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awer Dec 07. 2019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

생각 좀 하고 살자!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은 ‘생각 좀 하고 사는 것’. 왜냐하면 나란 사람은 생각을 ‘조금’만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흘러넘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에는 생각을 좀만 하고 사는 것이 목표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동물, 인간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능력은 ‘사유’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자체를 다시 성찰하는 고도의 사유 능력은 분명 여타 동식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책 제목처럼 분명 사유하는 인간은 사유를 통해 성장하고, 삶의 진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사유를 사유하다 보면 머릿속은 고뇌로 가득 차게 되어 정상인과 ‘정신적 과인 활동인’을 구분 짓게 되는 기준으로 바뀌어 버린다. 즉 생각의 과잉은 고통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람을 차에 비유한다면, 나는 시동이 오래 걸리는 차라고 할 수 있다. 종종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걸 해야지!’라는 생각이 발현되면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우선 머리에서 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이유를 찾고 나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그 시뮬레이션이 실패할 경우의 플랜 B까지 돌려본다. 그렇게 체력의 배터리가 방전된 나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가 되어버린다. 그럴 만도 하다. 남들은 생각에 에너지를 0을 쓰고, 행동에 100을 쓴다면 나는 이미 생각에 100을 다 소진해버리니 체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여태껏 나는 생각이 많은 나를 좋아했었다. 상상력, 창의력이 좋다는 소리를 줄곧 들었으며 친구들에겐 아이디어 뱅크로 통했다. 생각이 많은 덕에 어릴 땐,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는 말도 들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내가 싫어졌다. 생각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고 경험하는 게 많아지고, 선택 하나하나에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특히 2019년은 내 스스로가 나를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다. 26살, 어느덧 스물 후반으로 사회초년생이 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 것인지?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좀 더 잘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왜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그 꼬리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게 우유부단해졌으며, 결국 생각은 나를 집어삼켰다.
 












JUST DO IT
이런 내게 큰 충격을 준 한 마디가 있다. 스트레칭하면서 무슨 생각 하냐는 인터뷰어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김연아의 대답. 생각을 안 한다고? 그냥 한다고? 이럴 수가! 그제야 나이키가 왜 JUST DO IT을 외치는지 깨달았다. 행동의 햇빛을 들지 않게 하는 수 많은 잔가지, 그것이 나에겐 생각이었다. 나 같은 정신 과잉 활동인은 의식적으로 이런 잔가지를 쳐줘야 한다. 고로 나는 이제 생각 많은 삶의 종식을 선언한다.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니라면, 생각하지 않겠다. 아니다, 이 타고난 본성이 어디 가지 않겠지. 생각 ‘좀’만 하고 살 것을 2020년의 나에게 약속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