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둘끼리 여행

by 지천

어제는 정말로 긴 하루였다. 버스를 타고 장장 13시간을 달렸으니, 그것도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잠깐씩 쉬는 게 전부였으니 좁은 버스 안에서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버스라고 하지만 사실은 12인승 승합차였고, 비좁은 실내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으니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 심리적 시간 또한 길게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는 12인승 승합차도 버스의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버스라고 불러야 하겠다.

아침을 먹고 8시에 몬둘끼리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비어 있는 자리가 제법 있었다. 예약할 때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일정이 바뀐 사람들이 더러 예약을 포기한 모양이다. 아니면 중간 지점에서 타거나. 어쨌든 몬둘끼리를 출발한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길가에 늘어서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몬둘끼리에 가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하더니 이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구나, 잠시라도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차창을 스쳐지나가는 소나무에 한동안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차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번갈아 달린 차는 드디어 평야 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몬둘끼리가 좋은 점은 이렇게 산지가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시원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거진 밀림으로 들어가면 캄보디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맑은 물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코끼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내가 이번 물 축제 기간에 이곳 몬둘끼리를 찾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곳은 목요일부터 3일 동안 본엄뜩(물 축제) 기간이다. 그래서 모든 직장이 문을 닫는다. 학교도 쉬고 아이들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연휴에 나는 몬둘끼리를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바탐방에서 가기에는 지나치게 먼 길이지만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어쩌면 바탐방을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나는 마음을 내서 숙소와 차표를 예약해 두었다. 수요일 밤 버스로 프놈펜으로 가고 프놈펜에서 다시 몬둘끼로 가는 여정이었다. 돌아오는 표는 예매를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랐고 이미 좋은 시간대는 예약이 거의 끝나 있어서 몬둘끼리에 도착을 해서 일정을 살펴본 뒤 돌아오는 표를 예매하려고 했다.

수요일, 밤 11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11시 55분에 프놈펜으로 가는 침대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짐을 꾸려 G층으로 내려오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잠겨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숙소가 안전하다는 것이 이런 점 때문이다. 낮과 밤에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늘 상주해 있고 또 이렇게 밤이 깊으면 아예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잠궈버리는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소파에서 이불을 덮고 있던 사람, 남자 관리인이 부스스 몸을 일으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내가 나가야 한다고 하니 열쇠를 가지고 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은 몹시도 한적했다. 거리에 연해 있는 집들 대부분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개를 만났다. 평소 낮에도 개들이 자유롭게 다니고 그들은 사람을 본척만척하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잠시 어르렁거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야심한 시각,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고 있기에 그 개는 본능적으로 집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듯하다. 덜컥 겁이 났지만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걷다가 살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잠시 따라오던 개도 제풀에 지쳤는지 슬그머니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다. 사람의 흔적이 끊어진 길에 개가 계속 따라오고, 그러다가 물기라도 한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터이다. 이곳에 오기 전,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은 일이 생각나고 짧은 순간 뛰어갈까 고민도 했지만 그렇게 개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으니 그 순간 내 입에서는 긴 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왔다. 그렇게 잠시 걷다니 집 밖에 테이블을 놓아두고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중년의 나이대 같았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떠나 반가운 마음이 왈칵 솟아났다.

아침 일찍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를 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침대버스를 한 번 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예매를 했더랬다. 하지만 힘들었다. 버스에 마련된 침대는 좁았고, 밑에서 올라오는, 차 바퀴 구르는 소리는 쉬 잠이 들지 못하게 했다. 누워서 바깥 경치를 바라보려 했으나 휙휙 스쳐지나가는 것은 어둠의 그림자 뿐, 그 형상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밖을 보기에 좋다고 해서 2층 침대를 선택했는데 2층은 일어나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아 허리를 제대로 펴기 어려웠다. 비몽사몽,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프놈펜에 도착했다고 내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아래로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4시 20분 정도 되었다. 아니, 7시 30분쯤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벌써 도착을 했단 말인가? 비록 불편한 자리일망정 7시쯤에 도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2층에 있는 승객 대합실에 올라가 의자에 기대 잠시라도 눈을 붙여볼까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연휴 첫날이어서 그런지 대합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밖에도 연신 차들이 드나들면서 손님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고향? 아니면 여행? 후덥지근한 프놈펜의 새벽 공기를 마시며 나 역시 여행의 기대로 약간을 들떠 있었는데 이들도 그러한가? 주변을 둘러보니 외국인도 더러 보였지만 대부분은 캄보디아 젊은이들이다. 나처럼 혼자 움직이는 사람은 없는 듯했고 대부분 일행과 함께하고 있었다. 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품을 하면서 앞을 보니 서양인 젊은이 역시 하품을 하고 있다. 밖은 아직 깜깜한데 아침이 될 때까지 뭘 하지? 그래도 어두운 거리를 달리는 툭툭과 승용차는 제법 많았다. 휴대폰을 켜 들고 잠시 보려고 해도 피곤해서 그런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수능 감독관으로 거의 매년 차출이 되었고 그때마다 7시까지는 수능 시험장 학교로 가야 했다. 그러다가 전문직으로 전직을 하고 난 뒤에는 새벽 네 시 반까지 수능 시험지가 보관되어 있는 학교로 가야 했다. 새벽, 택시를 잡지 못해 애 태웠던 시간이 지금 캄보디아에서 맞이하고 있는 시간과 비슷했다.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깊이 잠들지 못했던 시간도 침대버스를 타고 오면서 뒤척인 시간과 비슷했다. 이렇게 상념에 잠겨 두어 시간을 버티다가 이럴 바에야 메콩 강변으로 나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툭툭을 불러서 탔다. 시간은 여섯 시 삼십 분 정도 되었는데 해가 떠오르고 있는 강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사람보다 장사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오늘부터 연휴이고 이곳에서 조정 경기가 열린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에 대비해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리라. 그런데 장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경찰이 다가가더니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서 짐을 들고 내쫓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은 장사를 하면 안 되는 곳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눈을 강물 위로 보내니 그곳에는 이미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미리 몸을 풀기 위해 천천히 노를 젓는 팀도 보였고 강 중간으로는 전력으로 달려가는 배도 보였다. 