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워커 시집가는 날

by 지천

한국어학과 코워커 보파 선생님이 결혼을 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오선생님과 같이 툭툭을 타고 결혼식장을 찾아갔다. 이곳에는 결혼식장이 따로 없다. 대개 집 앞 도로에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식을 진행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런데 보파 선생님은 신랑의 집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래서 툭툭을 타고 찾아가는데 고생을 좀 했다. 정확한 집 주소를 몰랐기 때문이고 툭툭 기사 역시 그곳을 잘 몰라서 그랬다. 결국 결혼식이 열리는 집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 내려서 걸어갔다.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니 곧 하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캄보디아 전통의상을 입고 과일이나 과자를 손에 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대신 몇 번을 봐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줄에는 바탐방대학교 학생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유난히 더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는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혼례식이 거행되는 신랑의 집으로 들어갔다. 같이 줄을 서지 않은 것은 우리 손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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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집을 들어가니 몹시 분주하다. 혼례청을 손보는 사람도 있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도 있다. 혼례청 앞에는 악사들이 앉아서 줄을 고르고 있고 개 한 마리는 혼례청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또 혼례청 위로 올라가서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도 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신랑 신부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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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객들이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징과 비슷한 악기를 들고 하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혼례청으로 가지 않고 입구에 있는 자리에 양쪽으로 나누어 앉았다. 그러다 잠시 후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나 하객들이 가져온 과일과 과자 일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고 드디어 신랑 신부도 나타나 하객들 옆에 앉았다. 잠시 후 신랑과 신부는 혼례청으로 이동을 했는데 하객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혼례청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들은 그냥 앉아서 서로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혼례청에는 이들 모두가 앉을 자리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나는 혼례청과 하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도 찍고 또 하객으로 온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이했던 점은 신랑 신부 뒤에는 남자 들러리와 여자 들러리 세 명이 꼭 같이 다닌다는 것이었다. 혼례식을 거행할 때도 그들은 신랑 신부 옆에 있었고 이동을 할 때도 같이 이동을 했다. 남자 들러리 세 명 중 한 명은 4학년 소포앗이고 여자 들러리 세 명 중 한 명은 3학년 로앗타나였다. 이들은 모두 태권도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다. 신랑 신부다 다 태권도를 해서 이 아이들을 들러리로 세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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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당히 긴 시간 의식이 거행되었다. 예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신부측 혼주가 음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신랑측 혼주에게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밥과 과일을 차려놓고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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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끝났고 사진을 찍었다. 신랑 신부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찍었고 혼주와 같이 찍기도 했다. 바탐방대학교 직원과 학생 역시 하나가 되어 신랑 신부와 같이 사진을 찍고 난 뒤에 다시 하객석으로 돌아와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음식을 먹으면서 새출발을 하는 두 사람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도 한참을 아이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신랑 신부는 예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우리와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그래도 예식이 끝난 것은 아니라 했다.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식장에는 우리 아이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오후 일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혼자 남아 있기 뭣해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다섯 시부터 연회를 한다고 하니 그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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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이곳 바탐방을 떠나 프놈펜으로 간다. 일전에 소포로 짐을 일부 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은 짐이 적지 않다. 버릴 것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은 따로 분류를 해 놓았는데도 짐은 캐리어 하나에 가득 찼다. 짐 부칠 때 책이나 다른 짐을 더 많이 부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오선생님과 함께 툭툭을 탔다. 보파 선생님 결혼식 피로연에 가기 위해서였다. 아침 일찍 집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오후 일정까지 소화한 신랑 신부는 다섯 시부터 시내에 있는 회관을 빌려 연회를 한다. 다섯 시쯤 그곳에 도착을 하니 사람들은 거의 없고 들러리와 혼주만 보였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는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섯 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왜 없지 생각하면서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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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가 다 되어갈 때 사람들이 하나 둘 건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들러리들은 건물 입구에서 기념품을 나누어주고 혼주들 역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식장에는 테이블이 약 80개 정도 놓여 있었는데 한 테이블에 10명씩 앉게 되어 있으니까 적어도 800명은 이 연회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축하객 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무대에 가까운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이곳은 좀 특이한 규칙이 있다. 테이블에 10명이 다 앉아야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는 봉사자 세 명, 한국인 선교사 두 명,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당연히 음식은 우리 테이블을 지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이곳 음식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 바퀴 둘러보니 뽄러 선생님과 동기 여성분이 입구쪽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같이 앉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래도 부족하다. 남은 세 자리는 시엠립 세종학당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교사와 역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을 위한 자리, 다른 사람을 앉힐 수도 없었다. 그때 시엠립에서 온다는 사람이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그 사이 우리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테이블을 다 차지하고 있는 터라 우리 자리에 앉힐 아이는 없었다. 그때 3학년 여학생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오기에 자리에 앉혔다. 일단 음식을 먹고 다른 자리로 이동을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해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음식은 다양했고 맛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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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갈 무렵 새로운 의식이 진행되었다.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양복을 입은 신랑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또 혼주와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축하 공연이 벌어져 가수가 노래를 하고 또 우리 아이들이 한국춤을 추면서 결혼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음식과 술이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들었는지 이제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는 가수가 계속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에 맞춰 사람들은 캄보디아 전통춤을 추면서 무대 앞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그리고 봉사자들 역시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같이 원을 그리며 돌았다. 춤을 추지 않는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맥주나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나는 무대와 테이블을 오가며 그 두 가지를 모두 즐겼다. 가끔은 춤판에 어울리기도 하고 또 가끔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맥주로 건배를 하면서 같이 보파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했다. 그리고 열 시가 넘어서 자리는 정돈이 되었고 뜨겁던 분위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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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과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늘 이곳에 온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은 모두 연회복을 입고 왔다. 드레스 같은 옷을 입은 아이도 있고 약간은 개량된 듯한 전통 의상을 입고 온 아이도 있었다. 학교에서 늘 교복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연회복을 입은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어리게 보이기만 하던 아이도 성숙미가 물씬 풍겨났으며 늘 마스크를 쓰고 있어 진면목을 보지 못했던 아이 역시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이날 찍은 사진들은 오래 두고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복을 입은 아이의 모습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사진,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습이 그 아이의 미래를 가늠하게 해 줄 사진이기에 더 그랬다. 11시 정도에 신랑 신부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오늘 하루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이렇게 결혼식 전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던 시간임에 틀림이 없었다. 더구나 결혼의 주체가 나와 함께 생활했던 사람이었고 하객 역시 나와 인연을 맺었던 아이들이었기에 그 시간이 더 아름다웠고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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