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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May 17. 2016

오늘 하루가 길었다.

생각이 잠시 방향을 잃고 현기증이 난다.

하는 짓마다 어이없고 한심한 날이다.


곤히 자는 사람한테 도움도 못 청하고 고기를 와인에 재어놓고 싶긴 해서 한 번도 성공해본 적 없는 일을 또 손에 쥐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참 씨름을 하다가 드디어 콜크를 뽑아내긴 했는데 참 우왁스럽게도 산산히 분해를 시켜 놓았다.


마침,  강화에 사는 친구랑 안부를 주고 받다가 여태 와인하나 못 따냐고 실컷 지청구를 먹고, 그 값으로 전동 와인오프너를 선물로 얻었다.


어쨌든 와인에 스테이크용 고기를 재어놓고 허브가루를 뿌려놓을 수 있어 다행긴 했다.


오후엔 생전 그래  적 없더니 깜빡하고 언니 생일을 하루 지난 후에야 생각해낸 죗값을 치르느라 엄마랑 늦은 생일파티를 해주고 오면서 그래도 한쪽 어딘가가 내내 미안스럽기만 했다.


내 배가 부르니 식구들도 각자 밖에서 먹고 들어왔으면 하는데 친구한테서 지나는 길에 근처있다고 전화왔다. 장도 볼 겸 질끈 고무줄로 머리만 묶고 나갔다. 결국엔 애들 아빠랑 더는 못 살고 헤어지게 됐다는 그간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둘러 장을 보면서도 내내 머릿속에선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이 곤두선 밥알처럼 쉽게 삼켜지지 않고 소화가 안된 채 뻑뻑했다.


자꾸만 골똘히 생각하다가 카트를 그대로 주차장에 남겨둔채 집앞도착해서야 빈손인걸 알았다.


잠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장은 새로 봐야 하니 이미 없어졌다 포기하고 가보자 했는데, 덩그러니 장애인 주차장 한쪽으로 밀려난 채 오갈 때 없이 고아가 되버린 카트어쩔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있었다.


웬일인지..

다행이란 생각도,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뭔가 내 안에서 가만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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