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온기를 나누는 일상이 되길
유난히 쌀쌀한 아침이다. 이른 아침 베란다 창문 밖 너머로 보이는 산 중턱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이윽고 옮긴 시선의 끝자락엔 비에 흠뻑 젖은 길 위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몇몇의 사람들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저마다의 색을 가진 우산들이 길 위를 메우고 있지만 오늘은 유독 쓸쓸한 무채색처럼 느껴질 뿐이다.
을씨년스러웠다. 단지 날씨가 어수선한 건지, 내 마음이 어수선해서인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연달아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에 아침 일찍 일어나 혹여나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는지, 누가 또 다치진 않았는지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휘젓는다. 반쯤 떠진 눈으로 잠잠한 SNS를 보고 나서야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일어나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신다.
어린 시절, 주택에 대가족으로 살았던 나는 온정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학교 가는 길에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실내화 가방을 돌리며 친구 집으로 가 간식을 먹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이웃사촌들 집으로 배달을 가기도 했다. 집에 행사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웃사촌들은 자신의 일인 것 마냥 소매를 걷기 일쑤였다. 아이를 키울 때에는 온 마을의 보살핌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는 그런 정이 있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에 나는 요 며칠간의 일들에서 세상의 온기가 내려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하루가 사라진 오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 기억될 수 있는 오늘이다. 직접 따스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그들의 아픔이 조금 더 빨리 아물기를 기도한다. 간혹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여주기식이다, 니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 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공감이라 말하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눅진한 애정을 담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멈춰서 빌었던 나의 기도가 우연히 누군가의 아픔에 닿아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란다.
베란다를 나가기 전 장미 허브에 손을 갖다 대고 몇 번을 쓰다듬은 후 향기를 맡았다. 달달한 풍선껌 같은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며 다시금 창밖으로 길 위의 우산들이 보였다. 눈을 감기 전 무채색처럼 보였던 우산들은 어느새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분주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