몇 시부터 대회가 시작되는지 모르겠지만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대회에 참여하는 것 같아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너무 일찍 프놈펜에 도착했다고 잠시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투덜거린 내가 머쓱할 정도였다. 그렇게 역동적인 모습을 보다가 강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보니 화려한 무대를 설치한 곳이 나타났다. 국왕을 비롯하여 오늘 경기를 볼 고위층들이 앉을 자리인 모양이다. 그곳에는 빙 둘러가며 길을 막아놓았다. 도로쪽 입구 두어 곳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또 정장을 입은 남녀가 그곳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엠블런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임시 보건소가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도로 건너 공원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과 그만큼 많은 비둘기가 어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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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에는 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여러 명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옆에는 장갑차와 비슷하게 생긴 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고관들의 경호를 맡은 사람들일 것이다. 왕궁 앞 공원 반대편으로 가니 거기도 똑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군인들은 총을 들고 있었고 허리에는 권총과 대검을 차고 있기도 했다. 공원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튜브 까페에 들어가 아이스라테 한 잔을 시켜서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프놈펜에서 현지적응교육을 받을 때 가끔 왔던 곳으로 이층에서는 메콩강의 풍경이 잘 보인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강 위에는 여전히 배들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어떤 배는 아주 여유롭게, 또 어떤 배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오늘 있을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일 텐데, 나름대로 컨디션 조절을 하고 또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렇게 카페에 앉아 한참 동안 강물 위를 바라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이곳에 올 때는 툭툭을 타고 왔지만 아직 버스 출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그냥 걸어서 가 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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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한국인 CEO에게서 온 문자를 받았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한국과 캄보디아 인력 교류 사업을 하는데 일전에 바탐방을 방문했을 때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다. 문자의 내용은 자기 회사에서 듀이대학교에 한국어학당을 설치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생이나 학생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보파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이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대표는 좋다고 하면서 연락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해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 보파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1층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여전히 제일 만만한 것이 바이쌋처룩(돼지고기덮밥)이라 그것을 시켰는데 가격은 학교 앞 식당의 두 배 정도 되었지만 맛이나 양은 학교 앞 식당보다 훨씬 못한 것 같았다. 여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류장 주변의 음식은 비싸기도 하고 맛도 덜한 모양이다.

12시, 몬둘끼리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메콩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지날 때 얼핏 창 밖으로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남자가 다리 난간에 매달려서 강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체격은 건장한 것 같았고 뒷모습이긴 하지만 남자의 성기가 다리 사이에 보이기도 했다. 다리 위에는 강 위에서 펼쳐질 배들의 향연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는데 아무도 그 사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나체 상태로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사람에게 무심한 듯할까? 스쳐 지나가듯 바라본 풍경이어서 그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는 그 사내의 마음이 몹시 아플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처음에 4차선의 넓은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오래지 않아 아주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였다. 그리고 경주하듯 추월하는 버스, 길가로 펼쳐진 대평원,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휙휙 내 눈길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젯밤 침대버스에서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침에도 메콩강 주변을 돌아다닌다고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잠을 자지는 못했다. 아직도 나는 버스를 비롯하여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 잠을 잘 자지 않는다. 처음에는 낮에 잔 잠으로 인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할까 걱정하여 억지로 눈을 뜨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습관이 된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살면서 가끔 버스를 탈 때마다 바깥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눈을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이전에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그 풍경을 눈에 담아두고자 애를 쓴다. 그것 역시 내가 버스 안에서 눈을 감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나는 버스를 탈 때 가능하면 1인석에 앉아서 갈 수 있도록 예매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매를 늦게 해서 그런지 1인석은 없었다. 맨 뒷자리만 남아 있기에 창가 쪽 자리를 선택해서 예매를 했다. 내 옆으로는 세 명의 캄보디아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차가 이동을 하는 동안 내내 잠을 자고 있었다. 차가 휴게소에 들를 때 잠시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다시 차가 이동을 하면 곧장 눈을 감았다. 몸이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니 한잠이 든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내 옆에 앉은 아가씨의 팔꿈치가 내 팔과 닿은 채 한참을 이동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 상태로 시선을 밖으로 돌려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는 가끔씩 곧게 자라고 있는 나무가 심어져 있는 밭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가지런하게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사람에 의해 관리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나무가 과수인지, 아니면 관상목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본 캄보디아의 다른 들판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중간에 몇 번을 쉬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동네에서 내 옆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내렸다. 그리고 얼마를 더 달린 버스는 젊은 남자 한 명을 태웠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캄보디아 여성이 자리를 옮겼고 내 옆자리는 새로 차에 탄 젊은 남성이 앉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다리를 흔들었다. 무슨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듯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흔드는 다리가 가끔은 내 다리와 부딪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청년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다리를 흔들었다. 결국은 차가 몬둘끼리에 도착할 때까지 그 청년의 다리는 쉬지 않았다.

