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2교시에 3학년 희망자 토픽 수업을 하고 곧장 집으로 와서 짐을 꾸려 밖으로 나왔다. 코너 식당에서 점심으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가까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걸어서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차는 한 시에 출발했다.
시엠립 가는 길, 이전에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넓은 들판, 푸른 빛깔의 곡식, 혹은 풀들. 시엠립 가까이 갔을 때 처음으로 탈곡을 하는 모습과 집 앞 공터에서 벼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 보는 것이다. 그동안 곡창지대로 알려진, 그래서 캄보디아의 밥그릇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바탐방에 살면서 한 번도 벼가 익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가을이 되면 황금물결이라고 부르는, 익은 벼들이 온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탈곡을 하고 있는 곳 옆으로 펼쳐진 논의 색깔은 여전히 파랗다. 벼가 익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탈곡을 하고 벼를 말리다니, 어슬프게 설익은 벼를 탈곡하는 것은 아닐 테고 어쩌면 벼가 익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다섯 시가 좀 덜 된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다. 가격이 싸서 그런지 겉모습만으로는 호텔이라 부르기 다소 민망한 모습이었다. 담 사이로 난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데스크가 보이고 젊은 여직원분들이 일을 보고 있다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내가 예약한 것을 보여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마실 것을 가져다 준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났다. 체크인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절차가 끝났는지 한 여직원이 키를 들고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307호까지 그 여직원이 앞에 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왜 직접 안내를 해 주지? 엘리베이트가 따로 없는 낮은 층수의 건물이고 또 복도가 바깥길에 바로 면해 있는 구조여서 손님을 데리고 방까지 간 모양이다. 문 앞까지 안내해 준 여직원이 돌아가고 난 뒤 방 안에 들어가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던 느낌과는 달리 방 안은 구조도 괜찮았고 깔끔했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방콕 갔을 때 가격이 싸다고 덜컥 예약을 했다가 2층 침대 두 개가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방이 아니라 복도 끝에 있는 방에서 잠을 자야 했던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는지도.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 전에 몇몇 호텔과 갈 만한 몇 곳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호텔은 다음 주 두 아들이 올 때 잘 곳이다. 원래는 이곳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장선생님이 내게 남겨준 여행 정보를 살펴보니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구글 지도를 켜 들고 호텔로 찾아갔다. Cullen Central Hotel, 입구도 괜찮아 보이고 로비도 넓고 깨끗했다. 무엇보다 펍스트리트를 비롯하여 시엠립에서 밤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직원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방 하나의 가격이 1박에 50불, 그리 비싼 곳은 아니었다. 예약을 하려다가 그냥 아고다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할 곳, 맛집이라고 알려준 크메르 테이스트 식당(Khmer Taste Restaurant)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아직은 구글 지도를 가지고 길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지도를 보는 눈이 어두워서 그럴 것이다. 겨우 찾아 들어간 식당. 맛집이라 소문이 나서 그런지 엄청 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인석에 앉아서 메뉴판을 살펴보니 지금 먹을 음식 외에도 포장이 가능한 음식도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내일 아침밥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고 여기서 아침밥을 사 가지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주문을 했다. 록락은 3불, 그리고 햄과 야채, 그리고 계란이 들어간 빵은 2불이었다. 저녁을 먹고 마사지 샵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길거리를 헤매다가 The Spa란 곳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일전에 아내와 함께 와서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던 곳이고 또 장선생님이 추천한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격은 전에 비해 많이 싸진 것 같았다. Deep Tissue Massage에 눈길이 가서 안내하는 여성분에게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니 말 그대로 좀더 깊이 하는 마사지라고 한다. 오일 마사지를 깊게? 궁금하기도 하고 또 미리 경험을 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90분짜리를 받겠다고 하고 가볍게 발을 씻은 후 안내하는 마사지사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마사지사는 덩치가 제법 컸는데 그만큼 누르는 힘이 강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아플 정도로 눌러 약한 신음을 흘릴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바탐방에서 받던 마사지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밤엔 잠을 많이 설쳤다. 그래도 아침 7시 출발에 맞춰 알람을 설정해 놓고 잔 덕분에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어제 식당에서 사 온 빵을 먹으니 잠을 설친 탓인지, 아니면 빵을 만든 지 시간이 제법 지나서인지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절반 정도 먹고 난 뒤에 물을 마시고 1층 데스크로 내려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충전기가 말썽을 부렸다. 어제 호텔에 도착하여 맨 먼저 보조 밧데리를 충전하려고 선을 연결해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녁에 방으로 돌아오니 보조 밧데리 불빛 신호가 꺼져 있었다. 충전이 끝나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이번에는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선을 연결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리저리 바꿔 보면서 여러 번 시도를 해도 마찬가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충전기는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작동을 하지 않아 보조 밧테리를 휴대폰에 연결해 두고 잠을 잤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충전이 거의 되지 않았는데 보조 밧데리도 잔량 표시등이 두 칸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데스크에 내려갈 때 보조 밧데리를 가지고 가서 충전을 부탁했다. 다행히 맞는 연결선이 있어서 보조 밧데리 충전을 맡기고 올 수 있었다.
