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어떻게 살 것인가
4월, 드디어 이곳 기온이 40도를 넘나들고 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다시 봉사활동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나는 여기까지 왔는가? 여기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이곳에서 만나 관계를 맺고 마치 오래 전부터 함께 해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선생님들은 또 어떤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가?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더위를 만나면서, 가끔은 더위 때문에 자다가 깨기도 하면서 지금 이곳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다. 지금 여기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봉사활동에 대해 더 진지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을 나는 오늘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날씨가 더울수록 더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터이고 또 이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 역시 이로부터 나오는 것일 게다. 유시민 씨가 한 말이 더 생각난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 프롤로그 ‘나답게 살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내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내 삶을 지배한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일이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을 더 살게 될 내 자신에게만큼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혹시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시간과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캄보디아로 오기 전, 정확히는 캄보디아에 도착한 이후부터 늘 생각하던 것인데 오늘 새벽 잠에서 깨어 다시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늘 생각하는 시간임에도 이번에 더 많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 처음으로 오랜 시간 혼자서 생활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낯선 경험으로 가득찬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한 지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아직도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눈만 뜨면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캄보디아 인이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크메르어임에도 그렇다. 아마 아직 나는 한국의 시간이 몸과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크게 외롭거나 하지는 않다. 그것은 내가 사무실에서 한국인 봉사자 두 명과 같이 생활하고 있고 또 코워커나 시간 강사와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하기도 하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는 의식적으로라도 한국어를 써야 한다. 그래서 석달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건 실감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더위, 단기방학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부터 수업이 없어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또 크메르어 공부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쓰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기록도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학교에 아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좀 늦게 출근을 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나왔다. 집보다는 학교가 더 시원하고 또 덜 게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금요일 오후에 학부장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Dear teacher! Learning and teaching activities will be suspended for 1 week from 28 April to May 4 2024 because of the hot weather. The learning and teaching activities will be resumed on May 5, 2024.”
“Note: staff and administration work will be in service as normal”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학사일정을 한 주 연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기방학을 한 셈이다. 하긴 지금 여기 날씨가 너무 덥다. 지난주에는 거의 매일 42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갔다. 어제 경향신문에는 동남아 지역이 더위 때문에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부터가 <“피부가 타는 것 같아” 체감온도 50도 육박, 동남아 덮친 폭염>이었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니 필리핀의 공립학교는 29일~30일 대면수업을 전면 중단하고 원격수업으로 전환했으며 한 교사가 현지 라디오에 밝힌 “지난 며칠 동안 학생과 교사의 고혈압, 현기증, 실신에 대한 보고가 이미 있었다.”는 내용이 기사에 실려 있었다.
태국의 경우, 이미 열사병으로 최소 30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수도 방콕은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겼고 체감기온이 52도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모기를 매개로 퍼지는 뎅기열 발병 사례가 전년 동기 1만 5000건에서 지난달 3만 5000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는 인도네시아 보건부의 발표도 같이 실려 있는데 “엘니뇨 기후 패턴으로 인해 건기가 길어지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모기의 수명도 길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바탐방 지역도 지난주 기온이 거의 매일 42도 이상으로 높아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교문 밖 식당으로 갈 때 햇살이 뜨거운 정도를 넘어선다. 햇살에 노출된 피부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갑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이틀이 아니어서 더 힘든다. 연일 계속되는 이 더위는 아마 우기가 되면 좀 나아질 것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틸 수밖에 없다. 이겨내야 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다시 생각해 본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