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오후 세 시, G층에서 부총장과 와타나 학부장, 그리고 보파 선생님과 함께 한국 기업인을 만났다. 통역사인 듯 캄보디아인 남성 한 분을 대동하고 참석한 그분은 여자분이었다. 나와 보파 선생님이 가니 이미 부총장과 와타나 선생님 그리고 한국인 CEO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바탐방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실 하나 제공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필요한 물품이나 강사를 지원해서 한국어 단기 코스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한국어 단기 코스를 이수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안은 있나요?”
“한국에 있는 전북은행과 제휴를 해서 이곳 학생들이 한국에 유학을 갔을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또 졸업을 하고 난 뒤에는 한국이나 캄보디아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줄 생각입니다.”
내가 물어보았다.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준다는 말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말입니다. 이곳 학생들은 형편이 어려워 한국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을 공부시키고 취업까지 알선해 준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좋이지요. 그런데 한국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는지요?, 가령 이곳 캄보디아에 돌아와 몇 년간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제한 조건 말입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실 한 칸이면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곳 바탐방대학에 있는, 공자학당과 같은 건물을 지어줄 수도 있습니까?”
“당장은 어렵지만 추후 서울시 성동구청과 같이 사업을 진행할 때 이 문제는 고려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외에도 MOU 체결과 관련된 이야기, 한국 유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더 있었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총장도 추후 와타나 학부장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뒤 보고를 받아보고 결정을 하겠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당장은 그렇다. 아무 것도 결정을 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냥 상대의 의중을 알아보는 탐색의 시간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부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한국어학과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교실을 둘러보러 갔는데 교실 문이 모두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대표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분도 곧장 프놈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들을 보낸 뒤 와타나 선생님이 내일 졸업식과 관련된 행사 준비로 강당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내 생각만 이야기를 했다.
일전에도 세종학당에서 교실을 빌려주면 한국어 강의를 열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학교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학과 학생 모집에 지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세종학당은 수업료를 받지만 이번의 경우는 모든 것이 무료다. 무엇보다 졸업 후 취업과 관련된 혜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것은 이곳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서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상황, 한국에 가고 싶어도 형편이 어려워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그런 상황에서 이번 논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게 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한국어학과 학생 모집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런 점은 추후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될 때 꼼꼼하게 검토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바탐방대학교에 한국어 교실을 설치하는 문제는 진척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한국인 CEO는 바탐방에 있는 듀이 대학교에 한국어학당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다가 12월, 내가 바탐방대학교를 떠나기 전에 그분을 바탐방에서 다시 만났다. 12시에 수업을 마치고 보파 선생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툭툭을 타고 클래시 호텔로 향했다.
1시 경에 대표를 만나 옆에 있는 카페로 이동을 했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대표는 프놈펜에서 오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해서 나와 보파 선생님만 점심을 주문하고 대표는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는 바탐방에 있는 듀이 대학교에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서 희망 학생을 모집하여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 성동구청과 이곳 바탐방 시청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이를 통해 성동구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 공부를 한 사람들을 한국으로 보낼 때 바탐방 시청의 확인을 받기로 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대표는 이곳 사람들을 한국으로 보내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준비 중인 것이다. 물론 대표는 이미 프놈펜에서 이 사업을 계속해서 해 오고 있었고 이번에는 바탐방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제 공간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곧 수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대표가 했다. 그리고 1월 13일부터 수업이 시작되면 보파 선생님이 강의를 맡아서 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보파 선생님은 가능하다고 했다. 일전에, 그러니까 내가 몬둘끼리로 여행을 갔을 때 바탐방에서 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대표로부터 받고 보파 선생님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그날 대표는 보파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 왔는데 아마 보파 선생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수업을 보파 선생님에게 맡기려고 한 것이다. 물론 수업을 들을 인원이 늘어나면 다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더 필요할 터이니 그때도 좋은 사람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대표가 했다. 그리고 대표는 내게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하실 일이 많이 있을 테니 그 일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백수가 될 터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보파 선생님을 2주든 한 달이든 한국으로 보내주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다. 자신이 만든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성동구청에 2주 정도 인턴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대표가 했기에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에 이어 나는 단기 과정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달리 바탐방대학교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많으니 고급 인력이 필요한 곳에는 꼭 바탐방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봐 달라는 이야기도 같이 했다.
