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인사를 하는데 맥없이 눈물이 났다. 아침 출근 때마다 우리 부부는 꼭 안아주는 걸로 인사를 하는데,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눈시울이 데워졌다. 처음으로 남편이 불쌍했다.
어떻게 그토록 한결같을 수 있을까. 피곤해도 아파도 어김없이 때를 맞춰 집을 나선다. 다쳐도 맘 편히 쉬지를 못한다. 나한테 저리 살라고 했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우직하게 소처럼 사는 것 말이다.
친구 결혼식에 갈 때 친구의 남편 측 선후배들이 타고 있던 승합차에 신세를 졌었다. 그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둘이서 여러 번 밥을 먹다 보니 부부의 연이 닿았다.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퇴근한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서는 힘든 기색을 문밖에 두고 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을 봐주었다. 아이들이 크니, 퇴근하자마자 나를 봐준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돈을 벌러 나간다.
큰아이가 돌쟁이였을 때만 해도 남편은 대학원생이었다. 실험을 마치고 한밤 중에 집에 와서 나와 아이가 잠들어 있는 걸 보면 더없이 행복하면서도 무서웠다고 했다. 어깨에 커다란 짐이 놓여 있었다고. 둘을 잘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엄습해 왔다고.
"은미, 나랑 사귀자. 잘해 줄게." 참 멋도 없는 프러포즈. 있어 보이려면 어째야 한다는 걸 다 알 만한 서른 살일 땐데도 저 한 마디뿐이었다. 거기에다 나는 왜 고개를 끄덕인 건지. 다 그 청국장과 새끼손가락 때문이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둘의 첫 밥 약속 때다.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은 바람에 즉흥적으로 청국장집에를 갔다. 냄새가 옷에 밸 걸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질퍽하고 구수한 청국장을 엄마 음식만큼이나 좋아했었다.
어라! 이 사람도 청국장을 잘 먹네. 뚝배기를 기울여서 마지막 콩 조각까지 싹싹 모아 먹는데, 그이도 질세라 적당히 식은 뚝배기를 들고 마시는 거였다. 뭔가 통한 느낌. 똑같은 걸 좋아한다는 건 둘이 연결된 느낌을 주었다.
소양강이 흐르는 춘천은 지금도 물의 도시, 그래서 여전히 그리로 떠나고픈 낭만의 도시이다. 20여 년 전 그때도 그랬다. 그리고 춘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곳에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국장 숟가락을 핥고 우리는 카페에 갔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처럼 어둠 속에서 오롯이 노오란 빛을 자랑하는 카페였다. 카페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신비한 움직임으로 바뀌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바로 그 카페 옆에 전망대가 있었다. 구봉산 전망대. 냉장고에서 원하는 캔커피를 하나씩 골라 계산대에서 결제하고 자리를 잡았다. 포장마차에나 있을 법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같은 재질의 의자였다. 조명도 그쯤 되었다.
딸깍. 내 커피의 뚜껑을 먼저 따 주더니 자기 것을 따고 한 모금 들이킨 그이. 그런데 캔을 든 쪽 새끼손가락을 안테나처럼 치켜 세운 채로 커피를 삼키는 거다. 꼴깍. 신기해서 뚫어져라 보게 될까 봐 관심 없는 척하고 마시느라 내 목 넘김 소리가 다 들렸다.
쭉 뻗친 통통하고 뽀얀 손가락이 어쩜 그리도 고와보이던지. 그이가 다 고운 사람 같았다. 나를 향해서 묵언의 무언가를 순결하게 약속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 새끼손가락을 그이의 손가락에 콕 걸고 싶었다.
나처럼 청국장을 좋아하고 캔을 들 때마다 살집 있는 새끼손가락이 섹시하게 곧추 세워지는 그이. 그런 그이라서 나는 그이와 부부가 되었다.
큰 살림이 쪼그라지는 건 주인의 가슴도 같이 쪼그라드는 슬픈 일이지만, 없던 살림이 덩굴이 뻗듯 확장되는 건 주인을 속으로 웃게 만드는 혼자만의 비밀같은 거다.
아이들이 어릴 땐 죄다 얻어 입혔었다. 좋은 브랜드가 탐이 나서 남의 아이가 입던 걸 구한 게 아니라,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봄에 태어난 큰아이의 첫겨울 점퍼도 중고 사이트에서 구해 입혔다.
아끼고 또다시 아끼는 나의 장단에 남편은 언제나 그의 장단을 맞추었다. 퇴근 때마다 중고물품을 예약해 둔 집에 들러서 내가 일러둔 걸 구매해 왔다. 거래 금액을 내고 받아오는 건 덜했겠는데, 나눔 물건을 공으로 받아올 땐 두 손이 부끄럽지 않았겠느냐고 나중에 친정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이의 장단 맞춤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안에서는 아끼고 밖에서 안 쓰니, 살림이 덩굴이 되어 살곰살곰 뻗어갔다. 부부는 세상에서 오직 둘만이 아는 비밀을 나누며 더욱 하나가 되었다. 견고히 되었다.
다 남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 같은 우직함을 자기의 당연한 책무로 알고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묵묵히 감내해 온 걸음걸음. 그 걸음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과일을 사면서나, 소소한 사건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나 '참 감사하다!'를 되내게 된다. 써야 할 데에 쓸 돈이 있다는 게 때마다 새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오늘 아침, 15년 전보다 널어진 우리의 보금자리의 문을 열고 나가 아이들과 나를 위해 타 지역으로 출장을 떠난 그이, 나의 남편, 아니 내편!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폭싹 속았수다! 이제는 커피값을 아끼려고 전망대 캔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이것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