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이터한 May 25. 2018

#8 <스탠바이, 웬디>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직진입니다.


  #8 <스탠바이, 웬디>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직진입니다.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마음으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감동받고 벅차오르는 그 행복한 마음 말이다. 8ㅅ8 이 영화 하나만으로 이 영화를 본 날이 행복한 날로 내 다이어리에 기록되었을 만큼 굉장히 좋았던 영화였다. 그래서 사심을 가득 담아서 이 영화의 매력을 읊어 보려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최고였는데, 이걸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없으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우리의 웬디는 요일마다 색을 정해 옷을 입고, 정해진 일과를 살아간다. 피트를 산책시키거나 시나몬 빵을 파는 가게에서 알바도 한다. 그중에서도 웬디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글쓰는 시간이다. 월요일은 오렌지색, 화요일은 라벤더색, 그리고... 다른 날은 색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옷을 바꿔 입으며, 웬디는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 웬디의 자폐증 때문에 걱정과 노파심을 안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스코티 선생님은 이런 웬디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켓 가를 절대 넘어가지도 않고, 신호등의 초록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다가 횡단보도를 넘어가고, 맡은 일을 정확히 해내니까 말이다. 그러나 웬디는 자기가 그 이상으로도, 그러니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린 조카를 만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혼자의 힘으로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허락해주지 않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언니와 다툼이 있고 난 후, 웬디에게는 자신을 입증할 기회가 생긴다.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의 기한을 맞추기 위해 직접 LA로 떠나서 시나리오를 제출하려는 마음을 먹은 웬디. 영화는 이렇게 웬디가 스탠바이, 대기를 끝내고 자신의 항해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확 바꿔버린다. (아참, 혼자가 아니라 피트도 함께!) 우린 순식간에 그녀의 항해 일지에 푹 빠지게 된다.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은 웬디에게 아주 제격의 기회다. 웬디는 글쓰는 것과 스타트렉을 정말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스타트렉의 시나리오를 쓰라는 건 최고의 자극제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마음을 다해 끝까지 사랑하는 덕후들의 진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게 된 데에는 사실 이 부분의 역할이 컸다고 언급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스타트렉을 좋아해서 스타트렉에 대한 그녀의 덕심을 이해하기 쉬웠기도 했지만, 웬디가 빠져있는 작품이 스타트렉이 아니었더라도 난 마음 깊이 이해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타트렉을 그리 좋아하지 않더라도 각자 무언가의 덕후인 관객이라면 웬디의 마음을 쉽게 공감했으리라. 사실 우린 모두 살면서 무언가에, 누군가에, 어딘가에, 언젠가에, 혹은 뭐가 되었든 나름의 그 어떤 것에 열렬히 빠져 본 적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드라마가, 마블이, 배우들과 작가들이, 박효신 가수가, 영화가, 초콜릿이, 연보라색이 그렇다.(이밖에도 아주 많음.) 난 덕후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굳세게 믿고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트레키’들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리란 것도 믿고 있다.

덕후들의 마음의 눈은 살짝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는가. 같은 망치를 봐도 누군가는 토르를 떠올리며 저 어딘가에 존재할 어벤져스를 걱정할테고,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군가는 갑자기 좀비가 덤빌 것을 대비하자는 생각을 3초 해보기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레키’인 웬디, 그녀의 세상도 여느 덕후들처럼 특별하게 펼쳐진다. 그녀의 일상은 커크와 스팍과의 대화와 함께였고, LA를 향하는 길 또한 커크와 스팍과 함께 걷는 것만 같았다. 불시착한 커크와 (자신을 투영한) 스팍을 상기시키는 환상적인 SF적 연출은 그래서 최고였다. 시나리오를 내기 위한 그녀의 여정은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와 겹쳐졌다. 그녀의 세상은 이렇게 스타트렉과 함께 그려지고 흘러간다.

이왕 덕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덕후들 사이의 끈끈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덕후들끼리의 스파크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영역이다. 다른 결의 동지애, 감동, 벅차오름이 함께한다. 남들 모르게 통하는 강렬한 공감은 살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축복이다. 이 영화에서도 이 끈끈함이 포착된다. 또다른 ‘트레키’인 경찰 한 명이 ‘트레키’ 웬디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클링온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그 덕에 웬디를 안전하게 경찰서로 데려가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 클링온어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분명 덕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다. 덕후들의 진심이 뭔가를 이루어낼 때 우리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들과 함께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심지어 이밖에도 이 영화는 내가 평소에 아주 환장하는 성장 + 로드무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다. 웬디가 처음으로 마켓 가를 넘어갈 때 얼마나 소름돋았던지. 이 영화에는 명장면이 너무나 많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쿵쾅거리게 한 건 이 장면이었다. 웬디가 자신의 경계, 결핍, 두려움을 허물고 첫 걸음을 내딘 순간이다. 이 순간부터 당차고 용기 있는 웬디의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항해 일지의 두근거리는 시작점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대단했는데, 특히 이 장면에서의 음악 연출은 우리가 받는 감동을 더 극대화시켰다. 마구 쏟아지던 음악은 웬디의 첫 내딛음의 순간과 동시에 침묵을 만든다. 관객들은 모두 그 장면 속 웬디에게 집중했을 것이다.bb 혼자서 내딛는 첫발은 그 목표가 뭐든, 시기가 언제든, 장소가 어디든, 누구의 첫발이든 너무 설레서 미칠것만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게 얼마나 나에게 큰 의미인지를, 얼마나 떨리는 변화의 시작점인지를 본인은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담인데, 요즘 그런 첫발들을 많이 내딛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제가 큰 의미의 시작점이었기에, 나에게 시기적으로도 완벽했던 영화 <스탠바이, 웬디>였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 웬디의 항해에서 그녀를 가로막는 것들이 많았다. 무표정의 불친절한 사람들, 그녀의 돈과 물건을 훔치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 작은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웬디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주변에는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청년도, 사기를 치려는 점원에게 호통을 치며 막아주는 할머니도, 웬디의 순수한 덕심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다른 ‘트레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코티가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마켓 가를 넘어선 이후 다양한 상황을 직면하면서 웬디는 성장해간다. 하지만 그 성장의 뿌리는 이미 웬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스타트렉의 영향이 막대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 (덕후들이여 영원하라!) 모든 것을 낙심할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웬디는 캡틴과 스팍을 떠올리며 그들이 되어 걸어간다.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직진이다. 그렇게 웬디는 자신의 항해에서 각각의 논리적인 해결책을 내리고 직진해간다. 시나리오를 잃어버려 직접 써가며 메운다거나, 돈이 모자라 타지 못한 버스 짐칸에 몰래 탄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글쓰는 것, 메모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웬디가 끄적이는 모든 순간들을 응원하고 좋아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와그작톡에서, 글쓰기가 어떻게 인간에게 힘을 주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다고 말했다. 웬디는 항해를 해나가면서 자신의 메모장에 여러가지를 기록한다. 자신이 알아야할 것, 자신이 배운 것, 자신이 해야할 것 등을 말이다. 또, 스타트렉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애정과 마음을 담아 427 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했다. 자신을 투영한 스팍과 그의 캡틴 커크에게서 얼마나 많은 진리를 얻고 기록했을지. 웬디의 그 일련의 과정들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버무려진 영화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인생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8ㅅ8 나만의 룰, 덕심, 글, 성장, 로드, 환상적인 연출이라니. 너무 사랑하는 영화가 되었다. 간직해서 보고 보고 또 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보게 되다니, 너무 행복하다!!!!!!! 흑흑흑,,, 모든 이에게 장수와 번영을.

매거진의 이전글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