산이 거의 보이지 않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던 버스는 다섯 시간 정도 달린 뒤에야 울창한 나무숲을 만났다.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 하지만 그렇게 큰 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 숲들을 스쳐 지나가며 버스가 10여 분을 더 달렸을 때 해가 지기 시작했고 얕은 능선들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길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버스는 그 길을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힘들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귀가 조금 멍멍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하,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 것 같아도 버스는 계속 높은 지대를 향해 달리고 있구나, 한참 올라가고 그러다가 잠시 내려가고, 이렇게 되풀이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버스가 높은 지대까지 올라온 것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버스가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도로를 20여 분 더 달렸을 때 드디어 가로등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몬둘끼리에 다 와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안도를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도시일 듯한 불빛은 나타나지 않고 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드문드문 길가에 촉수 낮은 불빛이 비치는 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질 뿐 차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지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시의 불빛이 눈에 잡혔다. 드디어 몬둘끼리에 도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할 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아주 많았다. 게다가 좁은 도로 한 켠에 차를 세워두고 볼일을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힘겹게 버스 회사에 도착한 시간이 6시 25분,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십 분이 더 걸렸다. 시간이 늦은 듯하여 툭툭을 타고 갈까 하다가 그냥 걸었다. 지도상으로 10여 분 정도 걸으면 된다기에 걸으면서 도시를 둘러보았다. 휴일을 맞은 몬돌끼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과 차량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생각했던 몬돌끼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 조금 놀랐다. 하지만 밝은 날에 다시 보면 어떨지, 자못 내일이 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방에 짐을 놓아둔 다음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은 이탈리안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피자와 맥주를 시켰다. 원래 한국에 있을 때는 피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잘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탐방에서 피자를 안주 삼아 맥주를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조합이 꽤나 괜찮았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다시 피자와 맥주를 시킨 것이다. 이곳 물가 기준으로는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다시 돌아갈 길을 생각했다. 이곳에 오면서 예매 싸이트에 들어가 보니 일요일 아침에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는 자리가 없었다. 다시 토요일 심야 버스를 살펴보니 자리는 더러 있었는데 모두 2인이 같이 타는 침대버스였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낯선 사람과 나란히 누워 프놈펜까지 여섯 시간을 간다? 그것도 한밤중에? 그건 못할 노릇이란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코스를 달리해서 검색해 보았다. 몬둘끼리에서 시엠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바탐방으로 가는 코스였다. 검색해 보니 시엠립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과 8시, 두 번 있는데 자리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곳 몬둘끼리에서 시엠립까지 여전히 10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새벽에 프놈펜에 도착했을 때 버스 회사 남자 직원에게 몬돌끼리에서 시엠립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어보기도 했다. 당시 그 직원은 대략 7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대답을 했더랬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앞에서 이야기했듯 낯선 사람과 나란히 누워 프놈펜까지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이미 마음은 시엠립으로 갈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설령 예매 싸이트에 나와있는 것처럼 10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바탐방 가는 막차인 5시 차를 놓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바탐방까지는 갈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다. 긴 시간 버스를 타야 하고 또 어쩌면 바탐방 가는 막차를 못 탈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침대버스를 타고 가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5시 막차가 떠나기 전에 시엠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기도 했다. 프놈펜 직원이 7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했고 또 지도상으로 514Km, 예상 시간 8시 38분으로 나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예상 도착 시간이 싸이트에 잘못 기재되기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수요일 야간 침대열차를 탔을 때도 그랬다. 11시 55분에 바탐방을 출발한 버스는 오전 7시 30분에 프놈펜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프놈펜에 내린 시간은 4시 20분, 무려 3시간이나 빨리 도착을 한 것이다. 사실 4시 20분에 프놈펜에 내렸을 때는 불확실한 정보에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불편할지언정 그래도 버스 안에 누워 있는 것이 새벽에 내려 방황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제발 도착 예정 시간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어 5시 전에 시엠립에 내릴 수 있기를……. 간사한 마음이라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월요일 수업 때문에 반드시 바탐방에 가야 했고 그렇다고 야간 침대버스 2인석에 낯선 사람과 나란히 누워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피자 한 판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그래도 천천히 먹다 보니 어느덧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숙소 가까이 있는 넓은 공터가 시끄러웠는데 뭐를 하는지 궁금해서 거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축제 분위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캄보디아 사람들이었으며 가족 단위로 놀러 온 것인지 아이들도 무척 많았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총으로 인형 쏘아 맞추기, 풍선 터뜨리기, 공기를 넣어 만든 거대한 미끄럼틀, 아이들이 타는 궤도형 자동차, 공중을 한 바퀴 도는 기구 등 놀이기구들이 많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많이 모여 있었다. 특히 미끄럼틀 입구에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캄보디아 엄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큰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무대 배경에는 맥주 캔이 그려진 화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GenzBurg, 프놈펜을 오갈 때 도로변 광고판에서 많이 본 맥주다. 그 광고판을 보면서 이곳 캄보디아 사람들이 맥주를 많이 마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광고판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무대 앞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많이 놓여 있고 또 곳곳에 그 맥주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그곳에서 맥주를 산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가득한 듯했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시끄러운 소리로 대화를 하고 가끔은 무대 위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까지도 밖의 소음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 소음에 관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분명 방 밖에서 우는 고양이 소리인데도 마치 방 안에 고양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울음소리가 아주 가까웠다. 