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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라봉 Sep 09. 2019

유럽에서도 회사가 쫓아왔다

휴직하고 여행을 떠난 이유-1


휴직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 까지는 모두 좋았다. 하지만 나를 떠나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들.


 - 다시 돌아갔을 때 내 자리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더라도,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오래도록 했던 일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력, 고과, 진급 등 나를 옭아매는 것을 뒤로 미루선택한 휴직기에  정도는 감수해야 다.






휴직하고 여행을 떠 솔직한 이유는, 결혼을 준비하 '더 이상 마음껏 무언가 하지 못하는 시기'에 진입했다는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 조금 다르게 살고 싶. 다르게 생각해보면, 회사가 너무 싫어서 도망친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한달살기 여행을 떠나는 우리 부부를 보면 다들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만큼 쌓인 대출을 보면, 대출받아 여행을 떠난 것과 다름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휴직하고 여행 간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니라 객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직하 다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뿐. 


그런데도 왜 이런 '한심한' 선택을 했냐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극단적인 말 같겠지만, 하루하루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저녁이 되면 다가올 다음날이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럴 거면 죽고 싶은' 날이 늘어났다.

회사에 진절머리가 났다.  수 없는 화가 넘실 거리기도 했고, 끝없는 우울감도 찾아왔다. 당장 멈추고 휴식을 가져야 했다. 결국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멈추는 것이 나중에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7년 전 나의 꿈은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여우 되기'였다.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고, 하고 싶은 말을 센스 있게 하면서도 관계를 망치지 않는. 상처 받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몰라도 아는 사람인 척, 작은 것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만큼 처음 하는 회사생활이 고단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나도 어려움은 오히려 단계적으로 진화되어 찾아왔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열정은 늘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의 내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귀찮다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마트 가는 것도 귀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찮은 게 아니라 휴식이 필요해, 라는 징조였다.

화분도 관리가 필요한 것 같으면 '수세회복 관리 중'이라고 팻말을 붙여 고 볕이 좋은 곳에서 회복시킨다. 하물며 사람이라고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주말이고 평일이고 상관없이 출근을 했는데, 법적 근로시간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주말 출근이 훅 줄었다. 그런 축복 같은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먹고 나면 마음속은 어느새 불안함이 가득했다.

'월요일이 오고 있어...'

인생 통틀어 이 문장 하나가 마음에 새겨진 느낌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섭지? 싶으면서도, 일요일 저녁도 아니고 일요일 아침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부터 달달 떨었다.


그래서 휴직하고 여행을 하면서 좀 괜찮아졌느냐고? 당연히 이전처럼 죽고 싶은 날도, 달달 떠는 밤도 사라졌다. 하지만 종종 회사를 생각했다. 그 주제는 떨칠 수 없었다.

월요병은 훨씬 완화된 다른 증후군으로 찾아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게 무서워'라는 생각로.

여행을 하며 평화로움과 행복함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찾아왔지만, 여전히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먹먹다.


회사생활을 대충 할 자신이 없다. 돌아간다면 또다시 나를 갈아 넣을 것처럼 일하게 되겠지.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반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실이 제일 무섭다.

눈에 보여야 할 실적, 끊임없이 추가되는 새로운 프로젝트, 경쟁, 은근한 정치, 자격증, 영어 성적... 그 안에서 새까매지는 속.

일을 할 때는 일 자체에 퐁당 빠다. 가끔 재밌다고 느낄 때도 었다. 몰입하는 세계 자체가 좋다. 하지만 그 세계가 좋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환경이나 조직까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조직과 무관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회사 안에 있는 나는 종종 이기적인 모습을 했다.

동료가 늦은 퇴근을 해도, 그 이유가 내 퇴근 시간에 영향을 줄까 몸을 사렸다.

어느 회사나 그러겠지만,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더라도 업무 넘어오곤 했다. '이건 제 담당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가 미운털도 박히고 결국 그 업무도 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납기 내에 처리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은 보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떠넘겨진 업무를 받으면 퇴근시간은 1-2시간쯤 또 뒤로 밀렸다.   경험하고는 '그래도 네가 여유 있잖아'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 것 아닌 업무로 야근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여유 없는 척 연기를 하게 되었다.


나와 동료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고과 시즌이 되면 누군가의 업적 깎아내려졌다. 또 다른 이의 업적에는 의미를 보탰다. 가끔 그 과정은 실적의 규모와 상관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동료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에 편승하여 나 또한 동료보다 내 실적이 낫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속으로는 그가 한 업무를 평가하고 재단했다. 숨 쉬듯이 계산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곤 했다. 그런 나를 인식할 때면 스스로가 한심다. 예의 바르고 정중한 정도면 충분할 텐데. 다른 사람의 비위는 잘 맞추려고 하면서 왜 스스로의 비위는 맞추고 있지 않은지... 그런 내가 싫었다.

그리고 복직하다시 그렇게 될 나를 마주하는 것이 싫다. 그런 나를 보는 게 고통스럽다.

다시 '회사에서 나의 위치란 어디일까,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최선을 다하는 게 늘 맞는 것인가'라는 고민의 굴레에 있게 되겠지.


'이토록 뜨거운 스물아홉'이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 사람들은 즐거운데 나는 항상 가장자리만 밟고 다니는 것 같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즐겁다. 버스는 자꾸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여전히 어디서 내릴지 결정하지 못했다."

나의 회사생활은 이 문장에 멈춰있는 느낌이다.


유럽에 있는 지금도 힘들다는 후배의 연락이 온다. 힘들다는 간부의 연락도 온다. 간혹 카톡으로 업무를 처리할 방향을 의논하기도 한다. 한걸음 떨어져서 회사와 나를 보니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결국 돌아갈 시간은 올 테고 열쇠를 찾는 건 내 몫이다. 떨칠 수 없는 회사 생각이라면 받아들이고, 마음을 바꾸든 둘러싼 환경을 바꾸든 적극적으로 인정해야겠다. 아직 방법은 모르겠다. 적어도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섭지 고 싶다. 


 

사람의 마음은 자석과 같아서 생각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다.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렇게 하면 그대로 이룰 것이다.

- '사색의 향기, 아침을 열다' 중에서 -

 



프라하 한달살기 + 크로아티아 한달살기 = 총 두 달의 한달살기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이외수 작가의 '사랑외전' 책에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빈말할 거면 언제 한번 같이 직장이나 때려치우자는 인사는 어떠냐는 글을 봤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인사를 드린다.
(취준생과 비직장인을 제외하고)
언제 한번 직장이나 때려치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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