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이터한 Nov 25. 2017

#2 <이번 생은 처음이라> (上)

'또라이'들의 결혼


  #2 <이번 생은 처음이라> (上)

   '또라이'들의 결혼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바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 처음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이 드라마, 되게 이상하고 특이한데 재밌다’ 던 엄마의 짧고 굵은 한줄평과 그때 엄마의 흡족한 시선이 향하고 있던 텔레비전 화면 속 <이번 생은 처음이라> 3회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를 섭렵해오고 있는 우리 엄마는 드라마에 대한 의리와 취향이 검증되어 있는 분으로, 엄마가 이렇게 추천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좋은 드라마라는 사실이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었다. 엄마가 자신 있게 보여준 3회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그랬듯, 내 마음을 손쉽게 사로잡았다.


(4회에서 이 장면이 이어지므로, 그 장면들을 이어 완성된 대화를 실었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3화


이 장면은 드라마 속에서 종종 극적이고 로맨틱한 장면이 연출되곤 하는 장소인, 버스 터미널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전개 혹은 인물의 대사가 여느 드라마와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된다. 여자 주인공 지호는 황급히 뛰어가 남자 주인공 세희를 붙잡는다. 그리곤 그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지호 : 지금 (버스 기사) 아저씨가 화나셔서 오래 못 기다리거든요? 빨리 대답해 주셔야 돼요.

세희 :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며) ...네.

지호 : 저랑, 결혼하실래요?

세희 : (살짝 놀란 기색)

지호 : 저, 빨리요! (버스를 가리키며) 기다리고 계셔서.

세희 : (빠르게 고민을 끝내고 작게 끄덕이며) 네.

지호 : (활짝 웃으며) 그럼 제가 짐부터 빨리 뺄게요!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나셔 가지고..!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3화


세희 : (뛰어가는 지호에게 소리친다) 저기...! 그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지호 : (버스 앞까지 뛰어간 후, 먼발치에서 세희를 보고 소리친다) 네, 말씀하세요!

세희 : (소리친다) 혹시, 저를...! 좋아하십니까?

지호 :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듣자마자 바로 답한다) 아니요!!!


세희 : 짐 가지고 오세요. 들어가 있을게요.

지호 : (고개를 끄덕인다)

세희 :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을 보고 얼마나 벙쪘었는지.ㅎㅎㅎ 그들의 결혼은 이렇게 성사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둘 사이에 일반적인 친밀감은 1도 없어 보인다. 저 대사를 좀 보라. "짐 가지고 오세요. 들어가 있을게요."라니. 조금의 이성적 호감이라도 있었더라면 짐 정도는 들어주러, 아니 짐을 들러 가는 그 짧은 길이라도 동행하는 게 일반적인 일일 텐데 말이다. 무려 조만간 결혼할 사람들이...! 쿨해도 너무 쿨하다. 이 주인공들은 무슨 일인지, 서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결심했고, 자신들의 그 결정에 상당히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확실히 보통의 프러포즈, 보통의 커플, 보통의 결혼과는 달랐다.


심지어 이 장면 이후에 이어진 지하철 장면도 평범하지가 않다. 그래, 처음엔 그나마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가기라고 했지. 그 이후의 장면도 일반적인 전개로 펼쳐지진 않는다. 지하철에 자리 하나가 생겼고, 세희는 나름 배려해 자리를 지호에게 양보했다. 그리곤 반대편 꽤 먼 거리에 자리가 하나 더 생기자, 세희는 바로 가서 그곳에 앉았고 휴대폰을 꺼내 그 안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들은 서로 결혼하기로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남남의 관계, 혹은 그나마 그보다는 예의와 배려, 약속이 살짝 더 겸비된 관계를 이어가고 있더랬다. 이렇게 평범한 듯 특이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드라마였다.





이 장면에 반해, 난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 매력이 배가 되는 것을 느끼며 엄마의 드라마 안목에 대한 신뢰감을 더 높일 수 있었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내가 지인에게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가 사회에서 직면하게 되는, 그러나 너무나 피하고 싶은 현실들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보고 나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한숨이 나오는 드라마인 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순탄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살짝 독특한 관점에서 펼쳐준다. 그 덕분에, 인생을 살다 갑자기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에 이 드라마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드라마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은 '병맛'스럽기도 하고 인물들의 가치관이 평범하진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아 쾌감을 느끼고,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동시에, 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어떤 부분이 그렇게 대단한지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를 살짝 정리해 보았다.



(1) 지호와 세희

역시 드라마의 첫 번째 매력 포인트는 우리의 주인공 지호와 세희다. 앞에서 소개한 대사는 그들에게서 받은 충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며 알게 된 두 사람은 생각보다 더 '또라이'스러운 면모들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이 단연 최고의 매력 포인트다.


아까 언급했던 대사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왜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친하지도 않으면서,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면서 결혼을 하려 하는가.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6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고 결혼의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를 모르는 사이인데도, 갑작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지호는 집을 구하기가 힘들고 머무를 곳이 필요해서, 세희는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월세가 필요해서 서로의 합의 하에 계약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드라마의 인물 설정과 초기 설정까지, 일반적으로는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설정이다.


(#1 <이번 생은 처음이라> (下)에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가십 걸> Gossip Girl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