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너머, 낯선 풍경 #26

심플함이 머무는 도시, 스톡홀름

by Gnoy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 스톡홀름 2일째


늦은 아침, 가벼운 출발


오늘도 아점을 챙겨 먹고, 11시가 조금 넘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목적지가 있었다. 스톡홀름 왕궁과 (구) 시가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지도상으로는 두 시간 남짓한 거리였고, 두 시간쯤 걷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8월의 스톡홈름 공기는 걷는 이를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길 위에 눌러앉는다. 걷는 맛이 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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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104.jpg 거리의 풍경


왕궁의 첫인상


스톡홀름 왕궁은 심플했다. 역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나라다웠다. 러시아와는 상반되는 건축물이었다. 화려한 조각이나 금박 장식 없이 담백한 외벽을 가지고 있었다.

담백한 외벽을 가진 궁전 앞에 서자 많은 잡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 스칸디나비아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삶의 태도 자체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심플함을 추구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스웨덴의 선조들의 삶의 양식을 차용해 형태를 갖춘 디자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과장과 장식이 사라진 건물에서 오히려 묵직한 기품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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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으로 가는 풍경


길 위의 작은 기록


왕궁을 둘러보고 길을 따라 (구) 시가지로 접어들었다. 사실 이곳이 (구) 시가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주변 건물과 골목에서 풍기는 기운이 그랬다. 좁은 골목을 걷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그네틱 코너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하나를 구매했다.

마그네틱은 이번 여행의 작은 증표였다. 도착한 도시에서 하나씩 구매를 하다 보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마그네틱을 찾게 되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마그네틱의 개수만큼 나의 발자취가 쌓인다.

구매한 마그네틱을 발송하기 위해 우체국 대행업체에 들러 한국으로 우편물을 보냈다. 철로 된 물건이라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그래도 자석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나는 왜 마그네틱을 조금씩 한국으로 보냈을까?
돈 없어서 걸어 다니는 주제에 굳이 우편을 발송했지? 생각보다는 저렴했지만, 저렴하지 않았던 기억인데... 참 나란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가방에 전자기기가 많으니 보호 차원이라는 어설픈 생각을 하며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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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내부




햇빛과 사람들


스칸센으로 향하는 길,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춰 바다를 보았다. 사실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 바다가 맞는 것 같다.

내 시선은 바다를 거쳐 잔디 위에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선탠 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잔디 위 블랭킷에서 과감하게 브라끈을 풀어 덜 구속된 상태로 태양의 따사로운 손길을 맞이하고 여성이었다.

‘참 대단하다’는 감탄과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스스로를 다잡았다. 나는 변태가 아니다는 생각과 경찰에게 잡힐 수 있다는 도덕적 관념들이 나를 정상 범주에 머무르게 도와주었다. 그 순간 셔터를 누르지 않았던, 선택이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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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설루트 뮤지엄(Museum of Spirits)


걷던 중 발견한 건물로 들어섰다. 이곳은 앱설루트 보드카를 주제로 한 유화 작품, 화려한 의상, 보드카 증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보드카의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는 공간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잔뜩 취하지 않고도 술보드카를 의 음미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시를 보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바다 앞 거리에 트래프트 맥주를 파는 가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잘했다, 나중에 더 맛나게 마시자.”

하루에 한잔 다른 맥주를 마시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곳의 맥주는 당기지 않았던 것 같다. 돈 아끼며 마셔야 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DSC02278.jpg 뮤지엄 앞 드래프트 비어 가판


도시의 결, 사람의 얼굴


스칸센은 무엇인지 모르고 출발했다. 그냥 무료 관광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말이다. 도착해서 보니 스칸센은 야외 박물관과 동물원이 있었다. 동물원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두 시간 남짓 걸어서 도착한 이곳의 입장을 고민 끝에 포기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안쓰럽기도 하고, 입장료를 지불할 만큼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서였다. 다시 돌아가기 전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충분한 휴식 후 왔던 길을 다시 걸어서 내려갔다. 물론 그냥 같은 길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경로를 찾아 이동했다. 그러다 작은 요트 창고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요트가 전시되어 있었고, 요트의 종류와 제작 과정을 그림과 사진 그리고 문자로 남겨놓았다. 뜻밖에 작은 전시 공간이었다.

작은 공간이라 빨리 둘러보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 시내에 도착했다. 어제 들렸던 기차역과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이곳엔 명동과 홍대를 닮은 거리가 있었다. 젊은이들의 활기와 소음, 상점의 간판들이 모여 작은 축제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인물 스냅숏을 찍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표정 하나가 도시의 공기 전체를 설명해 주는 순간이 있다.

길을 걷다 보인 'REMAKE'라는 상점에서 내 취향의 옷을 팔고 있었다. 진열된 옷들은 일본의 유카타 스타일로 만들어져 있었고, 색감도 옷감의 질감도 내 스타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색과 디자인이 같은 두벌의 옷에 눈이 갔다. 차이는 하프 코트와 롱 코트라는 차이가 있었다. 단, 가격이 비싸 고민을 해야 했다. 한참 고민을 했다. 사장과 대화 후 내일 구매하러 올 때까지 두벌을 팔지 않고 보관하기로 결정해 주셨다. 인사를 하고 상점을 나오며, 남은 시간 고민에 빠졌다.

IMG_0946.JPG 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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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람들




귀가, 그리고 휴식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다. 저녁을 만들고,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설거지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려 소파에 앉아있다. 1시간 남짓 잠이 들었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걷기와 사람 관찰로 채워진 하루였다. 많이 걸어서인지 몸엔 자연스럽게 피곤이 녹아들어 있어고, 대장내시경할 때 수며 가스를 마시듯 빠르게 잠으로 이어졌다.

평소에도 잠을 잘 자는 편인데, 여행을 하며 많이 걸으니 불면증은 없는 단어가 되었다. 그래서 일기는 하루가 끝난 자리에서 쓰기보다 여유 있는 시간에 차곡차곡 기록으로 옮기고 있다.

IMG_0818.JPG 저녁에 대충 만든 파마산 파스타


여행지에서 당신은 ‘찍지 않은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때로는 셔터를 누르지 않는 선택이 더 깊은 장면을 남기지 않나요?




여행 팁 & 경비

• 콜라 : 23 SEK (0.3 시티은행 카드)

• 물 : 23 SEK (0.3 시티은행 카드)

• 마그네틱 기념품 : 59 SEK (0.85 시티은행 카드)

• 우편 배송비 : 28 SEK (0.4 시티은행 카드)

• 맥주(포터 3.5 흑맥) : 16 SEK (0.3 시티은행 카드)

• 우유 : 12 SEK (0.3 시티은행 카드)


총합: 161 S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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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154.jpg 근무 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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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내부의 사람들



* 개천절과 추석입니다. 긴 연휴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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