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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한 Jun 27. 2018

#12 <변산>

우리의 빛나던 흑역사를 위하여


  #12 <변산>

    우리의 빛나던 흑역사를 위하여





'빛나던 흑역사'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흑역사는 내 삶의 역사 중 그렇게도 잊고 싶고 감추고 싶은 기억들인데 말이다. (감독님에 따르면) 외면하거나 도망치거나 견디면서 사는 자기 과거의 불편한 순간들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과거의 결핍, 과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성숙하지 못한 상태가 돼버린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화해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즉, 우리는 영화에서 뒤로 던져놓은 흑역사를 다시 꺼내 직면하고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게 된다.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설정된 주인공의 직업이 바로 래퍼다. 학수의 직업을 래퍼로 설정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흑역사, 과거를 마주 보지 않아 갖게 된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그리고 그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랩이라는 것이 솔직하게 고백해 써 내려간 결과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수의 심정과 상황이 영화에서 랩으로 바로바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랩의 가사에 집중해볼 것을 추천한다.) 가오갤 포스터처럼 알록달록하고 네온 빛 가득한 <변산> 포스터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포스터처럼 통통 튀고 다채롭다. 이런 영화의 분위기에 한몫하는 것이 바로 영화에 녹아든 학수의 랩이다. 뮤지컬 영화처럼 이 영화 곳곳에 랩이 깔려있다. 사건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하단에 자막이 깔리며 학수의 랩이 울려 퍼진다. 면역이 없다면 사실 좀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 있으나, 마음을 열고 학수의 가식 없는 고백을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후반부에서 학수가 용대의 운전기사로 일할 때 쓴 랩이 기억에 많이 난다.ㅎㅎㅎ 이때 극장 안 모두가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학수가 마주해야 했던 고향, 변산은 학수에게 온통 좋은 기억으로는 남지 않았나 보다. 아버지와의 불화라든지, 시를 도둑맞은 기억이라든지, 어머니의 죽음이라든지, 더 이상 기억해내기 싫은 이야기들이 얼룩진 곳이니 말이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그러나 그의 고향은 가난해도, 보여줄 아름다운 노을이 있었다. 이 사실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된 자신의 시, 엄마의 무덤 앞에 앉아 썼던 시를 통해 기억하게 되었을 학수다.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이 바로 인생이니, 나의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그러니 힘든 시간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학수는 '노을 마니아'인 선미 덕에 피해 다니던 고향을, 과거의 정면을 보고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고향의 노을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린 학수가 정면으로 보려 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와 고향을 마주 보는 것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별 거 아니다. 본인에겐 일생에 드리워졌던 그림자였겠지만 막상 다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뭐 그리 어려워 그동안 피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그렇다. 유쾌하고 떠들썩하게 풀어낸 학수의 과거와의 화해를 지켜본 덕에, 관객들도 본인이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로잡혀 맴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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