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위어스’의 코파운더 7명이 대학 경영학 동아리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상금 500만 원으로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같은 대학에 다니진 않았지만 우연히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아 고용된 첫 직원이 바로 우진이었다.
그러다 서비스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개편을 하는 동안 우진은 퇴사 후에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자취를 하던 우진에게는 월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당시 위어스의 코파운더들은 우진의 퇴사를 많이 아쉬워했다. 다들 그의 건투를 빌었지만 힘들 때 팀을 떠난 우진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순 없었을 테다.
그해 우진은 작은 웹 에어진시에 들어갔고 3년을 다녔다. 그 메시지를 본 건 4년 차가 막 되어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하나둘 혼자 맡아 처리하게 됐을 무렵이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성장하고 있다기 보단 버틴다는 감각이 더 컸다.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우진이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대표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숨 좀 돌리라고 말했지만, 에이전시에서는 시간이 곧 매출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이닥쳤고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어느 순간에는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았다.
우진은 어느새 ‘이 회사에 꽤 오래 있었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들은 기능적으로 더 뛰어난 디자이너 선배들을 보며 박봉에도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우진처럼 4년 차가 되면 깨닫게 될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게 꼭 풍족한 삶을 보장하지 않고 거북목과 어깨결림, 편두통을 동반하기나 할 것이라는 것을.
밤늦게 사무실을 나서면서 늦게까지 일하는 신입사원들 사이를 지날 때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리더들은 영업을 한다면서 매일 미팅을 잡아 나갔지만, 실제로 회사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대표와의 관계에 의해 자연스레 정해진 것들이었다. 도대체 리더들은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그리고 우진은 본인의 미래가 결국 그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대학생들에게 최저시급 정도의 연봉을 주고 열심히 굴려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시스템에 어느새 열심히 기여하는 허리라인 디자이너였다. 우진은 이 열정 착취의 시스템에 시간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난 여기 왜 있지?’ 그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 올다.
집에 돌아오면 원룸 창문틀 아래쪽으로 곰팡이가 조금씩 자라 있었다. 안과 밖의 온도차 때문에 계속 습기가 생기는 곳이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들이쳤고 닫으면 눅눅해졌다. 냉장고엔 오늘 아침으로 먹은 삼각김밥에 1:1으로 딸려온 증정용 삼각김밥 하나뿐이었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무언가 디자인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스스로 디자인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엔 매달 비슷한 숫자가 찍혔다 사라졌고, 월세 계약 만료까지 이제 두 달. 한때는 서른이 되면 욕조가 있는 집에서 살 줄 알았다. 퇴근하면 반신욕을 하면서 맥주 한 캔쯤 마실 여유가 있을 거라고. 우진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연봉 3,600만 원. 세금과 4대 보험, 월세, 교통비, 식비를 빼면 남는 건 거의 없었다. 한때는 ‘연봉은 경력과 실력을 쌓으면 자연스레 올라간다’고 믿었지만, 이젠 그게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안다. 우진은 이 구조 안에서는 뭔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신분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평생 이렇게 가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SNS 피드에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대학 동기였던 민수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Exit complete!” 짧은 문장과 회사 로고가 보이는 라운지에서 벌이는 축하 파티 사진이 보였다. 민수가 음식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배달 서비스가 조 단위 금액으로 해외 기업에 매각됐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다시 회사명을 검색을 해보니 이미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그야말로 난리였다. 대체로 직원들이 받게 되는 보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톡옵션으로 근속기간 4년 차 이상은 수억 대 보상이 예상됨’이라는 문장이 우진의 눈을 찌르듯이 박혔다.
우진은 사진 속 민수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예전엔 자신이 더 감각적이고 더 앞서 있다고 믿었었다. 디자인과에서는 기수별로 선배들이 ‘걔 디자인 좀 한다’고 말하는 새내기들이 있었다. 우진은 동기들 중에서도 디자인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민수는 평범했다. 개인 작업을 하면 주로 쉬운 길만 선택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런 민수가 최소 10억 이상의 주식 보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같은 과 같은 학번에 같은 출발선이었고 심지어 우진은 더 잘했고 더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수는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것이다. 민수의 웃음은 화면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진의 귓가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들은 적 없는 민수의 말이 우진의 몸 어딘가에 깊숙이 박히는 것 같았다. 핸드폰 화면을 꺼도 그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었다. 부러움, 후회, 질투보다 더 큰 건 공포였다.
‘나만 이렇게 남는 걸까?’
그때 우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정우진 님을 위한 맞춤 포지션 안내] 100억대 투자받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Product Designer(프로덕트디자이너)를 찾고 있어요! 지금 지원만 해도 500만 원 당첨의 기회를 드려요.”
스타트업 위주로 채용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일부 기업과 제휴해 인재 영입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500만 원이라는 큰 경품에 홀린 듯 메시지를 누르자 우진의 폰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채용 플랫폼 앱으로 연결됐다. 몇 초간의 로딩이 끝나고 나타난 채용 페이지에는 익숙한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위어스였다.
며칠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위어스, 미국 VC로부터 100억 대 시리즈 B 투자 유치’, ‘2030 개발자들이 뽑은 가장 일하고 싶은 스타트업’ 기사에 들어간 로고와 색상, 구성 하나하나가 우진이 초창기에 만들던 프로토타입의 잔향 같았다.
우진은 여전히 프로토타입에 머물러 있는데 친구들이 자신만 두고 멀리 날아가 버리는 장면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도 생겼다.
