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기 위해 휴직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인간은 고통스러워진다

by 한라봉


그렇게 살아남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지금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버티고 있는 걸까.


괴로움의 이유는 실패가 아니었다.

열심히 살지 않을 때, 아니,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인간은 고통스러워진다.


여기서 말하는 '열심히'는 단순히 성실함이 아니다.

치열함, 의지, 갈망, 살아있다는 증거 같은 것들.

그것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너무 늦게야 알아차렸다.



부서 이동이라는 타협

결정된 지방 발령을 피하기 위해 부서 옮겼다.

커리어를 위해 이직 고민했지만, 순간 회사 어린이집을 포기해야 한다는 벽이 앞에 놓였다.

이미 세 번나 어린이집을 옮긴 아이를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고 싶지 않았다.


겨우 '양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냈는데. 글픔이 밀려왔다.

결국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길은 '현재 근무 지역을 유지할 수 있는 부서로 직무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했다.


원하는 인사발령을 얻어내는 일은 또 다른 치열한 싸움이었다. 잠시 승리자의 안도감이 스쳤지만, 그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의미를 잃어가는 자리

새로운 부서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워라밸이 상위권이었고, 업무 강도도 낮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업무 스킬도, 전문성도 필요 없었다.

팀장의 기분만 맞추면 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업무가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읽는 일로 채워졌다.


그때 의문이 들었다.

"이게 정말 살아있는 걸까?"

점점 사는 게 공허해졌다.




고갈의 소리

삶은 유한하다.

그런데 나는 매일을 연명하고 있었다.

단순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 단지 버틴다는 것이 본질일까?


커피를 마실 여유는 있었지만, 속에서는 갈증이 깊어졌다. 그건 목마름이 아니라 열정과 의지가, 깨진 독처럼 흘러나가는 소리였다.


거의 다 고갈되고 나서야 알았다.

이건 사는 게 아니라

조용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걸.




이유를 찾는 시간

산다는 건, 그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유 없이 사는 건 산 송장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한다.

내 열정, 내 몰입, 살아있다는 감각을.

더 이상 회사가 아닌, 나라는 사람 안에서.


그렇게 휴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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