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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Mar 22. 2018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서툰 아빠와 씩씩해 보이는 어린 아들이 분주히 맞는 아침 풍경은 손예진 배우의 목소리가 입힌 펭귄 이야기만큼이나 괜스레 눈가가 시큰해지는 시퀀스였다. 우진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들이 깨기 전에 자신의 일터인 수영장에 가서 새벽 청소를 한다. 일을 마친 후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 지호를 발견한 곳은 수아의 옷장 속이다. 타버린 계란 프라이와 널브러진 주방, 엇갈린 단추 구멍에서 느낄 수 있는 수아의 빈자리에, 관객들은 이제 점점 더 엄습해올 영화의 거대한 슬픔을 맞을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각자 집에서 밖으로 나가기 전에 아내, 엄마의 사진에 입을 맞추며, 부자는 어김없이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이별에 직면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애틋하고 먹먹한 영화였다.






몸이 약했던 수아는 어리숙한 남편과 어린 아이를 두고 일찍 생을 마감해야 했다. 아직도 그녀의 부재에 적응하지 못한 두 사람은 그녀를 마음 깊이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아들 지호는 엄마가 죽기 전에 들려준 동화 이야기를 의심 없이 믿고 있는데, 그건 엄마 펭귄에 대한 이야기로, 수아가 직접 만들어 들려준 동화다. 엄마 펭귄이 생을 떠나 아빠 펭귄과 아기 펭귄을 두고 구름 나라로 가게 되지만, 비가 계속 오는 장마철에 잠시 내려와 둘을 만나서 같이 생활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장마철이 끝나면 다시 구름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 함께 소중한 나날들을 보내고 서로의 마음을 깊게 느낀 후에 펭귄 가족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헤어지게 된다. 지호는 엄마인 수아 또한 이 이야기 속 엄마 펭귄처럼, 비가 오면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우진은, 이런 기대감을 가득 안고서 장마가 시작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호에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건 그냥 동화일 뿐이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다.


엄마를 다시 볼 생각에 들떠 있는 지호의 모습에 우린 울컥해 마음 아파한다. 심지어 지호의 아빠인 우진은 몸이 약해서 불안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그들에게 정말 꿈같은 일이 벌다. 장마가 시작 된 날, 기적처럼 터널 끝에 앉아 있는 수아를 발견 것이다. 결혼한 것도, 엄마가 된 것도 다 모르고 있는 수아라도 지호와 우진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그렇게 수아 바라기인 둘의 행복한 순간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기억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수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이전의 기억과 연결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이다. 후반부의 반전을 알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 시간은 이미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었다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표면적으로 그간의 기억이 없는 수아에게 들려주는 우진 시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린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함께 듣게 된다. 고등학생 때 만나고부터 계속된 수아에 대한 우진의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서투르고 느리게 진행되는 우진의 고군분투기에 우리는 함께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 영화 특유의 풋풋하고 간질간질하고, 때론 웃프고 안타까운 첫사랑 감성이 이어진다. 후반부에서 알게 되겠지만, 수아 또한 우진 못지 않게 답답했다. 같은 마음, 그러나 쉽게 맞닿기 어려웠던 마음을 그리는, 풋풋하고 설레는 이 부부의 이야기다. (더군다나 수아와 우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현수 배우와 이유진 배우가 영화와 잘 어울려서 굉장히 좋았다. 이 둘의 모습으로 에피소드가 따로 담긴 작품을 원하고 있기 까지 하다.ㅎㅎㅎ)(물론 손예진 배우와 소지섭 배우의 호흡도 대단했다. 두 배우가 만나 영화의 매력을 한껏 높여줬다는 건 분명하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흔드는 요소에는 이렇게 풋풋하고 순수한 수아X우진 커플의 소중한 순간들 외에도 여럿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분은 아무래도 가족일테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우진보다 한 가정 안의 남편으로서의 우진이 더 깊게 와 닿는다. 거기에다 엄마에 대한 아들 지호의 사랑과 그리움, 심지어는 엄마와의 이별에 대한 속상함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하는 지점 또한 이 영화의 가장 큰 울음 포인트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아마 극장을 나오며 그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 좀 더 애틋해졌으리라 예상한다. 내 인생에서 만난 소중하고 각별한 모든 사람들과는 어쩌면 끈끈한 인연이 이미 정해져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바로 그 사람들 말이다. 너무 좋아서 자꾸 만나고 싶은 사람들, 작은 부분도 걱정이 되는 사람들, 옆에서 진심어린 응원을 주고 싶은 사람들, 한없이 고마운 사람들, 투정부리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수아는 기적같은 경험을 하고 난 후 자신의 소중한 사람, 우진에게 찾아가 그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와의 미래를 보고왔는데 참 좋더라, 하고 속으로 생각했을 수아가 내린 결정 덕에 이 행복하고 애틋한 가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의 반전과 수아의 선택을 곱씹다가 떠오른 건 인연의 운명이었다. 가족이 될 인연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부모님과 언니가 없는 내 삶을 상상하거나 인정할 수 없듯이, 가족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묘하고 특별한 관계 같다. 가족이 여럿이든, 많은 인연을 거친 후에 만났든, 피가 섞였든 안 섞였든 상관없이 말이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르는 그 어느 순간을 흐르고 있는 내가 선택해놓은 결정에 따라서, 그렇게 정해져 있는 인연,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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