그들도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이곳이 집이 아니라 나그네들의 숙소였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침대버스에서 보낸 어젯밤부터 오늘 몬둘끼리의 첫날밤까지 보낸 시간, 그 시간의 무게에 눌려 피곤한 몸은 곧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역시 게스트하우스 1층 식당에서 먹었다. 얇게 썬 고기를 사이에 넣은 빵과 계란반숙인데 무척이나 맛이 좋았고 속도 든든했다. 8시 20분 픽업을 온 차량을 타고 이동을 했다. 숙소에서 예약해 준 코끼리 투어. 그런데 픽업을 온 차량은 실내에 네 명이 탈 수 있고 뒤에 있는 짐칸에 또 몇 명이 탈 수 있는 그런 차였는데, 몹시 낡았다. 나는 혼자 참여하게 되어 다행히 맨 앞자리에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기름 냄새가 코를 찔러 얼굴을 찡그렸다. 다행히 이동 거리가 길지 않아 잠시 뒤 투어를 진행하는 본부에 도착하여 그 냄새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한 명이 예약한 사람들을 체크하면서 돈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명단에 보니 내 이름은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투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되어 이름이 없다고 하니 숙소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다며 보여주었다. 하루 투어 50불을 캄보디아 화폐인 리엘로 결재했는데, 5,000리엘을 더 달라고 했다. 환율의 차이 때문에 더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2일 코스로 결재를 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2일에는 정글 트레킹을 한단다. 그동안 나는 둘째 날 뭐 하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숙소에 요청을 해서 다시 프로그램 예약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2일차 프로그램을 만난 것이다.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얼른 나도 2일 프로그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30달러를 요구해서 결재를 하고 난 뒤에 그 사람에게 약간은 난감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가면 코끼리 투어를 마친 뒤 그곳에서 잠을 자고 정글 트레킹까지 끝낸 뒤에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면도구를 비롯해서 갈아입을 옷조차 챙겨오지 않았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늘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투어에 참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쳐다보다가 준비가 안 되었냐고 물어보면서 그러면 5달러를 더 내란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정글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까지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인 듯했다. 정글 속 잠자리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무 준비 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는 없는 터라 나는 5달러를 더 주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여러 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코끼리를 만나러 갔다. 가는 길, 숙소에서 이곳까지 올 때 탔던 차를 다시 타야 해서 냄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문을 열어놓고 달리니 냄새는 그리 심하게 나지 않았고 오히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역시 조수석에 앉아서 가고 있던 나는 뒷좌석에 앉은 젊은 여성 세 사람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중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들 역시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한참을 달리다가 내리막 경사가 심한 길을 내려가니 투어가 진행되는 건물이 나타났다. 짐작하건대 그곳이 투어를 담당하는 본부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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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본부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이 있었다. 웃통을 벗고 바지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어제 여기서 잠을 잔 모양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가이드가 참가한 사람들 모두 불러 모아 영어로 오늘 할 코끼리 투어에 대한 설명을 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중국인 세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양 사람이었다. 서양 남자와 동양인인 듯한 여자가 예닐곱 살 됨직한 아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설명을 마치고 난 뒤 각자 바나나 한 송이씩 받아들고 정글 속으로 코끼리를 만나러 갔다. 가는 길, 작은 개울을 건너기 전에 가이드가 두 명씩 짝을 지어 건너고 그 사람이 다 건너고 나면 다음 사람이 건너라고 영어로 말했는데, 내가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앞에 간 사람 바로 뒤를 따라가니까 뒤에서 ‘투 퍼즌’이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아차 싶어 다시 돌아와 앞 사람 다 건넌 뒤에 뒷사람 한 명과 같이 다리를 건넜다. 작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무척이나 불안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이음새나 연결 부위도 많이 어설펐다. 그래서 두 명 이상 다리에 올라가지 못하게 막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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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한참을 걸어가다가 가이드가 바나나를 반으로 나눠 내려놓으라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따라 절반의 바나나 송이를 들고 더 깊은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연신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먹여주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바나나를 입에 직접 넣어주었는데, 나는 코로 먹는 것이 보고 싶어 코 위에 올려주었다. 코끼리는 아주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먹었다. 바나나를 어느 정도 먹인 뒤 서양의 젊은 남자 한 명이 이번에는 짧은 막대기를 코끼리 코 위에 얹어주었다. 그러자 코끼리는 코로 그 막대를 움켜쥐고 자신의 등이나 다리를 마구 긁었다. 막대기가 가려움을 없애주고 벌레를 쫓는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인데, 그 젊은 친구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다른 남자가 대나무 잎을 꺾어서 코끼리의 코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코끼리는 그 대나무 잎을 코에 물고 이번에는 등이나 다리에 붙어 있는 벌레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데, 참 똑똑한 코끼리다. 코끼리가 목욕을 하러 물이 고인 곳으로 이동을 하기에 따라가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일행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이번에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가 남겨둔 바나나를 챙겼고 그들에게 바나나를 주었다. 잠시 후 코끼리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일행은 아침에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돌아오는 길, 내 뒤에서 오던 젊은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내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당신들은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프랑스에서 왔단다. 그렇게 이야기가 되어 한동안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은 바탐방에서 가까운 씨소폰에서 NGO 단체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반가워서 ‘반띠 민쩨이’라고 그 지역 이름을 이야기하니 그녀들도 같이 웃었다. 나는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현재는 바탐방에 있는 국립바탐방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일반 봉사단원이든 아니면 NGO든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아 이야기는 더 즐겁게 이어졌으며 오후 시간 역시 재미가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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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생선과 당근, 두부, 그리고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 탕과 볶은 야채, 그리고 밥이 나왔는데 모두 맛이 있었다. 