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엔 갈비를

연말 근황토크

by 소리글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은 경기도 포천의 한 카페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고딩 손님들 때문에 남편과 나는 집에서 쫓겨났다. 크리스마스에 집에서 놀겠다는 막무가내 아이들에게 기꺼이 집을 내준 자비로운 부부다. 우리는 시동을 걸고 정처 없이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엔 북적이는 명동이나, 강남, 성수를 가야 할 것 같지만 그건 힐을 신고 발가락 끝으로만 걸어 다녀도 행복한 젊은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람 많이 없는 곳을 찾아 우리는 이곳까지 왔다.

포천하면 이동갈비다. 나는 이동하면서 먹는다고 이동갈비인 줄 알았는데, 포천시 이동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동갈비다. 요즘 싼 돼지갈비만 먹다가 양념 소갈비를 먹으니 살살 녹는다. 역시 갈비는 양념 갈비고, 미국산이다. 이러다가 국내산 생갈비를 먹으면 감동해서 울지도 모른다. 난 항상 맛에 대한 역치를 최대한 낮춰놓고 있다. 내 입에는 뭐든 맛있다. 그래야 언젠가 진짜 고급 음식을 먹을 때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25년 함께 산 부부에게는 크리스마스라고 분위기 있게 스테이크 썰면서 와인잔 부딪치는 낭만은 없다. 그런 건 신혼에 끝났다. 지금은 각자 얼마 안 나오는 상추에 재빨리 쌈을 싸서 자기 입에 넣는 게 어른들의 낭만이다. 마늘을 넣든, 쌈장을 넣든, 각자 취향대로 오더메이드 할 수 있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다. 프로답게 집게도 두 개 들고, 각자 알아서 뒤집고 자르고 입에 넣는다. 오늘 고기를 먹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의 입에 고기를 넣어주지 않았다. 불만따윈 없다.


이유 없이 내게 고기 사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다. 내게 사기를 치려하거나, 바라는 게 있는 거라고. 하지만 남편은 예외다. 남편은 내게 바라는 거 없이 고기를 사주는 착한 사람이다. 물론 좀 더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해주거나 빨래를 좀 더 빨리 돌려주거나 자기 먹을 과일은 좀 남겨놓으라는 바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을 안 하니 됐다.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서 일하는 중이다. 뭐 크리스마스에 이 정도면 멋진 하루 아닌가. 거의 우리는 현실낭만자객이다. 낭만이 죽여준다.


1. 근황

늘 구독자분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글 좀 자주 써주세요. 뭐하십니까?” 나는 변명하고 싶었지만 하나하나 말하자면 진짜 구차한 이유들이다. “방광이 안 좋아서 병원 다녀와서 뻗었어요.”, “오늘은 어지럼증이 도졌어요. 메니에르가 재발한 것 같아요.” 등등...자세히 설명하자고 들면 끝이 없다. 그래도 제대로 글을 안 쓴 것은 사실이니 입이 백 개래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쓸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쓰고 있다. 구독자분들이 댓글에 미용실에 놀러온 아주머니들처럼 바글바글 앉아 같이 밥 나눠먹듯 놀고 있는 걸 보면, 진짜 댓글 창에 반찬냄새가 날거 같지만, 사는 게 재미있다. 공모전에도 얼른 내라고 종용하는 작가님들의 구박에, 내년에는 공모전에 낼 글도 틈틈이 쓰려 한다. 그래도 무리를 하면 바로 병이 나는 스타일이라 여전히 내 몸뚱이가 1순위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 이 뚱뚱한 몸을 사랑하고 아낀다. 앞으로도 좀 놀아가며 쓸 테니 그런 건 이해 좀 해주시길 바란다.


2. 브런치북 결산보고

지난 5월 초부터 <문방구가 사라졌다>,<딸, 드라마 같이 볼래?> 두 브런치북을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 전에 파리 여행기를 브런치북으로 발간하고, 지금은 지운 글들 포함해서 매거진 몇 개를 굴렸지만, 제대로 컨셉을 잡고 시작한 건 그때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쩌다 내 인생 해피엔딩일지도> 매거진도 24편 썼으니 내 체력에는 좀 부담이었던 듯하다. 작가님들이 하루에 몇 편씩도 뚝딱 뚝딱 써내는 걸 보면서 진짜 존경스러웠다. 아, 체력 운운하니 내가 가냘프고 기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늘고 있어서 공언하는데, 나는 ‘잘 아픈 인간’이지, ‘여리여리한 인간’은 아니다.


여하튼 <딸, 드라마 같이 볼래?> 브런치북은 지금 잠정 중단상태다. 명대사에 인생 이야기를 얹어서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매주 16회씩 드라마를 보고 명대사를 추려 에세이를 쓰는 게 현실적으로 버거웠다. 그래서 일단 <문방구가 사라졌다>를 좀만 더 쓰고 마무리한 다음에 다시 돌아오든지, 아니면 드라마 브런치북은 그냥 실패작으로 묻어둘까 한다!


3. 새로운 브런치북 예고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새로운 브런치북을 준비중이다. 아직은 문방구부터 마무리 짓고 시작하려고 열심히 구상하며 조금씩 쓰고 있다. 세상에서 나만큼 자주 아픈 사람은 잘 본 적이 없다. 나보다 더 큰 병을 앓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자잘하게 많은 병들로 늘 내 몸은 통증에 노출되어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모르는 희귀난치성 병들을 달고 산다. 그래서 그 새로 시작할 브런치북의 제목은 <대체 어디가 아프세요?>이다.


왜 그리 자주 아픈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곤란하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북에서 싹다 풀어보려 한다. 나를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던 고마운 사람들과 사건 사고들의 현재진행형 이야기들도 담으려 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30꼭지로는 어림없다고 100꼭지는 되어야 할 거라고 한다. 우울할 틈은 없을 것이다. 아프다고 웃기지 말란 법은 없다.


4. 감사인사

나는 행복에 대한 허들이 낮다. 앞에서 갈비얘기를 했지만, 작은 것에도 기뻐하다보면, 나중에 조금만 더 큰 행복들이 앞에 다가왔을 때 사람은 엄청 감사하게 된다. 나는 눈뜨고 아프지 않은 날이면 그저 너무 행복하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다른 작가들처럼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게 없다. 당연하다. 전력투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만족한다. 나는 75편의 글을 브런치에 남겼다. 정말 너무 좋다. 통증은 나를 잠식하고, 병원을 마트 가듯 들러야하고, 밤이면 어쩔 수 없이 통증 때문에 항우울제를 복용하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결국 내 인생은 결국 해피엔딩일거라 믿는다. 아팠던 만큼 성장하고 내년은 더 힘이 날 거라 기대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누가 뭐라 해도 다들 오늘만은 행복하시길.


그리고 올 한 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함께 해 주세욧!♡♡♡

집으로 가는 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