호텔 로비에 앉아 기다리다니까 7시가 되어 나를 픽업하러 회사에서 왔다. 나가보니 9인승 봉고가 호텔 입구에 서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차에 타니 운전기사 외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에 가장 먼저 온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오늘 프레아 비헤어(Preah Vihear) 가는 사람이 나뿐이라고 했다. 원래 여섯 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 혼자라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예약 방법을 확실히 알지 못해 홈페이지에 있는 메일로 예약을 하고 아직 참가비도 주지 않았는데, 그래서 오늘 갈 수 있을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는 사람이 나 한 명이라니. 이러다가 회사 입장에서는 하루종일 다니는 차 기름값, 운전기사 일당, 가이드 일당 등을 다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가이드는 씩씩하고 다정했다. 자기 이름이 ‘라’라고 하면서 나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본다. 그냥 ‘장’이나 ‘재화’ 이렇게 부르면 된다고 하니 그 이후로 그는 나를 장이라 불렀다. 프레아 비헤어까지 세 시간, 다행히 차 안에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었다. 대신 나는 시선을 창 밖으로 향하게 한 채 상념에 잠겼다. 가끔 가이드가 안내를 하면서 말을 걸곤 했지만 짧게 대답을 하고 계속 창 밖을 바라보았다. 프놈펜에서 바탐방으로 오면서 바라본 풍경, 바탐방에서 시엠립으로 이동을 하면서 바라본 풍경, 심지어 캄보디아를 떠나 태국 땅에 들어서서 방콕으로 가면서 본 풍경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넓은 평야, 논에서 자라는 푸른 벼들, 그리고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민가들. 물론 나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 터를 박고 사는 사람들 눈에는 하나하나 구분이 되어 다르게 보이겠지만 아직 나는 그 정도 구분할 눈과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휴게소가 아닌 듯한데 주유소가 있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모양이다. 캄보디아에 와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본다. 프놈펜에서 바탐방까지 다섯 시간 동안 달리면서 두 번 정도 쉬는데 쉬는 곳마다 이곳이 휴게소인지 주유소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이 많았다. 물론 주유소가 같이 있기는 해도 화장실이 있고 또 음식이나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상점이 있어 휴게소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바탐방에서 시엠립 갈 때도 마찬가지, 허름한 휴게소 한 곳에 들렀다 가곤 했다. 오늘 이곳도 마찬가지, 아니 이곳은 달랑 주유소와 화장실이 있고 음식을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하니까 가이드가 주유소 옆에 있는 간이 판매대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 그곳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고 다만 캔 커피와 다른 캔 음료만 있을 뿐이었다. 캔 커피 세 개를 사서 가이드와 운전기사 하나씩 주고 나도 한 캔 마셨다.