그리고 수박과 망고, 그리고 바나나 같은 과일들이 함께 나와 배가 부르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각자 해먹 하나씩 차지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햇살이 강한 데크에서 오전에 만난 프랑스 젊은 여성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요즘 휴대폰으로 할 수 없는 게 없을 지경인데 그래도 이들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버스 안에서도 가끔은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 감탄을 했는데 여기서 또 그런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해먹에 올라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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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는 코끼리를 만나는 방식이 달랐다. 이번에는 폭포에 가서 코끼리 목욕을 시키고 또 수영을 하기도 한단다. 나는 애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그들을 따라가기만 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작은 폭포가 나왔다. 우기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수량이 풍부했으며 여러 명이 목욕을 하기에도 적당한 듯했다. 게다가 캄보디아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맑은 물이다. 황갈색의 물이 아니라 푸른 빛이 약간 도는, 말 그대로 산 계곡을 흐르는 깨끗한 물이다. 사람들이 수영을 할 준비를 하고 물에 들어갈 때쯤 어디선가 코끼리 두 마리가 나타났다. 오전에 두 번째 만난 그 코끼리들이다. 그들은 가이드의 손짓에 따라 거침없이 물속으로 들어갔고 물속에 있던 우리 일행은 그 코끼리에게 물을 끼얹기도 하면서 즐겁게 수영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철저한 관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코끼리의 관찰자로, 그리고 이어서 사람에 대한 관찰자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물속에 들어가 같이 어울리면 더 좋았을 테지만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용기도 별로 없는 내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관찰자의 위치를 고수했다. 그게 편했기 때문이다. 4시가 되기 전 일정을 마치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내일 정글 트레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젊은 여성 3명, 그리고 중국인 여성 한 명이 남았다. 나도 내일 정글 트레킹에 참여를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코끼리 투어를 하면서 중국인들과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세 명의 여성 중 두 명은 중국 사람이고 한 명은 대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겉모습으로는 구분을 할 수 없고 또 그들 세 명이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다 같이 중국에서 온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북한 사람을 여기서 만난다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겠지만 설령 만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터, 그게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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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는 돼지고기, 돈까스와 비슷하긴 하지만 양도 많았고 또 맛도 더 있어 저녁 식사로는 충분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고 다시 놀이가 한창인 공터로 가서 한 바퀴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이번에는 어제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폭죽 터지는 소리였다. 침상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어 곳에서 연신 폭죽이 터지며 밤하늘에 멋진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 폭죽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바탐방에서도 자주 보았다. 무슨 국경일이면 어김없이 시청 쪽에서 폭죽이 날아올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차야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도 옥상으로 올라와 구경을 했다. 거기서 한국 사람들 더러 만나기도 했다. 물론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은 뒤 투어 회사에서 보낸 툭툭을 타고 다시 투어 회사에 갔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투어 회사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제처럼 차량을 타고 이동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업무를 보는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내게 도시락 하나를 주면서 가이드에게 가져다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 혼자 투어 본부로 가기 때문에 툭툭을 그냥 타고 가면 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내리막길 경사가 심해 툭툭으로는 본부까지 가지 못하니 내려서 몇 분 정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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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을 타고 산길을 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가는 길이라 훨씬 더 상쾌했다. 큰길을 벗어나 산길로 한참을 달리던 툭툭 기사는 나에게 내리라는 몸짓을 한다. 보니까 경사가 아주 심한 내리막길 바로 앞이다. 그래, 저 길로 툭툭이 갈 수는 없겠지, 생각하며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다시 얕은 오르막길, 그 위로 올라가니 멀리 경치가 아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나무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는 풀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구나 아침 안개와 어우러진 산, 중첩되어 펼쳐진 산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내게 다가오기도 했다. 가이드에게 주라는 도시락을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오늘 이렇게 정글 트레킹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예상에 없던 일이고 또 이렇게 혼자서 투어 본부를 찾아가는 것 역시 처음에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에서 기쁨을 느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예약을 마치고 난 뒤, 몬둘끼리에서 유명한 폭포인 부스라 폭포를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소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이곳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둘끼리의, 캄보디아의 속살을 더 잘 알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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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을 걸어서 투어 본부에 도착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미 아침을 먹었는지 수건을 들고 왔다갔다 한다. 가지고 온 도시락을 가이드에게 건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보다는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어제 본 아이, 예닐곱 살쯤 된 아이가 새총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캔을 길 한가운데 세워두고 돌멩이를 주워 그것을 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뜻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그때 젊은 서양 남자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새총 쏘는 자세를 이야기하며 시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젊은 남자는 새총으로 캔을 맞춰서 아이가 그 자세를 따라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정글 트레킹 가는 사람 모이라고 했다. 일행이 모두 모였을 때 가이드는 반일 코스 참가자는 1.5L 물 한 병, 종일 코스 참가자는 두 병을 챙기라고 말했다. 나는 종일 코스라 두 병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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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글 트레킹은 가이드를 제외하고 모두 6명이 참가했는데 모두 어제 코끼리 투어에 같이 참가를 했던 사람들이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프랑스에서 온 젊은 여성 세 명, 우루과이에서 왔다는 여성 한 분, 그리고 중국인 아니 대만 여성 한 분이 나와 일행이 되었다.

