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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Jun 26. 2018

#5 <김비서가 왜 그럴까>

눈부시지 않나? // 네, 눈부십니다.


  #5 <김비서가 왜 그럴까>

    눈부시지 않나? // 네, 눈부십니다.



중국인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렵사리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그 대화에서 꽤 많이 나온 키워드가 무엇이었냐면, 바로 <김비서가 왜 그럴까>였다. 나도 미처 시작하지 못했던 드라마를 그곳 20대 친구들은 다들 이미 보고 있더랬다. 당시에 겨우 4회까지밖에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보기 시작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나 재밌다. 바로 빠져버렸다. 그리고 요즘엔 중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이 드라마의 짤들을 공유하곤 한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정경윤 작가의 웹소설이다. 웹소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인기에 힘입어 웹툰으로도 연재되었고, 심지어 지금은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 OSMU*로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가 시작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호응이 좋다.) OSMU 작품들이 항상 성공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원작의 기존 팬들을 다수 끌어모을 수 있고 원작의 성공으로 인해 작품성이 입증되었으므로 유리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작품을 시작해야 하며, 그렇다고 원작을 그대로 구현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달라진 장르의 특성도 고려해야 하고, 원작의 매력 이외에 다른 특별한 무언가도 포함해야 한다. 그렇기에, OSMU로 새롭게 내는 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성공 가도를 이어 달리는 건 아주 아주 대단한 일인 것이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은 훌륭하게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싱크로율 높은 캐스팅(bb)을 통해 기존 팬들을 만족시켰으며, (박서준 배우는 인터뷰에서 기존 팬들의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첫회부터 완벽하게 영준 캐릭터를 잘 만들어낸 것을 보니, 이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웹소설의 대사와 웹툰의 장면을 실제 화면으로 잘 구현해냈다. 이에 더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덕에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났고 작품의 매력이 배가 되었다. 두 주인공이 같이 나오는 첫 장면의 대사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매력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OSMU(One Source Multi Use) : 한 가지 원작을 다양한 콘텐츠 형식으로 만드는 전략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1화


S#1. 영준의 집 / 오전

큰 창을 통해 빛이 내리쬐는 영준의 집 안. 미소와 영준, 한쪽에 마주보고 서 있다. 영준의 타이를 깔끔하게 고정시키는 미소.

영준 : (거울을 보며 흡족하게) 눈부시지 않나?

미소 : (타이를 만지다가) 햇빛이요?

영준 : (두 팔을 위로 뻗으며) 아니. 나한테서 나오는, 아우라!

미소 : (익숙하다는 듯 태블릿을 줍고)(기계적인 미소) 네, 눈부십니다.

         (태블릿을 영준에게 내밀며) 여기, 오늘 일정이고요.

영준 : (태블릿을 확인한다)

-이하생략-



유명기업 부회장인 영준은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기럭지면 기럭지, 능력이면 능력, 모든 걸 갖춘 완벽한 남자다. 특이한 건 본인도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심각한 나르시시스트라는 것. 무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벽한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영준의 기대를 맞춘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비서인 미소는 9년이나 영준의 곁에서 일을 수행하며 인정받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로봇처럼 척척 일을 해내고 영준이 필요한 것들을 완벽하게 캐치해내는 프로 중의 프로다. 영준의 나르시시즘적 모먼트들을 익숙하게 받아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영준을 잘 다루기도 한다. (둘의 오랜 부부 같은 호흡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비서계의 레전드라고 칭한다. 이 나르시시스트에 완벽주의자인 이영준 부회장의 곁에서 그렇게 오래 버텼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자라는 게 입증되는데,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는 찰떡궁합을 줄기차게 보며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훅 들어온 김비서의 통보는 영준은 물론 시청자들을 벙찌게 만든다. 그녀는 차 안에서 문득 퇴사하고 싶다고 통보해버린다. 충격이 커 보이는 영준이다.


영준은 미소의 통보를 납득하지 못하고 부정하다가 미소를 다시 붙잡기 위해 자기 나름의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러나 단단히 마음 먹은 듯한 미소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영준의 방법들이 말도 안 되긴 하다. 사고 방식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영준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결국, 영준과 미소의 대화는 아슬아슬한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2화


"싫다고 하지 않았잖아."

"네?"

"싫다고 말했으면, 다 맡기지 않았을 거야."


이 대사에 치인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고 있다. 나 또한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이 씬의 완급조절이 장난 아니었다. 카톡상의 신경전이 스피드 있고 조금은 유쾌하게 진행되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진지함이란. 9년을 함께 한 두 사람 사이에는 가볍지 않은 관계성이 있을 것임을, 서로에 대한 감정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을 것임을 드라마 초반부터 인식시켜주는 대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미소에게 느낀 서운함과 그녀를 붙잡고 싶어하는 영준의 솔직한 마음을 보게 된 씬이다. 이때의 박서준 배우의 대사 톤과 두 배우의 표정 연기는 계속 생각이 날 정도로 좋았다. 아마 이 씬에 영업당한 시청자들이 많았으리라.



