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맨부커상 수상작 애나 번스의 밀크맨_Milkman을 읽으며
여러 FLEX들 중에서 가장 최고는 아무래도 지적 플랙스가 아닐까?
나는 지적 허영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인지라, 2018 맨부커상 수상작인 「밀크맨_Milkman」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독서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여러 기사와 좋아하는 작가님의 추천 서평으로 접했던 이 책을 북 카페에서 발견하자,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 압도되는 문장 길이와 호흡. 촘촘하고 빽빽한 글자들과 구분 없는 단락의 막막함이란, 나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두꺼운 이 책의 30쪽을 채 다 읽지 못하고 꾸벅 조는 스스로를 보며 '아, 역시 고상한 인간들만 이런 책을 읽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고상함에 대한 신속한 좌절 그리고 나지막한 비속어와 함께 500페이지가 되는 이 책을 기필코 다 읽어내리라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밀크맨을 번역한 홍한별 역자님과 씨네 21의 이다혜 기자님이 함께하는 창비 북 토크에 당첨이 되었다. 책을 읽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책장을 덮기까지 흥미로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지지부진한 속도로 읽어 내려간 책을 끌어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북 토크. 금요일 저녁, 북 토크에 온 많은 사람들을 보며(와, 근데 여자만 있었다 읍읍) '인간은 역시 사유하는 동물이구나.' 생각했다.
북 토크는 기자님과 역자님의 인터뷰 그리고 참가한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다혜 기자님의 능수능란하고 명쾌한 진행을 보며 완전 팬이 되었다. 누가 어떻게 말해도, 찰떡같이 말하고 싶던 부분만 쏙 골라내서 정리해주시고 의견도 덧대주시고. 저의 지적 허영심에 더욱 불을 지펴주신 기자님 사랑합니다.
D I S C L A I M E R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흐린 눈으로(그래도) 읽어주세요.
(하지만 알아도 책이 재미없어지지는 않는다 확신합니다.)
나는 일촉즉발인 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 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 밀크맨 (Milkman) 中
How I READ?
이 책은 확실 히 뒤로 갈수록 재밌는 책이다. 책을 집어 들어 몇 장 읽고 포기하신 분들은 그 진입장벽을 조금만 견디면, 고상한 지식인이 된 것만 같은 지적 플랙스를 얻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장이 길고 문단이 잘 나뉘어 있지 않아서 읽으면서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대로 책이 쓰여있다. 예를 들어 단어 자체도 '무엇은 뭐다' 딱 명쾌하게 쓰여있지 않고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기도 하고,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 적은 듯한 어투기 때문에 읽는 데 더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걸 문장 하나하나대로 곱씹기보다, 실제로 그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의 말과 상황을 천천히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읽기가 더 수월하다.
밀크맨 (Milkman)의 화자인 17세 소녀는 여러 겹의 위협에 놓여 있다. 단순하지 않은 소설 속 사회에서 내가 주목하게 된 몇 가지 레이어에 대해 써보겠다.
북아일랜드와 영국, 이 책 속에서는 이쪽과 저쪽, 반대자들 등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이쪽에서는 저쪽 사람들이 쓰는 이름도 사용할 수 없고, 저쪽에서 들여온 물건도 사용할 수 없으며 저쪽과 결부된 어떤 것이라고 들킨다면 매장당하게 된다. 이렇게 정치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또 이 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심에 또 조심을 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마저 긴장감에 마비되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씩 무언가가 이상하고, 이상함을 느끼는 게 또 이상한 그런 화자에게 밀크맨이 나타난다.
두 밀크맨이 등장한다. MILKMAN과 Milkman. 밀크맨과 진짜 밀크맨.
밀크맨이라는 이름 자체도 책 속에서 아이러닉 함을 선사한다. 작가가 정말로 영리한 분이라는 걸 느꼈다. 밀크맨이 17세 소녀를 스토킹 하는데, 이게 모두 소녀인 화자가 걸어가며 책을 읽는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소문은 무성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소녀는 그 사회 속에서 어느 순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정치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 마을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 가까운 가족의 불신, 밀크맨의 스토킹까지 17세 화자가 멀쩡히 정신 잡고 있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 된다.
나는 뭐가 있을 법한 일이고 뭐가 나의 상상인지 뭐가 현실이고 뭐가 착각이고 뭐가 피해망상인지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과 정신적 혼란을 점점 증폭시키는 게 밀크맨의 수법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귀결되었는데, 결국 내가 확신을 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가 정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긴 하나? 내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겠는가? 말해봐야 내가 상황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고 믿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내 말을 들어준다고 해도 이곳 사람들은 '쫓아다닌다'거나 '스토킹 한다'는 말에 익숙하지 않아 이해를 잘 못할 것이다.
사방이 어둠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내가 사는 곳에서는 그랬다. 늘 언제나 전깃불이 꺼져 있는 것 같았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해 전깃불을 켜야 하는데 아무도 불을 안 켜고 불을 켜야 한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모두 정상으로 여겨졌고 이곳에서는 잘 안 보이는 게 정상이었고 그렇다는 걸 의식도 못했다.
상도를 벗어난 사람으로는 알약 소녀가 있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알약 소녀의 빛나는 동생이 있고, 지금은 죽었지만 불쌍한 핵 소년이 있고, 엄격하게 설교적인 문제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이 진짜 밀크맨보다 훨씬 이상해 보였다.
이 곳에서 문제 여성들로 나오는 페미니스트들은 비정상적인 일을 당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가장 정상의 사람들"이지만 70년대 사회 속에서 상도를 벗어난, 완전히 맛이 간 사람들로 나온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가장 오래된 친구야,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 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매 순간 예민함을 잃지 않고 프로 불편러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어느 순간 나는 한없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비정상이게 되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이다. 평범함이라는 집합을 구분하려 하지 않고 보통과 그렇지 않은 것, 이름 붙이기의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아야지.
책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명쾌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는 사람들 스스로가 불안하고 그렇게 명쾌해지는 순간 배척당하는 불안한 상황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자 또한 말을 또 고르고, 같은 말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부연이 길어지고, 이는 모두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한 강한 걱정과 염려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님의 말로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할 듯한 절박함에 따라 서술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끔 부연, 형태가 없는 것이 활자로 형태를 띠는 순간 그것을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걸 나는 언어가 가진 큰 힘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데, 예를 들어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일들을 플래너에 계획을 세우면 그 명확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또는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한다'라고 써넣는 순간 그 묵직한 무게가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옇게만 느껴오던 부조리함, 부당함, 이상한 것들이 소설 속의 화자와 함께 소설 속 사건들을 겪어 오면서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 갑갑하고 숨이 막히는 서사의 현실이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며 소름이 돋았다.
우중충하고 어찌 보면 답답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점점 변화되어 가는 등장인물들과 환경을 보며 그래도 꽤 괜찮은 기분, 심지어 기대감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마음으로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과의 시차 9시간, 북아일랜드.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2020년을 코 앞에 둔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겐 70년대 그곳의 이야기는 가장 먼 곳의 이야기이자 가장 남의 소설 속 이야기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이곳의 이야기였고 가장 현실의 이야기였으며 또 가장 우리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