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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Feb 24. 2018

#4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스포有)

I find you all around me


  #4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I find you all around me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 스포일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볼 때, 난 단 한 가지만을 말할 순 없다며 여러 작품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작품들 중 가장 먼저 언급하는 작품이 바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다. 내 첫 번째 인생 영화가 된 작품이다. 현실적이고 섬찟한 현실을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며 동화적인 판타지를 가미해 그려내는 방식이 내 취향과 너무나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극 속에서 잃지 않아야 할, 가장 소중한 ‘순수’에 대해서 끈질기게 말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나에게 너무나 완벽하다. 끝없이 슬프지만 너무 아름다워 벅차오르는 특유의 감동이 정말로 정말로 좋다.

이런 델 토로 감독이 만든 로맨스 영화라니! 8ㅅ8 개봉 첫날 이른 아침,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를 봤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너무나 좋아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퍼서,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너무나 행복해서 마구마구 벅차오르는 감정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노력하며 극장을 나왔다. 너무 좋아서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 <판의 미로> 이후 이 영화도 나에겐 정말 최고였다...♡ 저녁에 집에 가보니, 이럴 줄 알고 미리 주문해놓았던 (이 영화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 씨네21 잡지 1143호와 델 토로 감독이 쓴 책 <스트레인> 그리고 이 영화 포스터가 그려진 클리어 파일이 도착해 있었다. (알라딘 사은품이다.후후) 덕질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 마련되었다.ㅎㅎㅎ 델 토로 감독처럼 델 토로 감독님, 성실하게 덕질해야지..!






역시 오프닝부터 몽환적이고 범상치 않은 영상이 관객들을 압도시킨다. 집이 물에 잠겨 있고, 가구는 둥둥 떠 있고, 그 안에서 주인공 엘라이자는 잠을 자고 있다. 환상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물이 화면에서 걷히고 나서도 엘라이자의  규칙적인 일상 장면들에서는 여전히 낭만이 느껴진다. 그녀가 일어나 달걀을 삶고 목욕을 하고 구두를 신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일 같은 순서대로 반복되어 단조롭지만, 구도나 색감, 편집이 매력적이라 집중된다. 더불어, 엘라이자의 집 아래에 영화관이 있다는 설정이나 엘라이자와 그녀의 친구 자일스가 항상 틀어놓는 TV 속 당대의 미국 영화 장면들에서도 낭만을 느끼기가 쉽다.

미 항공 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는  여느 때처럼 일을 이어나가던 중, 비밀 실험실에 갇힌 괴생명체를 발견한다. 이 괴생명체는 인간과 닮았지만 아가미로 호흡하고 몸이  비늘로 덮여있다. 위험한 괴물인지, 특이한 외계인인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신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생명체에게 엘라이자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교감하기 시작하고, 어느덧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라이자가 이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부분은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하다. (달걀이 이렇게 로맨틱하게 표현될 수 있다니..!)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엘라이자에게  집중할 때 관객들은 그녀의 손짓과 눈빛, 행동 속에서 더 섬세하고 진실된 의미들을 포착해내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이  괴생명체와 교감하는 순간들에 차분히 집중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달걀이라는 음식으로 시작해, 음악, 춤, 우정,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살짝 아렸다. (아름다운 건 꼭 따라 하고 싶어지는 관객 1인은 그 다음 날 괜히 아침으로 달걀 여러 개를 삶아서 일렬로 놓을 이후에, 하나씩 먹었다.) 엘라이자의 감정을 함께 이어가다 보니, 물방울 두 개가 합쳐져 하나가 되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서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비밀 실험실이라는 공간이라든지, 악하게 생긴 책임자 스트릭랜드의 무시무시해 보이는 고문 도구를 통해 추측할 수 있듯, 이 생명체는 존중받지 못하고 죽게 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엘라이자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탈출시킬 계획을 짠다. 엘라이자가 이 계획을 성공시키는 데에 힘이 된 사람들은 그 어느 위대한 소수 정예의 특공대원들도, 숙련된 전문가들도 아닌,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이웃 자일스와 직장 동료인 젤다 그리고 러시아 스파이 호프스테틀러였다. 자일스는 직장에서 쫓겨난 노인이며 동성애자다. 젤다는 흑인이고 청소부이며 여성이다. 그리고 주인공 엘라이자는 청소부이며 언어장애를 갖고 있어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영화가 더 감동적이었던 건 소수자로 여겨지는 이들이 뭉쳐서  ‘소수 정예의 특공대원들이 했을 법한 일’로 여겨지는 위험한 탈출극을 성공시키고, 그들 각자의 사랑과 신념을 쟁취해낸다는 점이다.  (<위대한 쇼맨>에서 서커스 단원들이 'This is me' 무대를 펼칠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가. 최근의 미국  영화들은 이렇게 현 미국 사회에서 이전보다 더 우려되는 지점들을 내보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주인공 엘라이자는 당차고 용감하고 주도적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구하고 살리는 장면, 그녀의 직업과 성별을 들먹이며 막말하는 인간에게 수화로 욕하며 짓는 영웅 같은 표정 등은 통쾌한 명장면이었다.

"1960년대는  미국이 나라의 이상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점 더 확고히 하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동시에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의 다름으로  인한 갈등과 분열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분열이 지금의 미국이 직면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미국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불관용과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기예르모 델 토로_cine21/no.1143)






이제 엘라이자가 사랑한 괴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반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 크리처에게 반해서 저장한  이미지들을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그녀는 매우 놀라며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눈길을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분명 입장이 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너무 잘생겼다!!!!!! 진짜 잘생기고 입술도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델 토로 감독이 크리처 디자이너와 몬스터 모델 전문가에게 "여성이 키스하고 싶은 입술과 각진 턱, 동그란  눈을 가진 핸섬한 외모"를 주문했다고 한다.(cine21/no.1143) 그리고 그들은 이를 완벽히 수행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 괴생명체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에만 2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그가 아름답고 섹시하고 멋진 존재로 보이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외양을 가진 그는 영화 속에서 신기한 힘을 가진 신과 알려지지 않은 짐승의 경계를 넘나듦과 동시에, 갓 태어난 생명처럼  순수한 존재로 자리한다. 너무 순수해서 지켜보기 서러워지는 건 마치 가위손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더불어,  그와 엘라이자가 서로 감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더없이 아름답고 다정하게 진행된다. 물속에서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장면들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생명체의 존재 자체와 엘라이자와  이 존재 사이의 사랑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워서 슬프다. 슬픔과 행복, 동화와 비극,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선사할 수 있는 묘한 감정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난 바로 이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상상해보지 못했던, 최고로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흘러나오는 한 편의 시. 영화를 보는 내내 벅차올랐지만, 이 장면에서는 좀 더 울컥했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물에 형태가 없는 것처럼, 사랑에는 형태가 없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것이 형태를 이루어 사랑이 될지 알지 못한다."(기예르모 델 토로_cine21/no.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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