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하루 종일 내린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길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친구가 먼저 내려 우산을 들어주었다. 나보다 많이 작은 그녀가 내 어깨가 젖지 않게 우산을 받쳐주다니, 누가 보면 웃을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사랑은 상대를 편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래. 사랑하는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쓸 때 내 어깨가 다 젖더라도 그 사람은 젖지 않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같은 거지.”
이 나이에 비에 젖지 않는 마음을 느끼게 해 준 친구라니.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은 그렇게 우산의 기울기로 흔히 표현된다.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온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밤톨머리 정해인이 그랬고, ‘선재업고 튀어’에서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주는 노란 우산의 솔이와 선재가 그랬으며, 그 큰 덩치로 등이 다 젖어가며 여자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남주혁이 그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영원할 것 같은 행복한 순간이 지나고 대개 이별을 한다.
며칠 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 때까지 아껴두었던 이별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았다. 멜로의 정석답게 첫 화부터 우산아래 한쪽 어깨가 잔뜩 젖은 준고와 홍을 만났다.
‘인생에도 가끔 버퍼링 같은 게 걸릴 때가 있다’고 믿는 홍, 그녀는 꿈은 있으나 미래가 없는 현실에서 도망쳐 일본으로 무작정 유학을 간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개찰구에 가방이 끼어버린 홍을 도와주는 일본 남자, 준고를 만난다. 그 후로도 아르바이트 구직 자리에서 마주치는 등 우연이 반복되는 둘. 문학을 전공한 공통점 이외에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어울리는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놓쳐버린 채 결국 이별을 하고 만다. 5년이 흐른 후 그들은 우연히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준고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로 소설을 쓴 작가가 되어 그녀 앞에 돌아왔다.
기울인 우산처럼 흔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 심상찮다. 대사 하나하나가 내 눈물샘을 와락 자극한다. 가슴을 후벼 파며 내게 묻는 것 같다. 사랑은 그렇다 치자. 이별 후에 겪는 후회와 미련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우린 모두 별의 일부래.
별이 폭발하면서 지구가 생기고
우리가 만들어진 거래.
인종과 국적이 아무리 달라도
우린 결국 같은 별의 파편들 인거야.
우린 이노카시라의 별이 된거야.”
20대, 저렇게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한 번쯤 꿈꾸었던 나이. 40대, 이제와 생각하면 그 때 이별의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이. 지금 나는 그 40대에 서서 준고와 홍을 통해 그 때의 나를 되돌아본다. 어릴 때에는 몰랐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완전 다른 새로운 두 세계가 만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같은 별에서 왔다며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별이 폭발하고 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환경에 떨어진 파편들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렇게 빚어진 두 사람은 어쩌면 이 지구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다르다. 하지만 인연은 상대의 다름을 헤아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닥뜨리게 한다. 그래서 각기 살아온 과거, 그 결과인 현재, 그리고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결국 이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내 경우에 젊음은 결코 사랑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젊음이 가진 노마드적 습성은 사람을 자꾸 어딘가로 걸어가게 변화시킨다. 나는 한치 앞도 모르는 길 위에 선 느낌이었고 늘 위태로웠으며 불안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은 새드엔딩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을 이야기한 책, 드라마,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 나오는 “사랑은 꽃다발 같아서 피어나면서도 언젠가는 시들어버린다”든지, “시작이라는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같은 대사들을 줄줄 외고 다녔다.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사랑 후에 오는 것은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픈 아이러니죠”
준고는 나와 달랐다. 홍과 헤어지고 난 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별 후 홍을 생각할 때면 준고는 그녀의 웃음을 떠올렸다. 준고에게는 자신을 두고 떠나간 연인에 대한 미움은 남아있지 않는 걸까? 도리어 이별 후 준고에게는 홍에 대한 사랑이 다시 피어난 것 같았다. 홍은 늘 혼자 달리기를 했었다. 달리기를 잘 못하는 준고는 홍과 이별 후에 본격적으로 매일 달리며 홍의 외로움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그에게는 그토록 어려웠던 고백을 글을 빌려 전했다. 이건 이별 후에 유통기한이 새로 시작된 사랑이랄까. 미련에서 시작되었지만 분명 그것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한 새로운 사랑이었다.
나는 준고를 보며 생각했다.
사랑은 두 번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말 별이 폭발하듯 뜨거운 사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별 후에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이 덧입혀지지 않는다. 아픔은 날아가고 옷 벗은 사랑은 그 자체로 슬픔을 말리고 꾸덕꾸덕하게 굳어간다. 그래서 다시 엑기스만 남는다. 즉, 사랑의 핵심만 남는다. 나빴던 기억, 그러지 말 걸 하는 후회까지 다 세월에 빛바랜 채. 그래서 어떤 사랑은 그 벌거벗은 속내만 남아 비로소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날 나는 마음의 벽에 후회라는 상처를 새겼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이라도 했었다면 너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다시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전하지 못한 진심만 남을 바에는 준고처럼 말이든 글이든 일단 꺼내놓아야 알 수 있다. 준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타국에서 어설픈 동거를 시작한 홍의 외로움을 채워주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했다. 사실 나는 타인의 외로움을 다 채워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들로 힘겹게 돌아가 기억 속에서라도 그녀의 외로움을 껴안아주고자 하는 준고의 노력에 마침내 홍도 마음을 열게 된 게 아닌가 한다. 과거와 마주서고자 하는 노력,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진심을 전한 그 순간, 지난 사랑은 끝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게 아닐까.
준고는 어쩌면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홍의 곁에 머무를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겪을 지도, 다시 헤어질 지도 모르지만, 사랑한 후에 알게 된 것들로 인해 한동안 그들은 다시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며, 그를 편하게 해 주려는 마음.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고.
그러므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다. 새로운 사랑이다. 유효기간은? 글쎄다. 새로운 사랑을 계속 꿈꾸는 자에게는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