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정체불명의 비명소리가 알베르게에 울려 퍼지다.
- 으아아아악
새벽 2시의 고요한 적막을 깨고 원인 모를
외마디의 비명이 알베르게를 가득 메웠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비명은
알베르게의 텅 빈 공간 이곳저곳에 부딪혀 울려 퍼졌고
단잠을 자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잠에서 깨어났다.
불안감에 휩싸인 알베르게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비몽사몽 할 틈도 없이 정신이 번쩍 뜨인 나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모두들 겁에 질린 채 어느 누구도 쉽사리 비명의 근원지인
1층으로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때문에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배정받은 침대 위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고
어떤 사람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침대 밑으로 숨어버리기는 사람도 있었다.
혼란한 건 알베르게뿐만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분명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혹시 강도가 들어왔나?'하며
이미 펜을 쥔 천재 작가가 미친 듯이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악몽을 꾼 사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미 불안감에 휩싸인 많은 사람들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고
심지어 알베르게를 떠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깜깜한 새벽의 거리가 알베르게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왠지 모를 찝찝함에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잠에 들지 못하고
새벽 5시가 되어 알베르게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동원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동원이에게 출발한다는 인사를 남긴 채
알베르게의 문을 열고 새벽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비명소리를 들어서일까.
어제의 포근했던 마을 풍경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어둠이 깔린 골목에는 새벽의 한기가 더해져
스산함을 내뿜고 있었다.
분명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따듯하게 안아주던 왕비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린 채 귀찮으니 빨리 지나가라며
차갑게 외면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나는 재빠르게 다리를 건너갔고
휴대폰 라이트의 빛 한 줄 만을 의지한 채 계속해서 까미노를 걸어갔다.
아무리 새벽이 길다 해도 아침은 찾아왔다.
묵묵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아침의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떠오르고 있었고
주변의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다정한 풍경과는 반대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쓰레기들은 길 곳곳에 떨어져 있었고
조용히 가방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허리를 숙여 눈에 보이던 쓰레기 줍기를 여러 번
어김없이 떨어져 있던 쓰레기를 줍고 허리를 펴자
눈앞에 해바라기 무리 사이로 유독 한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해바라기에 웃는 표정을 새겨놓은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새벽의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졌고
아침의 따스한 온기를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함께 미소를 머금은 채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대학생이 되어서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한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쳐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무기력함에 빠져 친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조차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해지게 되고
서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다.
친구가 너무 소중했던 어린 시절에는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하고 붙잡지 않으면
서로 사이가 나빠질 것만 같다는 생각에
모든 관계에 힘을 쏟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꼿꼿이 태양을 바라보며 피어난 길가의 해바라기처럼, 나는 언제나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너를 항상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