코믹스러운 씬, 심쿵하게 되는 씬에 대한 맛보기를 넘어, 드라마의 매력들을 읊어보자면, 첫 번째는 역시나 캐릭터의 참신함이다. 물론 재벌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소재요, 남녀 주인공 사이의 이런 권력 상의 차이는 환영받지 못할 요소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는 남자 주인공을 나르시시스트 재벌로, 여자 주인공을 로봇처럼 완벽하게 일하는 레전드 비서로 설정하고, 여기에다가 둘 사이에 얽힌 미스테리한 비밀 사연까지도 하나 추가해놓음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두 캐릭터의 독특한 모습과 둘의 간질간질한 로맨스를 지켜보다가도, 미소와 영준의 어린 시절 사건과 두 사람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의 원인, 혹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둘의 9년에 대해 너무나도 궁금해져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청자들이 한 회 한 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최신 회차를 보고싶어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또, 그들에게 병맛 코드와 유머가 녹아 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현실에서 영준처럼 진심으로 자기애가 강하며 주변을 인식하지 않고 이를 드러내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이다.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 옆에서 9년을 버틴 미소도 그 못지 않은 비평범의 범주에 속해있음을 우린 알게된다.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은 성격은 드라마의 활력이 되어주며 뻔한 드라마의 길을 걷지 않게 해준다. 한편, 미소는 극속에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비서라는 직업은 드라마의 제목부터 대문짝만하게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내 캐릭터의 역할에 있어서는 그리 큰 의미를 갖진 않는다. 그러니 두 주인공들의 직업과 권력에서의 차이로 인해 그들의 작품 내 위치를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민영 배우도 타 비서 캐릭터들과 달리 능동적인 캐릭터임에 주목해 김비서의 옷을 입게 되었다고 밝혔더랬다. (이건 여담이지만 작가님이 '김미소'라는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김비서'와 '김미소'의 비슷한 어감을 눈치챘을 때 묘한 희열을 느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매력이 살아 숨쉬는 데에는 당연히 배우들의 공이 아주 크다. 박서준 배우와 박민영 배우는 영준과 미소를 찰떡같이 소화해낸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만족스러운 화면을 보이며, 둘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냈다. 대사 톤과 말투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캐릭터와 대본을 연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 입 아프지만, 두 배우의 비주얼 또한 완벽하다. 원작 주인공들을 그대로 탄생시킨 것 같은 비주얼일 뿐만 아니라 둘 모두 근래에 본인들의 리즈를 계속해서 갱신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스타일링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진다. (tmi: 박민영 배우는 다이어트를(!) 감행했고, 박서준 배우의 코디는 수트를 직접 제작한다고 한다.) 그만큼 드라마엔 볼 거리가 가득하다. 황홀한 눈으로 보고 있음.


다른 배우들도 모두 제 옷 입은 듯 완벽하다. 특히 그중 찬사를 받고 있는 캐릭터는 바로 박사장. 소설/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강기영 배우는 드라마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도 알차게 각자의 개성과 서사를 갖고 있다. 일단 미소와 영준과 얽혀 있는 듯한 영준의 형 성연의 이야기, 봉과장과 양비서의 관계 발전 가능성, 신입비서 김지아와 알뜰한 인기남 고귀남의 서사, 부회장과 박사장의 관계성, 영준 부모님의 귀여운 케미 등, 곧 펼쳐질 이야기들이 알차게 깔려 있기 때문에 기대감이 아주 크다.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1화/2화


이 드라마는 꽤 트렌디하게 연출되고 있다. 가령 화면 분할이나 카톡창 화면 삽입. 웹소설/웹툰 기반의 드라마답게 두 장르를 떠올릴만한 기법들이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 앞서 언급된 "싫다고 하지 않았잖아." 씬에서도 이 카톡창 화면이 잘 녹아들어 사용되었다. 스피디하고 가벼운 말다툼이 벌어질 때 화면 분할과 카톡창 화면을 통해 속도감을 더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이어진 영준의 묵직한 대사가 와 닿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연출은 상황에 맞는 효과음을 곧잘 넣어 드라마를 통통 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코믹스러운 상황도 잘 연출해낸다. 이를테면 5화의 키스 불발 씬이 그랬다. (6화를 봐야만 그 이유를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영준이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두 사람의 첫 키스를 날려버린 씬이다. 둘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미소를 밀쳐버린 영준. 미소가 앉은 바퀴 달린 의자가 저 멀리 밀려가고, 미소의 몸이 돌아가고, 영준은 자기가 더 놀라고, 미소는 입을 삐죽 내밀고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이때 둘의 표정은 만화적이고 코믹스럽다.


이렇게 발랄하고 웃음이 터지는 드라마가 필요한 요즘이었다. 앞으로 사연이 드러나면서 얼마나 재미있어질지 기대하며 휘몰아치는 전개를 기다리고 있다. 초반부에 이미 반해버려서 이 드라마가 계속 매력을 상승시켜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디 웰메이드 드라마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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