잠시 쉬다가 이동을 한 차량은 호텔을 떠난 지 세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때 프레아비헤아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표를 끊고 다시 차를 갈아타야 한단다. 입장료는 10불, 갈아타는 차의 차비는 받지 않는 걸 보니 회사에서 감당하는 모양이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차를 갈아탔다. 역시 가이드와 나 둘뿐이었다. 올라가는 길이 몹시 가팔라 일반 승용차는 올라가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 때 가끔 이렇게 가파른 임도를 다니기도 했지만 여기 경사도를 보면 자전거로는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할 듯했다. 15분 정도 그렇게 올라가다 드디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사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가이드가 본격적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로 하는 설명, 차 안에서와는 또 다르다. 차 안에서는 일상적인 물음들이 대부분이어서 어느 정도 알아듣고 또 대답을 하기도 했지만 사원으로 가면서 하는 설명은 용어부터가 달랐다.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가이드는 막대기로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림을 보니 사원 건물의 배치와 방향, 그리고 사원의 높이와 길이가 지닌 상징성에 대한 것 같기는 한데 30% 정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 있을 수 없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걸어올라가니 다 무너져가는 형체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 기중기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이 사원 복원을 위해 세워 둔 기계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기 전, 가이드는 아래쪽을 가리키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가 태국 땅이라 한다. 얕게 흐르는 시내가 경계이고 거기서부터는 우리가, 캄보디아인이 갈 수 없는 곳이라 설명했다.
사원의 중심으로 이동을 하면서 바닥에 깔린 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원의 소유권을 두고 태국과 다툰 흔적이라면서 돌에 난 총탄의 흔적을 보게 했다. 또 사원 입구에 만들어진 야외 목욕탕을 지나면서 그곳이 왕이 사원에 갈 때 몸을 씻는 장소라 했다.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고, 사진 찍으면서 또 올라가고, 이렇게 해서 절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았다. 사이사이에 가이드는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또 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여전히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계단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을 만났는데, 유네스코 복장을 한 그 여성은 이 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여성이 일한 대가는 캄보디아 정부에서 지급을 한다. 태국과의 분쟁이 심화되고 그것을 유네스코가 중재하면서 이 절이 캄보디아 소유로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 젊은 여성과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기념이니까. 유네스코와 관련된 것이니까. 가이드에게 이야기를 하니 가이드가 그 여성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 여성은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다. 그렇게 같이 사진을 찍고 난 뒤에 다시 절 탐방, 가이드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고, 나는 알아듣는 척하면서 사원을 둘러보았다. 그래, 가이드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그것,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가이드가 설명한 내용은 내가 입장권을 살 때 받은 영어판 브로슈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사원에 대한 정보는 얻을 곳이 많으니까. 다만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사원 관람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꼬껫 사원으로 이동을 할 거란다. 걸리는 시간을 대략 한 시간 정도, 1시 30분이 넘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어차피 예정된 여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
생각보다 멀었다. 1시간이 아니라 거의 두 시간 정도는 더 달렸던 것 같다. 꼬껫 사원의 입구에서 다시 15불을 주고 입장권을 산 뒤, 봉고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한참을 더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두 시 반이 넘은 시간에 겨우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골라서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아니었다. 넓은 공터 양쪽에 캄보디아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고 식당은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음식값도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꼬껫 사원으로 가서 가장 높은 건물 위까지 올라갔다. 가이드에 의하면 한 층이 50미터, 모두가 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전체가 약 350미터의 건물이란다. 밑에서 보니 탑 모양이어서 탑이냐고 물으니 탑이 아니고 절 건물이란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저 안에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말인가?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숲은 장관이었다. 숲 사이에 좁게 만들어진 논 또한 인상적이었다. 잠시 바람을 쐬면서 전망을 구경하고 내려와 다른 절 한 곳을 들렀다. 역시 허물어져가는 절인데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짧게 구경을 하고 다시 시엠립으로 향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예사롭지 않게 내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운전기사는 익숙하게 잘 달린다. 젊은 사람인데도 이 길을 자주 다녔나 보다. 여섯 시 반 정도 되어서 숙소에 도착을 했는데 다행히 그 때는 비가 그쳐 있었다.