정글 트레킹이라 했지만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정글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나라 지리산 둘레길, 혹은 제주의 올레길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글이라 했지만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길을 찾기 힘든다거나 아니면 많은 벌레와 짐승이 있는 그런 길은 아니었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다닐 테고 그것이 길이 되어 더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끔은 복잡한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깊은 정글은 아니지만 숲이 우거져 있고 게다가 계곡물이 많이 흐르고 있으니 진탕인 곳도 많았다. 그곳은 몹시 미끄러웠으며 때로는 쓰러진 나무를 타 넘고 그 진탕길을 가거나 아니면 얕은 개울에 걸쳐진 통나무를 밟고 개울을 건너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와 가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평평한 길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잘 걸었으나 가끔씩 나타나는 진흙길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들이 들고 있는 큰 물통을 잠시 들어주기도 하면서 도와주기도 했다. 한 번은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나무를 타 넘고 내려가야 했는데 일행 중 프랑스에서 온 여성 한 명이 손에 큰 물병을 잡고 있어서 쉽게 내려갈 수 없을 듯했다. 그래서 내가 물병을 대신 들어주려 했는데, 그 여성은 고맙다는 말만 하고 끝까지 자기가 물통을 들고 그 미끄러운 길을 내려갔다. 그때 나는 자립심이라는 말과 함께 프랑스를 비롯하여 서양의 아이들이 커 온 방식을 떠올렸다. 지나치게 생각할 필요야 없겠지만 그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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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대단한 재주꾼이었다. 그가 앞에서 걷다가 갑자기 식물 잎을 몇 개 뜯는 것이 보였다. 뭐 하려고 그러는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 사실을 잊고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자기 바로 뒤에 따라오는 여성의 목에 무엇인가를 걸어주는 것이 보였다. 보니까 아까 뜯은 풀로 만든 목걸이었는데 꽤나 그럴싸했다. 그런데 그게 그 한 명에게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가이드는 걸으면서 계속 목걸이를 만들었는지 완성이 되면 다음 사람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 작업이 계속되면서 마지막으로 걷던 나에게도 드디어 목걸이가 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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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 가이드가 이번에는 가지고 다니는 칼로 대나무 껍질을 벗기더니 그것을 얇게 다듬어서 가방에 챙겼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만들려고 그러지? 이번에는 가이드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가이드는 먼저 반지의 틀을 만들어 그것을 낄 사람의 손가락 굵기를 잰 다음에 완성된 반지를 끼워주곤 했다. 그러니까 즉석에서 만든 대나무 반지인 것이다. 나까지 모두 반지를 끼워주고 가이드는 다시 팔찌를 만들어서 일행 모두에게 채워주었다. 뜻하지 않게 나도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팔찌를 차고 종일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2시가 가까워졌다. 다리가 아프고 배도 고프고 몸도 피곤하다는 것을 느낄 무렵, 그래서 이제 점심 먹을 때가 다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그때 가이드는 작은 폭포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야호, 드디어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구나. 하지만 바로 점심을 먹지는 않았다. 가이드는 수영을 하고 난 뒤에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앞을 보니 그곳에는 작은 폭포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폭포 옆에 서 있는 나무에 올라가 아래로 다이빙을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마치 원숭이처럼 나무에 올라가 아래에 있는 물로 뛰어내리기를 되풀이했다. 가이드가 먼저 웃옷을 벗고 물로 뛰어들었으며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탈의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큰 수건으로 가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가이드가 물로 들어가기 전에 내게도 수영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준비된 것이 없어서 그들과 함께 하지를 못하고 오늘도 역시 온전한 관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짐은 내가 지킬 터이니 가서 즐겁게 놀다 오라는 이야기만 했다. 날씨가 좀더 추워서 그랬는지 프랑스 여성 한 분은 물속에 잠시 있다가 나오더니 햇살이 비치는 곳에 앉아서 몸을 말렸다. 추우냐고 물어보니 조금 춥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 물놀이를 즐긴 뒤에 그곳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돼지고기 볶은 것 한 접시, 그리고 나물 볶은 것 한 접시, 각자 도시락으로 포장된 밥 하나 이것이 전부였지만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주 달게,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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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는 달리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별로 쉬지 않고 곧 길을 떠났다. 오후에도 정글 트레킹을 하는 사람은 가이드 포함 세 명, 나머지 사람들은 오전 일정으로 트레킹을 마치고 차를 타러 갔고 나와 대만에서 온 젊은 여성 한 분만이 가이드를 따라 길을 나섰다. 네 명이 빠지고 세 명이 다시 숲길을 걸으니 호젓한 맛이 있어 좋았다. 가는 길은 오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해서 걸었고 또 가다가 과수원을 만나기도 했으며 산밭에 심어져 이제 막 이삭을 달고 있는 벼를 만나기도 했다. 과수원 길에서는 불에 타다가 만 큰 나무들이 과수 사이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는데 산불 때문은 아니고 사람이 일부러 태우다 만 나무들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우리는 폭포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폭포를 앞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폭포 뒤로 난 좁은 길을 따라서 걸으면서 뒤에서 폭포를 바라보게 되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로 인해 바위로 된 길이 많이 미끄러웠지만 이렇게 폭포의 뒷면에서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는 것도 꽤 좋았다. 비록 큰 폭포는 아니었지만 눈앞에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폭포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대만 여성과 대화를 하면서, 또 가끔은 혼자만의 호젓함을 즐기면서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산밭에 있는 과수원과 그 과수원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놓은 농막 같은 것을 만나 잠시 쉬었다. 농막 안으로 들어가니 새끼 돼지가 꿀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고양이 몇 마리가 그 주위에 놀고 있었다. 돼지는 우리가 다가가도 도망을 가지 않았고 고양이 역시 그러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밭에 있는 나무 아래 닭들이 바삐 움직이며 먹이를 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농막 옆에는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큰 돼지가 몇 마리 꿀꿀거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나무에 올라가 과일 몇 개를 따왔는데 과일 이름이 패션 블루라 했다. 가이드가 쪼개서 주기에 먹어보니 아주 시어서 제대로 먹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과즙을 빨아서 조금 먹고는 밭으로 던져버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어서 마지막 지점까지 도착했는데 오후에 걸은 길은 오전에 비해 더 평탄한 길이었다. 그래도 하루종일 걸은 길이 총 18Km, 캄보디아에 와서 이렇게 걸어본 일이 없었는데 걸으면서 캄보디아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비록 이번 여정에서 부스라 폭포나 소수민족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알차고 보람된 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라 폭포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제 오늘 폭포 세 곳을 보았고 또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가 모두 소수민족이었으니 그만하면 만족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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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투어의 마지막 여정지 역시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가이드는 그곳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곳으로 가면서 길가에 한가롭게 서 있는 버팔로를 만나기도 했고 소수민족의 전통가옥에 들어가 잠시 쉬기도 했다. 그렇게 정글 트레킹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와 대만 여성은 픽업 차량을 타고 시내로 이동을 하였다. 