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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Jun 20. 2018

#10 <허스토리>

10명, 6년, 23회


  #10 <허스토리>

    10명, 6년, 23회



감사하게도 사전 시사회로 조금 먼저 볼 수 있게 된 <허스토리>. 보는 내내 이 작품에도, 그들의 이야기에도 함께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다. 여운도 분노도 깊어져 개봉 후 다시 보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개봉일은 6월 27일이다.) 뜨겁고 대단했기 때문에,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영화다. 8-8




영화 <허스토리>가 다루고 있는 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많은 법정 투쟁 중 유일하게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10명의 ‘위안부’ 및 ‘근로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원고단과 그들의 승소를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23회에 걸쳐 피나는 법정 투쟁을 벌이고, 결코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원히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했던 분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직접 나서 투쟁한 관부재판의 과정과 결과를 우린 그동안 충분히 인지하고 분개했었는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부끄럽’다고 외치는 정숙의 참회를 듣는 순간, 관객들은 분명 그녀와 함께 가슴 깊은 죄송함과 자책을 느꼈을 것이다.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되는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이 아프고, 다치고, 죽게 되니까 말이다. 믿을 수 없을만큼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들이 약자인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너무나 참혹하게 행해졌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피해와 고통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은 아직까지도 완벽히 끝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할머니들 본인과 일반인 여성 정숙을 비롯한 사람들이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는 90년대 부산에서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의 일원이었던 정숙이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되고 원고단 단장이 되어 할머니들과 함께 투쟁하는 모습을 담는다.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해 포기없이 힘든 일을 걸어온 그녀들의 연대가 빛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유머 코드를 넣어주고, 현명하게 강약 조절을 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김선영 배우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리얼한 사투리와 유쾌한 에너지, 김희애 배우와의 케미까지 다 갖고 있는 김선영 배우였다. (둘의 뽀뽀씬에 관객들은 자지러졌더랬다.ㅎㅎ)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연륜있는 여성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유머적 모먼트를 사랑한다. 가령, <늑대소년>에서 장영남 배우가 보여준 일상 속 유머라든지, <응답하라1988> 속 라미란 배우의 셀 수 없이 많은 드립들, <또!오해영> 속 예지원 배우의 병맛적 캐릭터 표현 등을 매우 아낀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김선영 배우와 김희애 배우의 유머 코드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밖에도 이 영화는 그 어떤 자극적이고 실제적인 화면을 담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음아프고 잔혹한 참상의 회상 장면 없이, 배우들의 눈빛과 외침만으로도 마음 깊이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슬퍼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만큼, 배우들의 열연이 대단했다. 최고의 배우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연기한다. 그들이 깊은 공감과 진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몰입으로 작품에 임했다는 게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할머니분들을 연기하신 김해숙 배우님, 예수정 배우님, 문숙 배우님, 이용녀 배우님의 연기를 잊을 수가 없다. 김희애 배우에게도 많이 놀랐다. 정숙이라는 인물에 대한 몰입이 대단하다는 게 느껴졌다. 배우분들의 인터뷰를 보니, 기존의 본인을 많이 내려놓고 비우려는 노력이 중요했다고 한다. 이분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피해 여성분들의 아픔과 우리가 잊거나 무시해서는 안될 과거의 순간들을 마음에 새겨야할 것이다. 극장 안을 메우던 울분과 탄식, 울음의 소리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영화가 극장에서 더이상 상영되지 않아도 계속되고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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