점심을 좀 늦게, 많이 먹어서 저녁은 천천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이번에는 다른 마사지숍을 찾아가 보려고 했다. 장선생님이 소개해 준 마사지솝 중 두 번째, Blue Spa다. 어제 받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마사지다. 나는 비교를 해 보고 싶었다. 나중에 아들이 오면 데리고 갈 마사지숍이 어디가 좋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캄보디아에 온 후로 가장 훌륭한 마사지를 받았다. 그녀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듯 누르는 곳 모두에 통증이 있었다. 통증이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체구가 그리 크지도 않은 그녀가 누르는 힘이 엄청났으며 손의 움직임 또한 몹시도 자연스러웠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몸의 느낌이 그러했다. 또한 그녀는 친절했다. 가끔씩 상태를 물어보거나 아니면 짧은 한국어지만 그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가려는 모습이 기분을 좋게 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동남아에 오면 꼭 마사지를 받으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 그냥 맥주 한 잔 마시려고 강 가에 있는 가게로 이동을 했다. 마사지숍까지 걸어가는 동안 보아둔 곳인데 생맥주 값도 비싸지 않았고 안주 역시 그러한 것 같았다. 거의 인도까지 점령을 하여 테이블을 내놓은 가게가 몇 군데 줄지어 있었고 대부분의 가게에는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나는 그 중에서 도로변에 빈 테이블이 있는 집에 들어가 맥주와 튀긴 닭고기 안주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맥주와 안주가 와서 먹고 있는데 어느 사이에 내 테이블 옆으로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나를 바라보며 앉았다. 그 개가 오기 전에도 물건을 파는 어린아이, 구걸을 하는 어른들이 몇 번이나 테이블을 지나갔기에 그 개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휴대폰에 오늘 다녀온 일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그 개가 다른 곳으로 갈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먹던 안주 하나를 집어서 내미니까 눈치만 보면서 달려들지를 않는다. 겁이 나서 그러나 싶어 안주를 바닥에 던지니 그제서야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내가 손을 휘저으며 더 줄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 개는 요지부동, 이번에는 아예 엎드려서 나를 쳐다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내가 시선조차 주지 않자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테이블 밑으로 해서 또 한 바퀴를 돈다. 음식을 받아먹지 못했는지 내 보기에 힘이 없는 모습으로 슬그머니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자세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때는 나도 맥주와 함께 안주를 다 먹은 상태라 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자리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기에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니 겨우 일어서서 내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테이블로 갔다. 그곳에는 서양인 관광객인 듯한 젊은 남녀가 감자튀김을 비롯하여 여러 음식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이었다. 설마, 이 개는 외국인만 골라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던 것인가? 같이 캄보디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을 낯설게 느끼고 호기심에서라도 인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이 개는 알고 있는 것인가? 그 개가 음식을 받아먹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있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나도 곧 일어섰으니까. 그래도 그 개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캄보디아에 와서 개의 다양한 모습을 참 많이 보았는데, 이 개도 그 중의 하나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호텔로 돌아와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고 짐을 챙겨 다시 시내로 걸어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행복식당. 젊은 한국 남자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어제 갔던 마사지숍 옆에 있어서 기억을 해 둔 곳이다.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그런지 손님은 나 하나뿐이다. 메뉴를 보니 한국 음식과 캄보디아 음식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쭈꾸미 덮밥을 시켰다. 가격은 8불, 8불이면 캄보디아에서는 꽤 비싼 편에 속한다. 같이 나열되어 있는 캄보디아 음식이 2~3불인 것만 봐도 그렇다. 음식을 주문할 때는 캄보디아 여성이 나를 맞이했는데 음식 주문이 끝나고 나니 안쪽에서 젊은 남성이 아기를 안고 나왔다. 한국 남성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젊은 주인은 이전에 태국으로 넘어가는 국경도시인 포이펫에서 10여 년 정도 식당 운영을 하다가 이곳 시엠립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갈수록 사정이 안 좋아져서 문을 닫는 한국식당들이 꽤 많다고 하면서 자신도 어렵게 유지를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줄어서 그런 모양이다. 한국에서 이곳 시엠립까지 오는 직항이 없어져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이 식당은 중심가에 있고 또 펍스트리트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가까이 있으니까 잘되지 않겠냐는 덕담을 건넸다. 그러는 사이에 음식이 나와서 먹어보았는데 생각만큼 한국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콤한 것이 먹을 만해서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다 먹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는 그 젊은 부부, 그들 부부가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당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