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삿, 1500산으로 소풍을 가다

by 지천

뽀삿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 여섯 시 40분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보파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차가 집 앞에 도착했으니 내려오셔도 된다는 문자다. 혼자서 봉고를 타고 보파선생님이 있는 곳, 이번에 결혼을 할 남자친구가 사는 집으로 갔다. 따 떰봉 크르뇽 동상 옆으로 한참을 들어가는 곳에 집이 있었는데 차 안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까 두 사람이 접이식 의자와 식탁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차에 짐을 싣고 다시 가까이 있는 학교로 가니 같이 갈 아이들이 모두 교문 앞에 서 있었다.

12인승 봉고에 운전자 포함 13명이 탔다. 원래 뽀삿에 있는 1500산은 뽀삿이 고향인 학생들과 같이 가기로 했다. 일전에 학교 밖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마침 4학년 학생인 니가 그 식당으로 와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뽀삿이 고향인 니와 든, 쏘쿤과 스레이로엇, 사븐, 3학년 학생인 쏙리 이렇게 여섯 명과 내가 같이 가기로 했다. 이런 계획을 코워커인 보파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곧 결혼할 남자친구도 같이 가면 결혼 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겠다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은근히 같이 가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컸다. 결혼 준비 때문에 바빠서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던 보파 선생님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같이 가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졸업생인 뽄러 선생님도 같이 가면 안 되냐고 했다. 여러 명이 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차량을 빌리는 것이 큰 차이가 없기에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 10명이 되었다. 어차피 차를 빌리기로 했으니 두 명 정도 더 가면 좋겠는데 내가 두 명을 선정하면 아이들이 삐칠 수도 있으니까 보파 선생님이 선정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차량 가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차량 가격은 130불이고 재학생 중에서 2명에게만 같이 가자고 하면 다른 학생들이 섭섭해 할 것 같으니까 아예 올해 졸업을 한 몬타이와 짠투가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렇게 계획은 2주 전에 세워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출발을 사흘 정도 남긴 수요일, 마침 4학년 수업이 있어서 교실에 들어가니 몇몇 아이가 갈 수 없다고 한다. 스레이로엇은 통역 일을 해야 하고 다른 아이는 가지 못할 다른 이유를 말했다. 결정적인 것은 수업 중에 전화를 받은 니가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갔기 때문에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며 그래서 뽀삿 1500산은 못 갈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이런, 이러면 원래 목적과는 크게 달라지는데 어떡하지, 행사 자체를 포기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로 와서 보파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니 차량 예약이 끝났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내가 가고 싶어서 1500산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또 일이 이만큼 진행이 되었으니 그냥 추진을 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누구를 대신 데리고 갈까 생각을 했다. 나는 4학년 남학생인 소포앗, 보파 선생님은 4학년 여학생 스레이디를 추천했다. 그리고 3학년은 쏙리에게 이야기를 해서 같이 갈 사람을 선정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2학년에서 두 명을 더 데려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린나와 모세가 같이 가면 좋겠다 했다. 두 사람이 친한 것도 있고 특히 린나는 지난 번 GKS 장학생으로 계명대학교에 유학을 가려 했던 것이 서류 심사도 통과하지 못해 좌절된 일이 있어 이번 기회에 위로를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했다. 결국 나와 보파 선생님 예비 부부, 그리고 뽄러를 제외하면 각 학년별로 2명씩 모두 여섯 명, 그리고 졸업생 두 명이 함께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학년당 2명, 그것도 남자 1명 여자 1명 이렇게 맞춰지게 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덟 시쯤 학교를 출발한 봉고는 프놈섬퍼 지역을 조금 지난 곳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씩을 했다. 그리고는 목적지까지 세 시간 가량 쉬지 않고 달렸다. 창 밖은 아직 푸르름 그 자체다. 벼가 자라는 논이 있고 또 벼를 베고 다시 물을 담은 논이 있었다. 밭이 길가로 길게 펼쳐져 있었으며 그것을 보면서 나는 보파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파 샘, 이번 21일 결혼하면 며칠을 쉬어요? 일주일 쉬나요?”

“아니에요. 사흘 정도밖에 못 쉬어요.”

“아니, 겨우 사흘? 원래 그렇나요? 한국에서는 5일 휴가를 주는데…….”

“여기도 일이 안 바쁘면 5일 정도 쉬어요. 하지만 왓타나 선생님이 3일만 쉬라고 해서요.”

