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몹시 싫어했던 나는 어느 날 수학선생님이 던진 분필에 이마빡을 세게 얻어맞았다.
"세상 고민 니가 다 짊어졌냐?"
뭐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나는 늘 생각이 많고 따라서 고민많은 얼굴이었으니까. 사실은 '수학이 싫어요'라고 소리지를 용기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한 수업시간에는 늘 칭찬받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멋부리듯 공부하지 말아라." 가 미스코리아처럼 과하게 부풀린 파마머리 영어선생님께 들은 충고였다. 뭐 '어문학은 선생님처럼 멋 좀 부리는 거 아닌가요?'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 다음에 이어질 잔소리가 싫어 입을 닫았다.나는 영어나 문학시간이 되면 얼얼하게 혀도 굴려보며 새롭고 이질적인 것들에 푹 빠져 그 감각을 맘껏 누렸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 덕에 온 나라가 기분좋게 뒤집힌 것 같다. 모두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기이한 현상이 뉴스에도 나온다. 왠지 나에겐 없는 이 훌륭한 작가의 책을 읽어야할 것 같은 심리, 이게 지적 허영심이어도 좋으니 이렇게 온 나라가 잠시라도 책에 뒤덮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다. 문자중독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집에 있는 모든 활자를 읽었다. 심심한데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시장에서 돌아올 때면 늘 콧구멍에 새카맣게 먼지가 앉은 부모님을 만났지만, 혹여나 딸이 외로울까 사방을 책으로 가득 채워준 집에서 나는 컸다. 내 지적 허영심은 그 때 생긴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집에 책은 많다고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어제 급히 친정으로 내려올 일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새삼 둘러 보았다. 나의 정신세계를 채운건 바로 저 책들이었구나 싶었다. 비록 제목도 가물거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어딘가를 채우고 있다 생각하니 반갑게 느껴졌다. 그 방이 나 자신같았다.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 하나.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작가의 책도 사실 저 책장 어딘가에 있다. 그녀도 아빠의 서재에서 컸을 것 같다는 은근한 상상을 해본다.
얼마전 돌아가신 아빠가 세로로 쌓아놓은 책들 옆에 영정사진이 있다. 인생은 유한하다는 걸 아는 80대 노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돌아가시기직전까지 쌓은 저 자그마한 탑이 아빠를 참 멋있게 기억하게 한다. 아빠는 지적 허영심이 누구보다 많았다. 아빠의 숨결이 묻은 저 책들이 멋있고 그래서 아빠가 멋있다.
오늘 어떤 일로 목구멍에서 쓴 맛이 올라오는 경험을 난생 처음 했다. 사는 게 고될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걸 넘어서니 쓴 맛이 났다. 처음 느끼는 쓰디쓴 맛이었다. 아 쓸개즙이 이렇게 쓴가? 내가 쓸개를 빼놓는 중인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목구멍이 쓴데 왜 글이 쓰고싶지? 이게 아빠에게 받은 지적 유산인가?
동대구에서 출발한 열차가 수서역에 들어서고 있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인생의 쓴맛을 보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않고 글도 쓴 내 지적 허영심이 오늘은 마음에 든다. 이렇게 살다보면 요즘 내가 겪은 힘듬도 다 극복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