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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Mar 05. 2023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13

Ep13.│나의 세상이 무너지던 날.


귓가에 시원한 파도소리가 고파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에게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새파란 하늘 위에 떠있는 뭉게구름은

물 위의 돛단배가 잔잔하게 떠내려가듯

살랑이는 여름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흘러갔다.


베란다의 문을 열자 뜨거운 햇빛은 온몸으로 쏟아졌고

귓가에는 푸르른 생기를 내뿜는 나무들 사이로 목 놓아 울고 있는 매미 울음소리와

무더운 날씨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해가 가장 높이 떠있던 오후의 어느 날이었다.

현관에서 도어락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다 이내 일을 갔던 아빠가 일찍 집에 돌아왔다.


어라? 아직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아닌데..

문 앞을 지나가는 아빠에게 물었다.

- "왜 이렇게 일찍 왔어?"

- "허리가 좀 아프네?"


아파도 '조금 불편하다', '뻐근하다'가 전부였던

무뚝뚝한 충청도 남자인 아빠의 입에서

아프다는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다.


그러나 당황스러움은 잠깐이었다.

평소 협착이 있었고 한 달 뒤 시술 날짜도 잡았기에

걱정은 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아빠의 건강은 나빠졌고

진통제를 먹고 고통을 참으며 잠만 자는 아빠를 바라보던 엄마와 나는 결국 3일 만에 아빠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한참 방역수칙으로 예민해진 병원 응급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한 명 만이 출입할 수 있었기에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부모님이 나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빠가 갑자기 염증 수치가 높아지고 열이 나서

   일단 아빠랑 엄마 음압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을 숨기려 애를 썼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휴대폰을 잡은 나의 손은 쉴 틈 없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고 그렇게 한 시간쯤 더 지나자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 "아빠 아마 오늘 바로 입원할 것 같아.

   우선 간단하게 집에서 아빠 짐좀 챙겨 와"


차를 타고 집에 가서 아빠의 짐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한 달 전 아빠가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이상소견이 없었기에 '협착이 조금 더 심해졌구나'하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엄마가 알려준 병실로 올라가자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는 우리에게 내일 아침 MRI와 CT촬영 일정을 설명했고 아빠는 괜스레 미안했는지 얼른 집에 가서 쉬라며 재촉했다.

그렇게 내일 아침에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아빠를 병원에 남긴 채 엄마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하는 내내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알 수 있었다.

묘하게 흐르던 적막을 깨고 엄마가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아빠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담당의 선생님도 그렇고..."

- "담당의 선생님이 왜?"


내가 짐을 찾으러 간 사이 담당의 선생님과 상담을 마친 엄마는 대충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다.

- "담당의 선생님이 신경외과가 아니라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이야."


응? 이게 무슨... 갑자기 웬 혈액종양내과?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심장이 철렁했다. 그러나 이상소견이 없다는 건강검진의 결과를 찰떡같이 믿고 있었기에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려고 단호한 목소리로 아닐 거라며 온갖 합리화를 끄집어내며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아마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결과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순간부터 다음날 주치의 선생님의 결과를 듣기 전까지 우리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그저 무기력하고 초조하게 진료실 앞 모니터를 바라보며 간호사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심각하게 CT사진을 보고 있던 의사 선생님을 조용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제발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만 들리던 진료실의 무거운 적막을 깨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 "혹시 아드님이신가요? 아드님은 잠시 나가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결과를 듣지 않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리의 눈앞에 놓였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혼자 초조하게 마주 잡은 두 손을 풀고 옆에 있던 엄마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 "암은 암인데, 이게 어디서 발생한 암인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혈액에서 발생한 암이면 항암치료만으로 가능하지만

   최악의 경우 신경이나 뼈에서 발생했다면

   그 부위를 도려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아빠의 암 선고를 받은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여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도  정신줄을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뜬 채

겨우겨우 선생님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이 사실을 병실에 있는 아빠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우리는 이제 뭘 해야 할지 이미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차버린 공허한 머리로는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진료실 앞 병원 로비의 의자에 앉자마자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던 그 순간만큼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내 신경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었다.


10여 분을 정신없이 울다 순간 머릿속에 엄마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퉁퉁 불어 터진 눈에 흐르던 눈물을 옷소매로 닦은 뒤 병원 로비를 돌아다녔다.

저 멀리 ATM기 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닦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엄마 뒤에 서서 엄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 "너네 아빠 어떻게 해..."

그 말 한마디에 애써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다시 북받쳐 올랐다.

그렇게 둘이서 서로에게 의지해 한참 동안 말없이 눈물을 훔쳤고

시뻘게진 눈으로 아빠를 보러 갈 자신이 없어

뜨거워진 눈시울을 달래 보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조차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잠잠하면 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내가 잠잠하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평화롭던 우리 가족의 세상이 한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감정을 추스른 우리는 아빠에게 조금 더 검사를 해봐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차 안에서 엄마와 나는

꿈만 같다고.. 정말 꿈인 것 같다는 말만 되뇌었다.


집에 도착해 일정이 있던 엄마가 집을 나서자

다시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멍하니 거실에 앉아있던 나는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고

목놓아 울며 왜 우리 아빠가 아파야 하냐며 하늘을 탓하기도 하다가

내가 잘못했다며 두 손을 포개어 빌기도 했다.


아빠가 아프다며 집에 돌아온 날 나는 왜 따듯하게 걱정하는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았을까, 동시에 아빠에게 퉁명스레 건넸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며 피할 새도 없이 후회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어느새 뜨거운 햇살이 비추던 창밖에는 우중충한 먹구름이 떠있었다.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암이 아니길 바랐던 우리는 암 판정을 듣고

제발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는 혈액암 이길 바랬으며

다행히 혈액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난 뒤에는 제발 1기이기를 바랬고

완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게 큰 시련이 다가올 때마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길 빌고 또 빌었고

최악의 결과를 받고 무너지더라도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최선의 결과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도했다.


증상이 심각해질 무렵에는 앉아있거나 서있으면 다리에 쥐가 나

병원 지하에서 밥을 먹다 쥐가난 아빠를 휠체어에 태우고

로비의 긴 의자에 눕혀 초조하게 다리를 주무르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처럼 다시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반년이라는 시간은

서서히 그리고 서늘하게 지나갔다.

다행히 급성 림프종 1기였던 아빠는 항암 6차 만에 완치할 수 있었고

지금은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힘듦을 인정하고 감정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맨 처음으로 아빠가 암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친구인 민석이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감정이 격해져 고개를 돌려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엉킨 실타래로 남겨져있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며 위로가 됐다.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이제는 같은 상황에 처한 주변의 힘든 친구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 건넨다고 절대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고

진정으로 와닿지도 않는다.

그저 그 친구가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서 들어주면 되고, 그러다 감정이 격해져 울기 시작하면 막연하게 힘내라는 말 대신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주면 된다.



그동안의 산티아고 일정에 힘이 들었는지 발에는 물집 하나가 잡혀있었다.

생각보다 커진 물집에 결국 물집을 없애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동원이가 챙겨 온 소독용 알코올 솜을 꺼내 들어

상처와 손톱깎이를 잘 닦은 뒤 조심스럽게 물집을 없앴다.


고여있던 물을 빼고 난 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밴드를 꺼내 들어 상처 부위에 잘 붙여주었다.


26일이라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길을 걸을 수 없었기에

우리는 몇몇의 구간을 길게 점프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욕심을 내려놓고 그동안 고생한 나의 발에게 고맙다며

한번 쓰다듬고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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