차량 앞자리, 즉 실내 공간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타고 있었는지 우리는 짐칸에 타고 이동을 했는데 땀을 많이 흘린 뒤에 맞이하는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자리는 불편했지만 같이 타고 가는 서양의 젊은 남녀들의 유쾌함에 묻혀 불편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고 또 손잡이 없이 짐칸에 걸터앉아 가는 위험함도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낮에 흘린 땀을 씻고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에 나오니 어느덧 하늘에는 무척이나 밝은 달이 떠 있었다. 오늘이 보름인가, 한국 땅에서도 이렇게 둥근 달을 쳐다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들을 볼 때는 별로 고향 생각이 나지 않는데 유독 달을 보면 시선과 생각이 멀리 가곤 한다. 달,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공간을 뛰어넘어 내게 다가오는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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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일요일. 어쩌면 가장 재미가 없고 힘만 드는 일정일지도 모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걸어서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가는 길 이곳 몬둘끼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버팔로 동상을 한참 쳐다보기도 하고 또 사진을 찍기도 했다. 7시 30분 차가 8시 차로 바뀐 것이 내게는 좀더 여유를 주었기에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주변을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사무실 아가씨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원래 이곳 사람들이 친절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친절한 것 같았다. 7시 30분 차를 8시 차로 바꿔달라고 전화로 요청을 받았을 때 내가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8시가 좀 넘은 시간, 차는 시엠립을 향해 출발했다. 올 때는 어두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까지 보였다.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서 있는 집들도 보기 좋고 또 산과 계곡이 이어지는 선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게다가 캄보디아에서 보기 힘들다는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비록 버스 안이라 솔숲을 거닐며 솔향을 맡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차창을 스쳐 지나가며 도로 양쪽에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

버스는 여전히 빨리 달렸다. 편도 1차선 도로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었음에도 추월을 하기도 하고 또 추월을 당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달렸다. 이런 속도로 달리면 오후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시엠립에 도착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아니, 기대감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시엠립에서 바탐방 가는 막차, 그러니까 시엠립에서 5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으리란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몬둘끼리에서 시엠립까지 지도상 511Km 정도이고 시간이 8시간 34분 걸린다고 나오는데 버스로 10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시속 9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도로 사정에 따라 속도가 줄어들 수 있지만 그래도 지도에 나타나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더 걸리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몬둘끼리를 벗어난 버스는 여전히 드넓은 평야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고 덩달아 내 기대감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버스는 3시간 가까이 달리면서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가끔 다리가 저려왔지만 이렇게 달려 시엠립에 좀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결딜 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시선을 멀리 지평선까지 던져두었다.

3시간이 지나 버스는 휴게소가 아닌, 다른 지역의 버스 회사에 멈춰 섰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마침 버스 옆에 운전사가 있기에 시엠립 도착 시간을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 버스 운전사는 어느 정도, 적어도 나만큼은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버스 기사 말로는 시엠립 도착 예정 시간이 저녁 여섯 시란다. 내가 5시에 바탐방으로 가는 막차를 꼭 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시간까지는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친구가 저녁에 바탐방으로 가는데 소개를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달러란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달러?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버스가 아닌 택배 차량 조수석에 타고 간다는 말인가? 아니면? 일전에 시엠립 갔을 때 바탐방까지 승용차로 가면 70불 정도가 든다는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들었는데 단 10불에 간다고? 정말 막차를 놓치면 70불을 주고서라도 바탐방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단 10불이라니. 그렇다면 버스가 늦게 도착한다고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스 기사에게 시엠립 도착하면 꼭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내가 바탐방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차가 늦게 달려도, 중간에 몇 번을 쉬어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젊은 여인이 두어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차를 탔는데, 그 아이가 무척 귀여워서,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며 웃음을 보내기에 그 손을 잡아주면서 좀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는 마음이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옆에 앉은 중년의 외국인 여성과 나를 숨바꼭질 하듯이 번갈아 쳐다보면서 손을 내밀기도 했고 또 그 손 잡고 흔들어주기도 했는데 그게 내 지루한 여행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니 그곳에는 넓은 강이 펼쳐져 있었고 강가에는 원두막 같은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또 그 속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 그곳이 호수든 강가든, 아니면 물이 가득 찬 논밭이든 원두막 같은 시설물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해먹을 설치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꽤 자주 보았고 나 역시 그 풍경의 일부가 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차 안에서 4학년 피싸이의 문자를 받았다. 피싸이는 목원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어서 지금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데 학교에 제출할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고 하는 문자였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서류를 열어보니 지원서 몇 군데 비어 있어서 그곳을 채우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는 중복된 표현이 몇 군데 있었고 또 이름의 위치가 오른쪽 끝에 가 있지 않아서 고치도록 했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자세한 것은 학교에 가서 더 보자고 했다.

시엠립 도착 예정 시간을 두어 시간 남겼을 무렵, 신나게 달리던 버스 안에 일이 생겼다. 귀여운 어린아이가 멀미를 하는지 먹은 것을 다 토해서 그 냄새가 그리 넓지 않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어른들도 하기 힘든 장거리 버스 여행을 어린아이가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어린아이가 토한 것인데도 냄새는 무척이나 심했다. 운전기사는 급히 주유소와 화장실이 같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아가서 그곳에 있는 청소 도구로 차 안을 씻어내고 방향제 같은 것을 뿌렸다. 그 사이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가서 토한 것을 씻겨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청소가 끝났음에도 아이의 엄마가 가지고 탄 짐에 아이의 토사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한 명과 또 내 옆에 앉아서 같이 온 외국인 여성이 가지고 있던 휴지를 꺼내 아이 엄마의 짐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일을 하면서도 두 여성은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짜증스러울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휴지로 토사물을 닦아내는 그 여학생이 몹시도 예뻐 보였고 같이 닦아내는 외국인 중년 여성 역시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해도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약간의 냄새를 풍기면서 차는 계속해서 시엠립을 향해 달렸다.

