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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Apr 09. 2023

두 번째 점프 #18

Ep18.│따스한 온기가 넘치던 하루



아름다웠던 부르고스 대성당의 야경을 뒤로하고 

오늘은 두 번째 점프를 뛰는 날이다. 

버스를 타고 길게 점프를 하기에 며칠 간 함께했던 한국분들과는

오늘로써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이른 새벽 출발하는 형들에게 조심히 잘 가고 

나중에 한국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긴 채 우리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숙소에는 우리와 숙소 연장을 위한

몇몇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겨 알베르게를 나섰다. 

길가로 나온 우리는 제일 먼저 버스를 예매하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예매하고 나자

출출했던 배에서 무섭게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잔뜩 성난 배를 달래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빵과 커피를 산 뒤

햇살이 잘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폭주기관차처럼 길을 걸어온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의 나에게는 한껏 여유가 흘러넘쳐 나왔다.



여유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버스 출발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다시 버스 터미널로 향하여 무사히 버스에 올라탔다.

예매했던 맨 앞자리에 앉아 걷지 못한 순례길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고자 눈에라도 담기 위해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어제 걸었던 45km의 여파가 남아있었는지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기절하듯 잠을 자버렸다.


어느덧 버스는 열심히 달려 도착지인 레온에 정차하였고

배낭을 챙긴 뒤 기사님께 인사를 남기고

오늘 하루를 보낼 알베르게로 향했다.

길가에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과 더불어

길거리를 지나가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들은

단숨에 내 머릿속에 레온을 온정이 넘치는 도시라고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잠시 주인이 오기 전까지 숙소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알베르게의 한 벽 쪽에는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여행자들의 흔적이 보였다.

그중 가장 먼저 들어온 태극기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옆에 있던 문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함께 반이나 달려와 줘서 행복합니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이 길에 동행자가 되어줘서 행복합니다.

욕심을 덜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알려줘서 행복합니다.
순간순간 벅찬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우리네 모두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적었지만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다.

아니, 아마 까미노를 걷는 모든 여행자들이 느낀 감정일 것이다.


혼자 반을 달려온 길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달려온  길에서

욕심을 버리고 주변 사람들과 정답게 나누며 보내는 일상이 좋았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매 순간 사소한 일상이 주고 있었던 순간순간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까미노 길 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여행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아낌없이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여정이

그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했으며,

함께 걸어가고 스쳐 지나갔던 모든 인연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까미노 여정을 무사히 마치길 기도했었다.


마음속에서 작지만 큰 울림을 준 따듯한 문구에 벅찬 감정이 서서히 차오를 때쯤

알베르게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체크인을 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이유와 마음가짐 되새겼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와 레온 대성당을 구경한 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우리의 눈에 중국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재빠르게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 한국 라면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어떤 것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우리는 작정이라도 한 듯

김치라면과 볶음 김치를 사들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물론 이곳에서의 음식도 너무 맛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맛이 너무 그리웠던 참이었다. 

일상을 잘 보낸다는 건 어쩌면 이러한 소소한 행복들을 잘 챙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새 맛있게 끓인 라면 하나에 우리의 입가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 함께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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