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 도쿄의 최고기온 35도, 최저기온 28도. 단순히 기온만 높은 게 아니라 습도도 높은 데다가 열섬현상까지 겹치면서 한여름의 도쿄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야외에 5분 이상 나가 있으면 쪄 죽을 것 같은 날씨다.
마침 8월 중순은 일본은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お盆) 연휴라서 학교도 문을 닫기에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는 일본 최북단의 땅, 홋카이도.
11시 40분, 신주쿠에서 우쓰노미야(宇都宮)행 전철을 탔다. 그런데 전철 안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오봉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가? 신주쿠에서 출발한 지 30분이 지난 오미야(大宮)에서야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보통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에서는 당연히 책과 함께. 서너 권의 책을 챙겼는데, 평소에는 대학원 공부 때문에 미뤄뒀던 책들을 골랐다. 첫 번째로 읽기 시작한 책은 <일본인은 탈원전을 할 수 있는가(日本人は脱原発ができるのか)>라는 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은 이듬해인 2012년에 출간된 책인데, 이 책에서는 일본인은 탈원전이 불가능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일본인은 과거를 반성하는 대신 잊기 십상이고, 탈원전을 주장하는 혁신세력이 독선적인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저자의 예측이 맞았다. 한때 기세가 좋았던 탈원전 운동도 어느새 시들해지고, 원전 재가동이 이어지면서 탈원전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신주쿠에서 오미야를 거쳐 우쓰노미야로 가는 여정은 예전에 <초속 5센티미터> 속의 여정을 따라 떠났던 여정과 겹친다. 그때는 우쓰노미야에 도착하기 전 오야마에서 갈아탔지만, 이번에는 오후 1시 30분, 종점인 우쓰노미야에서 내렸다.
우쓰노미야는 도치기(栃木)현의 현청소재지로, 당분간 대도시라 할 수 있다. 우쓰노미야에 도착한 다음 구로이소(黒磯)행 전철로 갈아타고 1시간을 더 갔다.
구로이소역에 있는 도치기현의 캐릭터들
2시 40분, 구로이소 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나왔다. 나스시오바라(那須塩原)시 도서관이 있다. 나스시오바라 일대는 고지대에 있는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도서관 안에 카페도 있는데, 아이스크림을 끼얹은 도넛을 먹었다. 나스시오바라 일대는 낙농업으로도 유명해서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다음 전철이 오는 4시 17분까지는 시간이 있기에 도넛을 먹고 난 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나스시오바라시 도서관은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쾌적해서 책 읽을 맛이 났다.
신시라카와(新白河)행 전철을 타고 다시 여행을 재개했다. 신시라카와부터는 후쿠시마현이다. 도호쿠(東北)지방으로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시라카와 이북은 산 하나에 백문(白河以北一山百文)"이라는 말이 있었다. 산 하나가 백문의 가치밖에 없을 정도로 도호쿠 지방은 낙후된 곳이라는 뜻이다.
시라카와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고오리야마(郡山)에 도착했다. 고오리야마는 후쿠시마현 남부의 중심 도시다. 고오리야마에서는 배가 고파서 내려서 저녁을 먹었다. 역 푸드코트에 '동대문'이라는 한국 음식점이 있었다.
돌솥비빔밥과 냉면을 시켰는데, 면이 메밀이 아니라 밀가루인 듯. 이래서 내가 일본에서 한국 음식을 잘 안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가는 길을 검색했더니 첫날의 목적지인 이치노세키(一関)에는 10시 지나서 막차로 도착할 예정이다. 출발 시간이 너무 늦었던 데다가 구로이소에서 내려서 도서관까지 들르는 바람에 일정이 상당히 촉박해졌다. 그제야 초조한 마음으로 18시 18분 후쿠시마행 전철을 탔다. 고오리야마를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 밖으로 해가 지는 게 보였다.
후쿠시마에는 7시에 도착했다. 40분간 역에서 대기했다. 참고로 원전 사고가 일어난 곳은 후쿠시마현의 해안부이고, 후쿠시마현에서도 후쿠시마시나 고오리야마시는 안전하다.
7시 40분, 센다이행 전철을 탔다. 이제 전철을 두 번만 더 타면 된다. 그런데 전철이 연착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센다이에서는 갈아탈 시간이 몇 분 안 되는데 막차인 전철을 놓치면 오늘 호텔을 예약해 둔 이치노세키까지는 못 가는 것 아닌가?
9시 8분에 센다이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들고 계단으로 뛰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옆 플랫폼으로 갔더니 센다이행 전철이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전철을 놓치지 않아서 안심해도 되겠다 싶었다.
10시가 지난 뒤에는 피곤해서 책도 안 읽힌다. 10시 45분, 드디어 목적지인 이치노세키에 도착했다. 12시간 가까이 계속된 전철 여행 때문에 피곤했다.
이치노세키는 이와테(岩手)현의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다. 한국어로 발음하면 어감이 좀 묘한데, 일본어로 '세키'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사실 이번 여정에서 굳이 이치노세키에서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그저 하루만에 모리오카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고, 센다이에 숙소를 잡으려니 숙박비가 비싸서 그 사이에 있는 이치노세키에 머물게 된 것뿐이다.
머무를 숙소는 일본의 유명한 비즈니스 호텔 체인, 도요코인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호텔 퀄리티가 훌륭한, 가성비가 좋은 체인이라서 자주 애용하고 있다. 첫날은 12시간이나 전철을 탔기에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