기사에서 위어스는 혜성처럼 등장해 빠르게 성장하면서 막 시리즈 B 투자를 100억대의 규모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로켓’ 스타트업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위어스는 수공예품처럼 소규모 생산자들이 만드는 유니크한 물건을 소비자와 이어주는 커머스 형태의 모바일 서비스였다.
오프라인 플리마켓을 모바일로 옮겨 오면서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만들어냈고 누구나 판매자가 되어 매출을 낼 수 있는 생태계가 구성되면서 상품이 다양해졌고, 자연스레 거래량도 늘어나는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한 아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셀러들이 만들어내는 물건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상품으로 채워진 서비스 화면은 그 어느 커머스 앱과도 다르게 보였다.
우진은 퇴사 이후 위어스의 소식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사는 게 바쁘기도 했고 코파운더들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지도 꽤 되었기 때문이다. 500만 원이라는 경품에 혹해서 위어스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직무에 지원하고서도 우진은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반 지원자와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바랐고, 또 본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코파운더들이 우진을 선뜻 받아들여줄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 4년 차 UX 디자이너인 우진에게 다른 기업의 제안도 있었지만, 어느 곳도 확신은 주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는 안내 메시지가 왔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탈락이었다. 500만 원 이벤트도 꽝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때 우진에게 문자 메시지가 한 통 왔다. 이미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었다. 공진성. 위어스의 대표였다. 현재의 위어스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진성은 우진에게 오피스에서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위어스는 서울역 근처 역세권의 공유오피스에 있었다. 진성이 마중 나와 오피스 투어를 해준다며 우진을 안내했다. 라운지에 들어서니 컬러풀한 소파로 꾸며진 넓은 휴게공간이 나오고 간단히 음료를 만들거나 조리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식탁이 있었다.
서울역이 내려다 보이는 통창을 바라보고 혼자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새 둥지 모앙의 1인용 흔들의자, 푹 파묻혀 눕다시피 쉴 수 있는 빈백소파,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다트머신, 라거맥주가 콸콸 나오는 탭비어머신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인테리어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위어스는 이 공유오피스 서울역점의 한 개 층을 다 쓰고 있었다. 1인실, 2-3인실 등 소규모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어스 직원들의 자리였다. 업무공간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회사인지 대학 동아리방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리되지 않은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후드티에 슬리퍼 차림으로 사무실을 서성이는 직원들도 보였다. 먹다 만 커피들이 쌓인 책상을 등지고 의자에 앉은 채로 회의를 진행하는 팀도 있었다.
그때 우진의 눈앞으로 하얀색 물체가 빠르게 지나갔다. 귀신인가? 알고 보니 하얀색 태권도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킥보드를 타고 책상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진이 당황한 듯 서 있으니 진성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기억하지? 기찬이. 지금은 그로쓰팀 리드를 맡고 있어. 오늘 빨래를 돌리고 와서 입을 옷이 없어서 태권도복을 입고 출근했나 보네. 쟨 원래 좀 그렇잖아.”
최근 스카우트된 C레벨 리더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고, 오피스 공간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모두가 각자 1인분의 일을, 아니 그보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매출을 만들고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시 라운지로 돌아와 소파에 자리를 잡자 진성이 커피를 내려와 권하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네 지원서 되게 좋았거든. 포트폴리오도 인상적이었고 내 생각엔 지금 우리 서비스에 너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해. 근데 내가 아는 사람을 굳이 채용 플랫폼에 수수료 떼어주면서 채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따로 보자고 한 거야.”
우진은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채용 프로세스가 유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도 이제 80명 가까이 직원이 늘어났다고 들었는데 대표가 직접 사람을 뽑기도 하는구나. 우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경청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진성이 덧붙였다.
“우선 네가 지원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우리 회사에 합류해 줬으면 좋겠어. 같이 일했던 코파운더들이 지금 다 리드급이 되어 있어서 조금 어색할 수도 있어. 우진이 네가 하는 만큼 대우해 줄 생각이야. 넌 위어스 초창기 경험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친구들 밑에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또 못 할 일도 아니다. 실력만 있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생각을 하며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은 우진이 고민하는 듯해 보였는지 말을 이어갔다.
“우진아,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지금 로켓이야. 세계적인 VC한테 투자받아서 총알도 엄청 많고. 로켓에 올라탈 때는 자리를 따지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 이제 문 닫으면 너 못 타. 하하. 위어스는 앞으로 5년 내에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게 목표야. 지금은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벌써 미국 오피스도 직원을 채용하고 있어. 너한텐 당연히 스톡옵션도 줄 거고 위어스 상장하면 평생 월급 모아서는 만질 수 없는 금액이 될 거야.”
우진은 그 자리에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위어스는 이미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정식 루트가 아니라 대표의 인맥으로 들어간다는 게 조금은 걸렸지만 뭐, 로켓에 올라탈 때 그런 거 가리는 거 아니라고 하니. ‘되는 게임’에 합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확실히 ‘이건 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우진은 로켓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우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우진은 오늘 진성을 만났던 공유 오피스 라운지에서 위어스의 미국 증시 상장 기념 파티에 참석했다. 셀카를 찍어 SNS에 공유했다. “Exit complete!”
그때까지만 해도 우진은 몰랐다. 로켓은 멀리서 보면 흔들림 없이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난 진동과 압력을 견뎌야 한다는 것, 자동차는 기름이 닳으면 멈춰 설뿐이지만 로켓은 수직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을. 무사 귀환해 젓가락에 걸쳐지는 로켓은 스페이스 X가 만든 로켓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