대표가 수업 수당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대학교 강의를 하면 시간당 받는 돈이 얼마냐고 대표가 물었는데, 보파 선생님은 7불~9불 정도라고 대답했다. 대학교는 재정 상태가 안 좋아 많은 돈을 주지 않는데 대표께서는 좀 넉넉하게 대우를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내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니 대표 역시 그러겠다고 한다. 우선 보파 선생님이 길을 잘 터 놓으면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툭툭을 불러 듀이 대학교로 이동을 했다. 나는 클래시 호텔 근처에 있는 듀이 대학교를 말하는 줄 알고 걸어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곳이 아닌 모양이었다. 바탐방 지역에는 듀이 대학교가 여러 개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내 앱으로 툭툭을 불렀다. 지도에서 보니까 따 덤봉 크르뇽 동상을 지나 우리 학교, 즉 바탐방대학교 가는 길 안쪽에 듀이 대학교가 있었다. 세 명이서 툭툭을 타고 가는데 가는 길에 와우 카페가 있어 내가 대표에게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카페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와우 카페를 지나 얼마 더 가니 듀이대학교가 나타났다.
나는 대학교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곳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귀여운 초등학생이 많이 보여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에 면해 있는 건물에는 성동구청 이름과 함께 성동한국어학당이라는 이름이 조그만 간판에 표시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옆에는 교복과 책을 파는 곳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잠시 후 학교 담당자가 와서 같이 본 건물로 이동을 하였다. 가는 길,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우리와 함께 가고 있는 학교 관계자에게 매달려 영어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귀여웠고 학교 관계자는 푸근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한참 걸어가니 한국어수업을 하는 교실이 나타났다. 교실 안에는 수업에 필요한 장비들, 빔이나 컴퓨터, 그리고 책걸상이 잘 정돈되어 있고 또 앞쪽 벽면에는 애국가로 그린 지도가 걸려 있었다.
교실에서 나와 다시 이동하여 간 곳은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별도의 건물인데 지금은 아무도 사용을 하지 않는 곳이라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넓은 홀이 있고 또 각각의 조그마한 방들이 홀에 잇대어져 있었다. 대표는 이곳에 문화 공간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넓은 홀은 바리스타 수업과 카페를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작은 방에서는 독서나 토의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 건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 따로 있어 학교가 문을 닫는 저녁 시간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인근 주민들 역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표님 생각이 아주 좋아요. 사실 한국어만을 가르치는 사업도 의미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운영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문화적인 것들, 가령 지역 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결합시키면 이 공간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데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수업만큼이나 이 공간을 활용한 문화적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좋은 말씀 고마워요. 그 방향으로 더 고민을 해 볼게요.”
회의가 있어 학교에 더 있어야 한다는 대표에게 나와 보파 선생님은 인사를 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가 툭툭을 불러 놓고
“보파 선생님, 이 사업은 보파 선생님이나 우리 학교 한국어학과 졸업생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수업을 하면서 이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잘 살펴보면 좋겠어요. 지금 보파 선생님은 코이카 단원과 함께 한국어를 지도하고 있지만 단순히 한국어를 알려주는데 그쳐서는 안 돼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난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을 해야 합니다. 보파 선생님 장래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이 보파 선생님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이런 사업들을 통해서 보파 선생님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면 나중에 보파 선생님이 한국어 교사로 혹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요.”
끄덕끄덕,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클래시 호텔로 돌아와 나는 걸어서 집으로 향했고 보파 선생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