와타나 선생님은 외국어학부 학부장이다. 이곳 결혼식이 보통 힘든 게 아닌 것 같은데 겨우 3일만 쉬라 한다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더 물어보았다.

“여기 여학생들은 생리를 할 때 결석을 해도 출석으로 인정을 해 주나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는데.”

“여기는 아직 그런 제도는 없어요. 아이들이 생리통으로 아프면 그냥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안 나와요. 그러면 출석은 아니지만 미리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냥 결석하는 것하고는 다르게 처리해요.”

“결혼이나 출산, 그리고 생리와 같은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빨리 제도적으로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겠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보파 선생님을 보니 보파 선생님은 불편한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바깥 풍경에 빠져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가는 길, 도로 공사 현장을 만나 먼지가 안개처럼 깔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곳을 조심스럽게 지나가기도 했다. 지난 여름의 흔적일 테지. 비와 바람과 천둥이 만들어냈을 그 풍경들, 이제 거두어들여야 하는 계절이 된 모양이다. 두어 시간 그렇게 달렸을 때 멀리 높은 산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높은 산이다. 지난 번 몬둘끼리에 갔을 때도 저렇게 높은 산을 보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산은 실루엣처럼 우리 차와 같이 이동을 했다.

세 시간여를 달려 산 아래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를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 화장실에 다녀와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이는 높은 산, 푸른 초원에서 찍는 사진의 뒷배경으로 썩 잘 어울렸다. 특히 거울을 세워둔 곳은 뒷배경이 거울에 비치면서 독툭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아이들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도 그랬다. 휴식이 끝나고 출발,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다. 구절양장, 문득 문경 새재 옛길을 오르던 생각이 난다. 굽이굽이 휘어지며 올라가는 길, 역시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길이다. 그런데 이 길은 단순히 산에 오르기 위한 길이 아니라 산 너머 어딘가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제법 큰 트럭, 짐을 많이 실은 트럭들이 그 길을 달려 올라가고 내려오곤 했다. 그리고 산 중턱 쯤에서 내리막길을 만났는데 그 길도 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도로 공사를 하는 곳도 자주 만났다. 지난 우기의 흔적인가, 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인 곳이 더러 있어 조심스럽게 그 길을 달렸다. 그렇게 한 시간여 산길을 달려 차는 드디어 목적지인 폭포에 도착했다. 그리고 휴식, 그곳에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1인당 2,000리엘. 그리고 물가에 자리잡은 원두막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20,000리엘을 별도로 내야 했다.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원두막도 하나 빌렸다. 그리고 그곳에 가지고 온 음식을 펼쳐놓았다. 각자 집에서 싸 온, 음식을 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사 온 음식들을 펼쳐놓으니 제법 푸짐했다. 나는 보파 선생님이 가지고 온 음식을 기본으로 해서 다른 아이들 반찬을 같이 먹었다. 맛이 있었다. 2학년 린나 어머니가 식당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 생각이 나서 린나 반찬은 엄마가 싸 준 것이냐 하니 자기기 직접 만들어서 가져왔단다. 엄지척을 해 주고 반찬을 덜어달라고 해서 먹어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고수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그것도 몇 번 먹어보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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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폭포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아이들은 물가에 있는 바위 위에서 게임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높은 산에 왔으면 적어도 산길을 걸으면서 산 아래를 조망하는 즐거움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물가에 앉아서 놀기만 하면 이곳까지 먼 길을 온 보람이 없지 않나, 이런 생각 때문에 든 아쉬움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등산이라는 말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등산이라는 말을 모른다기보다는 등산 자체를 즐겨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물가에 앉아서 놀기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주변에 올라갈 만한 산이 별로 없고 대부분 평지인 이곳 지형이 등산이라는 말과 거리가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에 오르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은 나 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아쉬움을 떨쳐내고 게임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3학년 쏙리와 2학년 린나였다. 그렇게 물가에서 놀다가 다시 바탐방을 향해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제법 높은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아래로는 우리가 올라온 구불구불한 길이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곳에 멈춰 서서 산 아래로 길게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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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지고 늦은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저녁을 사 줄까 했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우겨 그렇게 하도록 했다. 생각해 보면 여덟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가면서 겨우 계곡에 앉아 쉬다가 온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높은 산의 풍경보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보다, 그리고 떨어지는 폭포보다 같이 간 아이들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맑은 하늘 같았고 얼굴에 걸린 순한 웃음은 하늘 가장자리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뭉게구름 같았다. 그게 나는 좋았고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이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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