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주여…주여. 이런 소리라도 들렸다면, 그렇기만 했었어도. 그랬다면 내 머릿속에 영영 지울 수 없는 문신 같은 선으로 새겨지지 않았을 텐데. 그날 언니는 절대로 풀어지지 않을 한이 서린 것 같은 붉은색 방석 위에 있었다. 무릎을 꿇은 두 다리 위로 밥그릇을 엎어둔 것 같은 가슴을 포갠 채 언니는 거기에 엎드려 있었다. 교회 문을 들어선 언니가 그곳에 자리 잡는 걸 처음부터 내가 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이 언니인 줄 나는 끝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탄 전야 예배와 축제를 마친 교회에는 자정을 기다리는 청년들과 학생들, 그리고 어른 몇 명뿐이었다. 자정부터 시작하는 새벽송을 돌기 위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탄을 축하하는 발표회로 한바탕의 흥분과 열기, 숭고와 경건의 불이 활활 타올랐다가 마치 대낮과 한밤중의 이질성처럼 유열의 광희와 하나도 닮지 않은 낯선 정적이 교회 안을 메웠다. 조명이 꺼진 무대는 본래의 모습인 제단으로 돌아갔고 제단 뒷벽의 한가운데에 매달린 십자가에서만 연약한 생명체 같은 빛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예배방 바로 옆에 붙은 주방에서 새벽송을 시작하기 전에 먹을 떡국 재료를 손질하는 손길들과 또래끼리 모여 앉아 두러니두러니 이야기꽃을 나누는 무리가 있었는데도 축제의 막이 내려진 교회는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북새통을 이룬 시장 바닥에서 얼떨결에 엄마의 손을 놓인 심정처럼,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여기저기를 헤매면서 눈물 콧물을 다 뺀 뒤에 얼이 빠진 때처럼 나는 먹먹해졌다.
십자가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뻗어나가 점점 어두워지다가 어디부터랄 것도 없이 빛과 어둠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 그즈음에 언니가 있었다. 꼭 잠든 것처럼. 정체되어 있는 공기 속에서조차 촛불일망정 미세하게 흔들리건만 언니는 진공 속에서 타고 있는 초같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마치 세상이 만들어진 태초의 순간부터 그렇게 빚어진 듯이.
어두운 예배방 바닥에 허옇게 뒤집어진 게 보였다. 제단을 향하려는 건지, 십자가에서 뻗어 나온 미세한 신경 같은 불빛을 잡으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언니의 손바닥이었다. 부활을 바라며 미이라가 되기 위해 누워 있는 차디찬 시신의 손바닥처럼 보였다. 동시에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 중 한 명처럼 언니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죄다 그러모아서 제단에 바치고 있는 것 같았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어머니이신 마리아. 마리아는 예수를 낳을 마땅한 숙소를 찾을 수 없어서 다급하게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언니도 생각할까. 아니 아니, 언니는 마리아의 처지를 헤아려보기나 했을까, 아니면 아기 예수의 처지를 수도 없이 곱씹었을까. 어머니이지 않은가. 어머니는 울타리여야 하지 않나. 그 어느 것도 어머니가 어머니여야 하는 걸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도대체 어쩌다가 아이를 낳을 방 하나도 얻어내지 못했나.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구했어야 하지 않은가. 어머니라면 반드시 그걸 지켜내야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어머니니까.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인 듯 미동도 없이 검게 엎드려 있던 언니가 명이 거두어지는 노인의 마지막 단말마처럼 윽윽하고 소리를 뱉었다. 뱉었다라기보다 틀어막아도 비집고 흘러내리는 수돗물 같이 언니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그러더니 오랜 세월 동안 처박혀 있다가 가까스로 시동이 걸려 덜컹덜컹 대는 기계처럼 언니의 어깨가 요동쳤다. 그리고 울었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언니는 떡국을 먹지 않고 새벽송을 부르러 출발하기 전에 홀로 교회를 빠져나갔다. 2천 년 전 만인의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 그를 감싸 안았던 동정녀 마리아의 출산, 이들에게 경배하기 위해 오직 별을 따라서 온 박사들과 목자들. 이 모든 것을 운행하신 그분. 언니는 그분이라면 응당 이루실 기적을, 아기 예수께 동정녀 어머니를 주셨던 그 도저히 벌일 수 없는 행적을 이루실 믿음을 그분께 바라고 그분께 드린 거였겠다.
새로운 날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뜻처럼 하늘에서 포근하고 가벼운 것들이 나려 밤새 세상을 덮고 지난 6개월을 없던 시간처럼 덮어버리는 동안 그저 눈을 붙였다가 다시 떼면, 자취를 감추었던 엄마가 자기의 눈앞에 와 있기를 언니는 숨 죽여 간절히 바란 거였겠다. 구세주가 나신 기쁜 소식을 알리며 울려 퍼진 1993년 12월 25일의 새벽송이 열여섯 살 언니의 입술에서도 터지기를 기도한 거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