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노세키의 도요코인에서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도요코인은 조식 뷔페가 공짜인데, 메뉴는 점포에 따라 차이가 있다. 먹을 만하게 나오는 곳도 있고, 부실한 곳도 있다. 이치노세키는 후자였다...
체크아웃하기 전 찍은 도요코인
그런데 여행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태풍 5호가 이와테에 온다는 것이다.
비가 본격적으로 오거나 전철이 멈추게 되면 큰일이다. 일정을 변경해 체크아웃한 직후에 서둘러 모리오카盛岡로 향했다.
이치노세키역에 있는 히라이즈미 산책 루트 설명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히라이즈미(平泉)가 이치노세키 근처에 있다. 히라이즈미는 황금으로 된 주손지가 유명하다. 일설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을 황금의 나라 지팡구로 묘사한 이유는 주손지에 대한 소문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히라이즈미를 비롯한 이와테(岩手)현 각지도 여행해 보고 싶다.
이치노세키역에서 산 맥주와 육포
전철을 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와 육포를 샀다. 어제 황급히 전철을 갈아탔던 센다이는 규탄(우설)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제 못 먹은 규탄을 육포로라도 먹어보고자 샀다. 모리오카행 전철은 10시 15분에 출발해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서 졸다 보니 모리오카에 도착했다.
모리오카는 이와테현의 현청소재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싶었는데 오늘 불꽃놀이가 있다고 한다.
모리오카역의 부대시설로 페잔(フェザン)이라는 백화점이 있어서 사람이 많이 몰린다. 여기에 사와야(さわや)서점이라는 서점이 있다. 사와야서점은 이와테현과 아오모리현에 십여 개의 점포가 있는 지방 서점인데, 사와야서점 페잔점은 어느 판촉 마케팅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사와야서점 페잔점. 이와테 출신의 시인 미야자와 겐지와 관련된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2016년 사와야서점 페잔점에서 어느 문고판 책의 표지를 숨기고 "문고 X"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판촉 행사를 했다. 당시 이 판촉 행사를 기획한 직원은 60권을 주문하고 30권이나 팔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입소문을 타면서 페잔점에서만 6개월간 약 6000권이 팔렸다. 문고 X가 TV에 소개되면서 전국의 다른 서점들에도 확산되었고, 3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방의 작은 서점이 전국적 베스트셀러를 만든 것이다.
사와야서점에서 산 책들
6개월이 지나 공개된 문고 X의 정체는 시미즈 기요시(清水潔)의 논픽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殺人犯はそこにいる)>였다. 방송국 기자인 저자가 군마현과 도치기현에서 발생한 여아 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과정이 그려진 책이다. 이 중 한 사건은 스가야(菅家)라는 사람이 범인이 검거되어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취재를 통해 DNA 감정과 정황증거에 의문을 제기했고, 재감정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 결과 DNA가 일치하지 않았음이 밝혀지면서, 1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스가야 씨는 풀려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나 역시 스가야가 풀려난 2009년 당시에 뉴스로 접한 기억이 난다. 그 이면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일본어로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 정도로 흡인력 있는 논픽션이다. 한국에도 번역돼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모리오카는 모리오카냉면이 유명하다. 그런데 모리오카냉면은 수박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아니, 수박이라니... 냉면에 수박이라니... 모리오카냉면은 한번 먹어보고 싶긴 한데 수박의 임팩트가 강해서 도전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녁은 페잔의 무라하치(むら八)라는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소스가 아니라 소금을 뿌려 먹는 게 특이했다. 지나치게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사실 모리오카에서 박물관도 가고 시내 관광도 하고 싶었지만, 태풍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서점에서 책만 사고 호텔로 직행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태풍 때문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반팔만 입기에는 추웠다. 모리오카의 위도는 북위 39도. 삼팔선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