시엠립 가까이 갔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 시간인 여섯 시가 되어서 시엠립 시내로 들어섰다. 정확하게 열 시간 정도 걸렸는데, 버스 예매할 때 본 정보가 부정확할 것이라 믿었던 내가 조금은 쑥쓰러워졌다. 버스를 타고 올 때 버스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다섯 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아마 내가 버스를 타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지 전화를 한 모양이다. 여기서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해서 30분 전에 버스 회사로 오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 내가 버스를 타지 않아서 전화를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벌써 몇 번의 전화가 같은 번호로 와 있었다. 내가, 몬둘끼리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중이라 하니 잠시 놀라는 듯하다가 몇 마디 말을 더 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바탐방 가는 막차는 놓치게 되었다.

시엠립 버스 회사에 도착하기 직전에 기사는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나에게 내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같은 회사 택배 차량을 타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짐을 챙겨 차에서 내리니 앞에 오토바이가 한 대 서 있었다. 버스 기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바탐방으로 가는 차를 만날 수 있으며 요금은 차에 가서 주라고 했다. 이렇게 낯선 오토바이를 타고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타니 오토바이는 한참을 달려 역시 길가에 나를 내려주었다. 그곳에는 봉고차 한 대가 서 있었고 할머니 한 명과 중년 여성 한 명, 그리고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어린아이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남성 몇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를 타고 바탐방으로 가는 사람인 듯했다. 그들을 보는 순간, 걱정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차 앞으로 가서 몰래 차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번호판이 찍힌 사진을 코워커 보파 선생님에게 보낼까 생각을 했다. 막차를 놓친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 차를 타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사진을 보내지는 않았다. 함께 차를 타는 일행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7시가 다 되어 갈 때 운전기사가 다들 차에 타게 했다. 나에게는 맨 뒷자리에 앉으라 했는데 그 옆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캄보디아 젊은이가, 나보다 조금 늦게 차가 있는 곳에 맨발로 걸어서 온 그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그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바탐방 가느냐고,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자기도 바탐방으로 간다고 했다. 허름한 옷차림에 맨발인 그 젊은이가 영어를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그리고 내 앞자리에는 같이 기다리던 여성 두 명과 아이 한 명이 탔으며 그 옆에 캄보디아 남성 두 명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니, 운전석 바로 뒷자리는 모두 비었는데 내 앞자리에 아이 포함 다섯 명을 포개듯 앉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일행을 태운 차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차 앞에 오토바이를 탄 여성 한 명이 나타났고 차는 그 오토바이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가정집 같은데 그곳에 중년의 여성 두 명과 아이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길까지 나와서 타지 않고 차를 그곳까지 오게 하다니, 보니까 짐도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한데 버스 기사와 잘 아는 사이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을 태운 차는 다시 골목길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젊은 부부를 태웠다. 바로 중년 여성 두 명과 아이 두 명이 앉은 바로 옆 자리에. 그러니까 그 줄은 어른 네 명과 아이 두 명이 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맨 앞자리 조수석에 중년의 남성 한 명이 타고 맨 뒷자리, 나와 젊은 남성이 탄 곳에 또 젊은 여성 한 명이 탔다. 그 젊은 여성은 나와 젊은 남성 사이에 쪼그리듯 앉아 등을 기대지도 못한 채 그렇게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눈으로 헤아려보니 12인승 봉고차에 아이 세 명을 포함해서 모두 열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수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타면 중간에 휴게소도 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이 많아 차가 마음껏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함부로 중앙선을 넘나들며 추월을 하지 않는 듯해서 그게 밤길에 덜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좁은 자리에 앉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상태로 가면서도 사람들은 일체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 사람과 웃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이동을 하는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차가 달리는 동안 우리 줄에 앉은 젊은 남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내가 잠들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캄보디아 노래를 크게 틀어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듣게 했다. 이어폰은 없는지 그 노래를 모두가 같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이번에는 무슨 코메디 프로그램인지, 만담을 하듯 이야기를 주고받는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혼자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역시 그 소리는 차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차 안에 있는 사람 어느 누구도 그 소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은 같이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시소폰에 도착할 때까지 휴대폰을 끄거나 소리를 죽이지 않았다. 한 번도 설 것 같지 않은 차가 시소폰 길 가에 있는 주유소 옆길에서 잠시 멈췄다. 그러더니 화장실 갈 사람은 다녀오라고 했다. 다들 주유소에 딸린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제부터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편도 2차로의 넓은 길이다. 차가 빠르게 다른 차를 추월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그때부터 옆자리에 앉은 청년도 좀 잔잔한 팝송을 들으면서 가다가 그마저도 꺼 버리고 잠시 눈을 붙이는 듯했다. 차 안은 비로소 고요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바탐방이 가까워질 무렵 차가 길가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몇 사람이 내려서 앞에 대기하고 있는 차로 옮겨 탔다. 얼핏 들어보니 그 차는 뽀삿으로 가는 차였다. 옮겨 탄 사람들은 뽀삿까지 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뽀삿은 바탐방에서 다시 두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하니 그렇게 역할 분담을 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별로 쉬지 않아서 그런지 차는 9시 반 경에 바탐방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지막 종착지는 동상이 있는 네거리, 우리 집에서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나는 예정된 10불을 건네고 툭툭을 불러 집으로 돌아왔다. 3박 5일, 무척이나 긴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생각해 보면 몬둘끼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부스라 폭포를 가지 못한 것, 또 소수민족이 산다는 마을을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나는 이번 여행이 만족스럽다. 코끼리를 만난 것도 그렇고 정글 속을 하루종일 걸은 것도 그렇다. 거기에 더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짧지만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정리를 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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