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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pr 16. 2024

당신의 사랑을 기다려

무겁지만 찍을 만해

트라우마.


친구가 내뱉은 단어에서 

나에 대한 고찰은 시작되었다.


일반적이진 않아.


는 말했다. 일반 사람들은 녹음을 하지 않는다고. 트라우마 같다고 했다. 트라우마란 단어 하나에 호흡이 가팔라졌다.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다는 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윽고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자기 자신은 누가 구하지? 증거가 없는데? 위선과 작위로 가득한 이 험한 세상을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거야? 그 안일함이 사건 사고가 되어 뉴스를 도배하는 건 아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내겐 '증거 수집'이라는 습관이 생겼다. 애초에  자체가 증거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현장에 가 봤고, 문제가 실재하다는 증거.  일은 눈앞의 일이 거짓이 아님을 카메라로 증명하 것이다. 사실을 입증하고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부조리한 회사 생활을 겪으면서, 회사 밖 현장 뛰면서, 2차례의 재판을 겪으면서. 녹음, 녹화, 메모하는 습관은 내게 일상처럼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증거만이 헤이터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기사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현장에서 내게 욕하는 사람들로부터, 회사에서 나를 조롱하며 앞뒤에서 폭언하던 이들로부터. 인간은 앞과 뒤가 너무나도 달라 믿을 수 없었다. 언론업계라고 별 거 다를 게 없다. 기자도 인간이며, 나도 인간이다. 이곳도 인간이 모인 곳이다. 찌라시와 카더라통신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사실이 담긴 증거뿐이었다. 


문제는 사실과 증거에 대한 나의 집착이 도를 넘는다 싶을 때 발생했다. 경주마처럼 달릴 때는 괜찮았다. 아니, 덮어서 외면했기에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트리거가 되어 덮어두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자, 나의 악몽은 다시 시작됐다. 손을 떨며 말을 겨우 이어나가는 내게 의사는 말했다. 전형적인 PTSD예요.


약함이

약점이 되더라도


이곳은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모순되게도 '몰인간성'프로답다고 평가하는 곳이다.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평등하지 못하고,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속마음과 약함을 드러낸 이 글은 나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약함이 약점이 되더라도, 상태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나는 나를 칭찬해 줄 테다. 자기혐오를 할 필요는 없지만, 상처는 마주할 것이다. 상처를 살펴봐야 약도 바를 수 있을 테니.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해 답을 구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결국은 '내'가 맺은 너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인류애가 없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 누구보다도 인류애를 원했던 것은 나였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랑이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인간사회에서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이 세상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카메라 뒤 절망과 희망을 수없이 오가는 나날이었다.


나는

나의 영원한 팬이기에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나를 절대 미워할 수 없고, 나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다자이 오사무 소설, <인간실격>의 요조에게 공감하던 나날들도 있었으나, 깨달았다. 나는 자기혐오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결국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집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을 걸 알면서도 하루를 살아간다. 사람 관계도 똑같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다시 또 다른 사람을 믿어보는 것.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인류애가,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 어리석지만 지혜로운 일이다. 회복탄력성이 좋지 못한 나지만, 인간을 향한 사랑을 계속 기다리고 기대하련다. 다자이또 다른 소설, <사양> 가즈코의 말대로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You cling to your papers and pens
Wait until you like me again
Wait for your love
Love, I'll wait for your love

- 아리아나 그란데, <We can't be friends (wait for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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