 말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해 번역기를 돌려 그것을 크메르어로 알려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서도 떫은 맛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의 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래 감은 떫은 맛을 내는데 그렇지 않고 단 맛을 내는 것을 단감이라고 한다. 떫은 감을 따서 오래 두면 그것이 홍시가 되는데 그러면 떫은 맛은 사라지고 아주 단 맛이 나며 떫은 감을 깎아서 말리면 그것이 바로 곶감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과일을 먹다가 내가 아이들에게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이야기하면서 농담처럼 시험을 치고 난 뒤에 채점을 해서 한 문제 틀리면 손바닥 한 대씩 때릴 것이란 이야기를 했다. 이미 교실에서도 그런 농담을 한 뒤여서 그런지 뽀레이는 대번에 ‘안 돼요’ 하면서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내가 보파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보파 선생님, 내가 4학년 아이들 시험을 치고 난 뒤에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리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면 안 돼요. 큰일 나요.”
“왜요?”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아이들 때리지 않아요.”
물론 보파 선생님도 농담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는 투가 제법 단호하다.
“한국에서도 지금은 아이들 때리면 안 돼요. 특히 시험 결과를 가지고 아이들 때리면 더 안 되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을 그렇게 때린 적이 있어요.”
한동안 말없이 과일을 먹다가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에 가고 싶지 않냐’, ‘졸업을 하면 뭐 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뽀레이와 피싸이가 한국에 있는 목원대학교에 교환학생 신청을 해 두었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뽀레이가 이미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봤다면서 자기가 찾은 싸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 내가 대구에서 산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자기들이 찾은 내용 중에 대구에 있는 박물관에 대한 것도 있었다. 나는 잘 찾았다는 말과 함께 한국에서 가 볼 만한 곳에 대해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세 시가 지날 무렵,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 피싸이가 설거지를 했다.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살짝 들으니 뽀레이는 시장을 봤고 또 릴리는 과일을 준비해 왔으니 설거지는 피싸이더러 하라는 것 같았다. 피싸이는 아무 불평을 하지 않고 설거지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스크를 비롯하여 아이들과 보파 선생님에게 줄 몇 가지를 챙겼다. 아이들과 보파 선생님은 그 물건을 들고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