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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Nov 11. 2019

모순: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 모순적으로 나는 이 책이 좋으면서도 싫다.



책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 2명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주인공 안진진,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미화하는 진진.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 모순적인 주인공이 해주는 말이 내게는 참 위로가 됐다. 왜냐? 나도 끝내주게 모순적인 인간이라서.



Moods Wings (c) Stephan Schmitz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멀어지고 싶다.

함께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다.

뜨겁고 싶지만, 차갑고 싶다.

일하고 싶지만, 자유롭고 싶다.

완벽주의자이지만, 게으르다.

쓸데없는 책임감은 있는데, 책임지는 건 무섭다.

이상은 높지만, 걸맞은 노력은 하지 않는다.

평면적이고 싶지만,



모순투성이인 내가 때때로 좋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 왜 나는 그랬을까? 그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됐나? 후회하며 과거의 나를 질책한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런 것이라고 이 책은 내게 말해준다. 그렇게 내 인생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내게 준 순간, 그때부터 나는 진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니 이해하기로 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책의 주인공인 안진진이 우울해하는 이유는 요즘 청춘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 삶의 부피가 너무 얇디얇아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기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그녀는 고민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온 생애를 걸어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결심이 김장우와 나영규라는 두 남자 사이에서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다 써버린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 더 자신의 커리어와 주체적 삶의 선택권을 가지고 고민할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이 90년도에 쓰인 것을 감안하면 그때의 25살 여성이 할 수 있는 큰 고민은 결혼뿐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결혼'을 기점으로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이모를 보고 자란 진진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부유한 남편을 만나게 되어, 지리멸렬하게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이모. 알코올 중독에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를 만나 결핍만 경험하며 살아가는 어머니. 부족함이란 모르고 살아갈 것 같던 이모가 자살을 한다. '무덤 속 같은 평온한 삶을 견딜 수 없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이모는 떠난다. 그에 반해 주인공의 어머니는 삶이 척박해질수록 삶에서 의욕을 찾는다. 그렇게 원초적인 오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이 이모의 눈에는 진정한 삶으로 보였다. 가장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 불행하고, 불행해야 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책에는 또 다른 모순이 배치된다. 가난한 사진작가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김장우와 현실주의자인 샐러리맨 나영규. 이 두 남자 사이에서 주인공 진진은 갈림길에 스게 된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감옥이 되어 버릴 것 같아 결혼한다면 누구보다 불행해질 것 같은 '김장우'. 사랑하진 않지만, 편안한 상대인 '나영규'. 진진은 김장우와 결혼한다면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나영규와 결혼하면 이모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진진은 이모의 죽음을 목도했지만, 그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 위해 나영규를 택한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삶은 모순으로 짜여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주인공 진진이 다시 한번 모순을 되풀이하는 선택을 한다. 결국, 진진의 삶이 모순으로 관통되는 것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인생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불행은 질서정연하고 계획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진진의 말처럼 인생의 부피를 늘려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 결국 진진이 탐구하던 삶의 본질은 이다지도 슬픈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히려 난 마음이 편해졌다. '인생은 늘 행복해야만 해', '인생에서 틀린 선택은 없어야만 해'라고 생각하던 강박을 내려놓게 되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백대식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이 맡았던 백대식의 대사,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인생은 98퍼센트의 고통과 2퍼센트인 찰나의 행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받아들이면 고통이 찾아와도 무뎌진 감각덕에 크게 아프지 않다. 허무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고통이다 그래서 익숙해져야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또 다른 '안진진'일 지도 모른다고. 실수에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수없이도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추천 대상 : 내 삶이 너무 모순으로 점 칠 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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