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과 안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2017. 08. 08, 화요일 | 상트페테르부르크 1일째
성 베드로의 도시
새벽 다섯 시, 승무원의 잔잔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20분 남았습니다.”
낯선 도시의 어스름한 빛 속,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이후 상트)에 들어가는 기차 안은 차분하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시의 첫인상
기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여섯 시가 되지 않아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 건너 멀리 불이 켜진 카페를 발견해서 이동했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아늑해서 휴식을 취하며 계획을 세우기에 좋았다.
카우치서핑 어플에서 만나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호스트에게 답변이 왔다.
'약속했던 기간을 전부 재워드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틀정도 가능해요.'
이틀이 어딘가 현지에서 거주하는 주민의 집에서 생활을 간접 경험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이틀도 상관없습니다. 주소 알려주시면 퇴근하시는 시간에 맞춰서 가겠습니다.'
문자를 보낸 후 샌드위치 한입 배어물 었다. 갓 만든 느낌보다는 기성품을 제공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공복에 먹는 샌드위치와 커피는 맛있었다. 일정을 생각해서 움직이려면 행선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의 주소가 없기에 알려진 명소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구글맵을 열어 첫 번째 장소는 구 해군기지로 등록하고, 두 번째 장소는 겨울 궁전을 등록했다. 이후엔 핀란드행 버스 티켓을 교환하기 위해 상트에 위치한 영업소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잡히고, 휴대폰 충전도 마쳤으니 계산을 하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화창하고 선선해 기분이 좋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경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힘든 하루가 되리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호스트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구 해군 본부와 겨울 궁전을 향해 걸었다. 거리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보니 지금까지 봤던 러시아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도시엔 수로가 있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걸으며 스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길을 걷다 우연히 카잔 성당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소가 주는 힘이 느껴졌다. 성스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십자가 앞에 서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 믿음이 강해서는 아니다. 절실한 마음에서 드리는 기도였다. 어머니의 건강과 주변인들의 건강이 주된 내용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서 마그네틱을 보냈다.
... ... 빡!
구 해군 본부에 도착하니 오래된 탑 같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 작은 공원이 있었고, 한적하니 조용했다. 다만, 공원 안 벤치에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만 있었다. 나도 한적한 곳에 도착하니 잠시 쉬고 싶어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편이라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음으로 도착한 예르미타주 박물관(겨울 궁전)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행위 예술가들의 공연과 관광객을 위한 자전거도 있었다. 붉은 광장보다는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광장 구석 바닥에 앉아 기분 좋게 햇볕을 맞으며, 자유로운 풍경을 지켜보았다.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신세를 질 호스트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오늘은 운동을 가서 많이 늦을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문자를 보니 조금 황당했다. 벌써 두 번째가 아닌가... 처음부터 힘들다는 말을 했으면 끝났을 일인데... 도리와 약속의 문제였다. 심지어 호스트는 현지에 사는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더 실망이 컸다. 그래도 약속이 있었기에 일단은 참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시간과 주소를 알려주시면, 맞춰서 갈게요.'
답변을 보내고, 예매한 예매표를 티켓으로 교환하기 위해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은 광장에서 도보로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점심이 지나 허기가 졌지만, 일단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먹기로 마음먹고 걸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반이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 후 출력한 예매권을 티켓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사무실 직원에게 버스를 탑승하는 위치를 물어보니 사무실이 있는 터미널이 아닌 다른 지역을 알려주었다. 구글맵에 직원이 찾아준 터미널을 확인해 두기 위해 걸었다. 사무실에서 다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터미널이었다. 열심히 걸었다. 충전해 둔 예비 배터리를 전부 소비했다. 이제 휴대폰에 남은 40%가 전부였다. 이제부터 휴대전화 배터리를 아껴야 했다. 그래서 듣던 음악 재생을 정지했다. 러시아의 더위는 한국보다는 순했지만, 덥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백팩의 무게가 전투 군장정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와 탑승할 터미널로 향했다.
땀이 흐르는 만큼 짜증이 밀려왔다. 어느 정도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호스트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은 힘들다고 내일만 된다는 문자였다.
'됐습니다. 돈이 없어서 신청한 것도 아니고 경험을 하려고 했던 신청인데... 응하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확실히 거절하시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그럼 더운 날 무거운 백팩을 메고 걸을 필요도 없었어요. 그렇게 살지 맙시다. 어설픈 친절은 안 하니만 못합니다. 그냥 안 갈게요.'
가던 길을 멈추고 문자를 보낸 후 숙박 어플을 열어 숙소를 찾았다. 핀란드로 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 날짜를 입력하고, 금액을 설정하고 검색을 진행했다. 맘에 드는 숙소를 골라 바로 예약을 했고, 주소를 복사해 구글에 붙여 넣었다. 터미널을 경유해서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았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1시간 30분 거리였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주변을 체크했다. 이제 숙소로 가면 급한 일은 모두 정리를 마친다.
터미널에서 시간을 보니 3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 예정 시간은 4시 반 배가 고팠지만, 도착해서 먹는 걸로 정하고 빠르게 걸었다. 휴대폰 배터리도 점점 줄어 20%가 되어가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걸어 숙소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걸어 배터리가 5%남짓 남았을 때 근처에 도착을 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전화를 걸어 숙소 호스트와 통화를 하던 중 배터리가 없어서 전화가 끊어졌다. 절망적이다. 근처에서 찾지를 못해 한참 돌았는데, 배터리까지 동이 났다. 일단, 벽에 붙어 주저앉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5분 즈음되었을까? 철문 소리가 들렸고, 100m 남짓 거리에서 어떤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나에게 물었다.
'켄?'
'예. 맞아요.'
'여기로 와'
그는 통화 중 전화가 끊어져 확인차 나왔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안도하며, 안내하는 침대에 짐을 풀었다. 다행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작은 짜증이었지만, 상트에서 머무를 숙소의 호스트로 인해 조금은 상쇄되는 느낌이 들었다. 상트에서 처음으로 좋은 일이 생겼던 것이다. 일단, 짐 정리를 마치고, 샤워로 땀을 식혔다. 이제 땀도 식혔으니 숙소 앞 마켓에서 저녁거리와 아침에 먹을 음식을 구매했다. 물론, 맥주는 패스브였다.
해 뜬 밤의 위로, 그리고 내일을 위한 휴식
마켓에서 구매한 베이컨과 계란으로 저녁을 만들고, 숙소에 있던 식빵을 토스트기로 구워 쨈을 발랐다. 큰 맥주 한 캔을 따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종일 걷다 먹는 두 번째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오늘은 쓰디쓴 경험을 한 날이다. 그래서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플을 삭제했다. 저녁 8시가 넘어도 해는 중천이었다. 종일 걸어서인지 피곤했던 나는 중천에 떠있던 해를 뒤로 하고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아휴... 힘든 하루였어.
여행의 한 조각을 기록한 이 글은,
어려움과 실망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려는 마음의 흔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그 아픔 속에 우리 모두가 찾고자 하는 진짜 여정의 의미가 숨어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여행에서 쓰디쓴 경험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