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중간고사 시험을 치고 난 뒤 바탐방 공항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다. 1학년 학생 모두가 아닌, 희망하는 사람만 가는 것이다. 어제 시험을 마칠 무렵 린나가 금요일 오후 네 시에 바탐방 공항으로 소풍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기에 좋다고 하면서 몇 명이 올 것 같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저녁에 린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내일 3시에 만납니다.’ 갑자기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기에 왜 그렇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일 만나서 물어보면 될 일이지 하면서.
3시,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요즘은 우기답지 않게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낮에는 무척이나 덥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분다는 것이다. 이것이 본격적인 건기 더위와 다른 점이다. 세 시가 좀 덜 된 시간에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건너 공항으로 걸어갔다. 바탐방 공항, 학교 교문을 나와 길을 건너서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나오는 바탐방 공항은 예전에 공항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었다 하는데 지금은 공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지 오래된 것 같다. 활주로로 사용하기 위해 깔아놓은 긴 포장도로를 제외한 곳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고 소가 다니면서 그 풀을 뜯어먹고 있는, 아주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동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 음식을 파는 사람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저녁나절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활주로 위에서는 오토바이가 제법 속도를 내면서 달리기도 하고 차가 그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이곳에 두 번째로 왔다. 지난번 3학년 여학생 세 명, 그리고 장선생님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와서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바탐방 공항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다. 서녘 하늘에 노을이 아름다웠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러웠다. 해가 지면서 날씨가 덥지도 않았고 또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학교 교문을 나와 길을 건너 공항으로 걸어가면서 두리번거려 보아도 내가 아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돈을 받는 곳까지 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받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니 그냥 들어가라는 몸짓을 한다. 지난번 쏘쿤의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갈 때는 돈을 받았는데 혼자서 걸어 들어가니 돈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공항 안으로 들어와 나무 그늘에 서서 단체방에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레악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와 스레이닉은 학교에 있단다. 린나에게도 문자를 보내고 난 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맨 먼저 피싸이가 세 시 반쯤 되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린나에게 어디까지 왔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레악싸와 스레이닉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고 모세도 뒤에 여자 한 명을 태우고 공항으로 들어왔다. 모세와 같이 온 여학생, 얼핏 디나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디나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우리 학과 학생이 아니라고 하기에 모세 여자친구냐고 물어보니 극구 부인을 한다. 이 아이들 이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말은 잘 알아듣는다. 린나가 도착을 하지 않았지만 같이 공항 안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그때 아이스크림을 파는 차가 지나가기에 불러 세워서 아이들더러 하나씩 고르도록 하고 나도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그 사이에 린나가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기에 농담처럼 늦게 온 사람은 아이스크림 안 사줄 거라 하니 그냥 웃고 만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받고서 돈을 들고 쭈삣거린다. 내가 사 주는 것이니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해도 잠시 멈칫거리는 몸짓이 이걸 그냥 먹어도 되나 하는 눈치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받고 난 뒤에 내가 돈을 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뒤 아이들이 피아싸가 가지고 온 배드민턴 라켓으로 배드민턴을 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 역시 몇 번 쳐 보았지만 늘 헛손질하기 일쑤였다. 콕이 여기쯤 오겠지 싶어 라켓을 내밀어도 콕은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조금 앞에 떨어지고 나는 당연히 헛손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켓을 들고 그렇게 허둥거리다가 나는 린나의 오토바이를 타고 공항을 한 바퀴 돌았다. 오토바이는 여기 와서 두 번째 타 보는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3학년 다윈의 오토바이를 타 보았는데 이번에는 린나의 오토바이다. 사실 오토바이라기보다는 스쿠터 정도이니 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차량과 오토바이가 뒤섞여 달리는 도로가 아니라 거의 비다시피한 활주로였기에 타고 달리는 것이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다. 날씨가 더운데 마실 물이 없는 것 같아 뒤에 린나를 태우고 물을 파는 곳으로 갔다. 물을 사고 있으려니까 레악싸가 자전거를 타고 따라왔다. 누구의 자전거냐고 물어보니 푸엉이 자전거를 타고 늦게 합류했단다. 물을 사 가지고 오니 아이들이 지붕이 있는 쉼터에 앉아서 가지고 온 음식을 펼치고 있었다. 린나와 푸엉은 빵과 야채 종류를 싸 왔고 모세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지 근처 음식 파는 곳에 가서 물고기로 만들었다는 음식과 소고기 꼬치 같은 것들을 사 가지고 왔다. 펼쳐놓고 같이 먹으니 진짜 소풍을 온 것 같았다.
음식을 먹고 나니 해가 설핏 기우는 것 같아 같이 걸어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걸으면서 아이들과 한국어 공부를 했다. 저게 뭐예요? 나무. 아니 그렇게 하지 말고 저것은 나무예요. 이렇게 대답해요. 나무와 풀, 소와 개, 오토바이와 자동차,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모두 묻고 답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저기 몇 사람이 와요? 아이들은 눈만 멀뚱멀뚱. 한 사람, 두 사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오고 있네요. 저기는 몇 명이 앉아 있어요? 모두 다섯 명이 앉아 있네요. 한참을 걸어서 풀밭 사이를 지나니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뭐예요? 하니 호수라고 대답한다. 호수가 아니에요. 호수는 아주 넓은 지역에 많은 물이 있는 곳이에요. 톤레삽 호수처럼 말이에요. 그럼 뭐예요? 이런 것은 개울이라고 해요. 개울에는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 새가 날고 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물, 새, 잠자리, .아이들이 몇 번씩 내뱉은 단어들이다. 3학년들하고 같이 왔을 때는 장선생님이 그들과 끝말잇기 게임을 했는데 1학년들에게는 무리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것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많은 말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린나에게 어제는 네 시에 만나기로 했으면서 왜 세 시로 바꿨는지 물어보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모세가 다섯 시에 영어 시험이 있어서 그랬단다. 대답하기 꺼려서 머뭇거린 것은 아닌 것 같고 내가 묻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어제 저녁에 문자를 보낼 때도 아무 설명 없이 ‘선생님 3시에 만납니다’라고만 한 것도 아마 한국어 능력 때문이리라. 덥지만 예쁜 하늘, 해가 막 넘어가려는 서쪽 하늘의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음이다. 제대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래도 눈빛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시간, 참 소중하다. 아이들과 캄보디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