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동기도 목표도 없는 취업준비생의 이야기
지원동기가 뭔가요?
최종 목표는 뭐에요?
꿈은 있나요?
취미는 뭐예요?
이 질문들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똑같다.
‘음... 모르겠어요...’
어릴 적,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다들 나에게 선생님이 잘 어울린다 했다. 어른들은 내가 ‘선생님이 꿈이에요!’ 라고 하면 기특하게 바라보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요리사나 가수가 되고 싶다 하면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래..?ㅎ’ 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왔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교대에 가지 않았다. 사범대에도 가지 않았다. 그저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만약 내가 다른 꿈이 있었고, 시야가 좀 더 넓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학 교양 수업 중 커리어를 설계하는 강의를 들은 적 있다. 커리어 설계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p/f라 수강했다. 수업 중 원하는 직업을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공무원’이라고 적었다. 지나다니면서 학생들이 작성한 것을 검토하던 강사가 내 것을 보더니 말했다. ‘너 안되겠다. 나랑 따로 면담 좀 해야겠는데?’ 이상했다. 왜 어릴 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나를 칭찬했던 어른들이 성인인 내가 공무원이 되고 싶다니 무시하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내 꿈을 평가하는 걸까?
어렸을 때는 공부만 잘하면 뭐든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꿈을 찾기보다는 공부를 했다. 나중에 내 꿈이 정해졌을 때, 공부가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20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꿈을 찾지 못했다. 대학까지 가고 나니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공부 외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경험과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춘기가 와버린 나는 더는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입학하고 몇 년을 방황과 술로 보낸 결과, 내 학점은 처참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꿈을 향해 쫓아가고 있었다. 다시 불안해진 나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했다’. 사람들이 많이 따는 자격증을 땄고, 유명하다는 대외활동에 참여하고, 관심 없는 회사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그리고 4학년이 되니 내 눈앞에는 다시 ‘취업’이라는 과제가 생겼다.
어디로 취업해야 할지 막막했다. 가고 싶은 산업군도, 직무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건 간신히 유지한 학점과 관련이라곤 1도 없는 스펙들이었다. 어떠한 목표도 없었기에 올라온 공고에 가능한 많이 지원했다. 주변 취준생들이 크게나마 방향성을 정했던 사기업, 공기업, 금융권 등의 구분도 없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써서 지원했다.그렇게 내 첫 시즌은 80개의 서류로 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몇 군데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면접 준비를 위해 학교 취업 센터에 방문하여 모의 면접을 하였다. 모의 면접 후에 컨설턴트 분은 나에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산업군에서 일하고 싶어요?’ ‘음... 모르겠어요’
‘왜 이 직무에요?’ ‘음... 그냥...’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에요?’ ‘...’
창피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얼굴은 시뻘게졌고 문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고 나온 나는 다시는 취업센터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나는 금융권에 최종합격했다. 합격 창을 보는 데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의 축하를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나는 한 달 만에 그곳을 관두었다. 그리고 또 어쩌다 보니 당시 썼던 공기업에 추가합격을 했다. 물론 또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곳을 나왔다.
(회사와 퇴사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추후 작성할 예정이다.)
다시 나는 꿈이 없는 백수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저런 질문들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던 나는 이제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방황하냐고 했다. 사회가 바라던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던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공부가 아니라 꿈을 찾게 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확고한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나가는 사람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꿈을 찾는 중이다. 남들은 사춘기에 끝냈을 고민을 지금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다행히 다녔던 공기업의 문화가 나와 잘 맞아 공기업 입사를 목표로 세웠다. 이제는 전처럼 아무 곳이나 지원하지 않는다. 거르고 걸러 정말 가고 싶은 회사를 찾아 나가는 중이다. 아직도 많이 어렵고 서툴지만, 그래도 나는 꿈이 없는 직장인보다 꿈을 찾아가는 백수의 내 모습이 좋다. 언젠가는 나의 일을 찾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오늘도 방황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