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따라 책 따라
독립출판물 제작자인 나에게 독립서점이란 내 책을 독자에게 닿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책은 단순히 존재하기만 한다고 읽히지 않는다. 책의 유통창구인 ‘서점’에 입고되어야만 한다. 독립출판물은 주로 독립서점에 입고되어 판매된다. 하지만 모든 서점에 내 책을 입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을 좋아해 주는, 내 책이 취향인 ‘서점 주인’이 있는 서점에만 가능하다.
독립서점은 대형서점과는 달리 책방 주인의 취향대로 서가를 꾸리기 때문이다. 책장에 올라가는 책 하나하나, 서가 귀퉁이 하나까지도 책방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책이 ㅇㅇ서점에 책장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라며 회신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메일 마무리에 쓰던 그 마음은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심이었다. 독립출판물 제작자로서 그간 여기저기 많은 독립서점을 방문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서울’에서 가본, ‘테마’가 있는, 더욱이 서점 주인의 취향을 많이 엿볼 수 있는 독립서점 6곳을 추천해보려고 한다. (그 책방에서 읽었던 인상 깊은 책 추천은 덤이다.)
서촌에는 곳곳에 한옥 건물이 많아 전통과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서촌과 딱 어울리는 책방이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전직 IT기업 상무가 만든 역사 전문 서점이다. 독립서점을 생각하면 작고 아기자기한 사이즈를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천장도 높고 실내도 널찍하다. 나선형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다락방 같은 공간은 내가 애정 하는 공간이다.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커피 한잔을 시켜서 다락방에서 책을 읽노라면 비밀 아지트에서 여유를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라는 책을 이 책방에서 읽었다. 정말 책방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그림을 통해 근대 사람들의 생각, 문화, 생활을 엿볼 수 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림을 중심으로 근대사를 설명하기에 쉽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진귀한 그림들로 채워져 있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도 든다. 이 책이 더 술술 읽혔던 이유는 ‘서촌’에 있는 ‘역사 책방’에서 읽어서가 아닐까?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 많아지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는 요즘. 고양이 덕후들의 천국을 소개해볼까 한다. 우선 책방 주인부터 고양이 덕질하려고 만든 곳이라 그런지, 고양이 사랑방 같다. 고양이에 관한 책은 물론이고 잡화까지 없는 것이 없다. 책방 주인의 고양이를 향한 마음이 책방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진 않지만, 이곳에 가면 나도 고양이 한 마리를 마음속에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달을 쫓다』라는 책을 여기서 읽게 됐는데, 달을 좇아가는 고양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다.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달을 만져보고 싶은 고양이가 떠나는 길을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묘사하고 있다. 채색이 오로라 같기도 하고, 알사탕같이 달콤하기도 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황홀해지는 책이다. 이 책의 작가 역시 고양이 5마리를 키우는 냥집사라고 한다. 냥집사 혹은 모니터 집사들은 모두 이 책방에서 발길을 멈춰 고양이들과 시간을 나눠보기를 바란다.
음악을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곳. 연남동 음악 전문 서점 ‘라이너노트’. 안에는 포근한 우디향과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른다. 피아노, 턴테이블 등은 공간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공연장 같기도 하고, 어느 음악가의 비밀 작업실 같기도 한 인테리어가 이곳의 매력이다. 라이너노트만의 독특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책을 두르고 있는 띠지. 앞면에는 책의 소개, 뒷면에는 책 속 구절이 쓰여있다. 이 띠지는 전부 운영진들이 한 권 한 권씩 읽고 만들어진다. 그 정성과 진심은 책의 작가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라는 책을 이곳에서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음악평론집이다. 그간 많은 작품 속에서 음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줬던 하루키. 언젠가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던 하루키의 염원이 담긴 책으로, 청소년기부터 자신을 매료해온 11명의 뮤지션과 음악에 대해 본인의 감상과 느낌을 적어놓았다. 그의 음악 취향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하루키의 팬이라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문장 사이사이가 마치 악보 오선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자.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땐, 여행 책방 ‘사이에’에 가보자.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도 좋고, 여행을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을 때 대리만족을 하러 가도 좋다. 이곳에 있는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듯하기 때문이다. 여행 지도, 사진, 기념품 등으로 꾸며진 서점을 거닐다 보면 당장 항공권을 끊고 싶어 진다. 서가는 ‘미식 여행’, ‘예술 여행’ 등으로 테마에 맞춰 책이 꽂혀있는데 내 여행 스타일과 맞는 책을 찾기도 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 성격마다 여행 스타일은 다양하고, 그 스타일마다 느끼는 감정도 여러 개니까.
정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그때, 나는 이곳에서 『몽땅 몰타』라는 책을 만났다. 그때의 나는 쉬고 있는 그 순간에도 도태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어, 쉼이 쉼 같지 않았다. 책의 제목인 ‘몽땅’은 프랑스어로 ‘나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나의 시간을 전부 몰타에서 보내며 느리지만 온전히 나로 채워지는 삶을 경험한 저자의 메시지를 담은 제목이다. 몰타 어학연수에 가 몰타를 사랑하게 된 두 작가가 에메랄드 바다만큼 빛나는 몰타의 매력을 소개해준다.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곳 '몰타'. 작가들이 보내고 온 파라다이스 같은 순간들을 읽으며 나도 몰타에서 ‘몽땅’을 쓰고 싶어 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사이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이곳에 가서 책장 사이사이를 거닐며 여행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조금 행복해지지 않을까?
영화 스태프로 일 하다, 다양성 영화를 알리고 싶어 직접 영화 전문 서점을 연 대표의 취향이 잔뜩 묻어있는 서점이다. 매주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책방 주인은 이 공간을 오는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책방, 누군가에는 영화관. 오는 이가 마음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라 더욱 매력적이다.
『영화카드대전집』은 이 서점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영화 굿즈 전성시대가 열려 포토티켓,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상품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다면 1970~90년대에는 영화 카드가 있었다. 이 시대에 나왔던 영화 카드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한국 영화 역사의 산증인이자 하나의 아카이브라고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당신의 영화 취향을 발견하길 바라며, 시네필이라면 꼭 가보길 추천한다.
많은 도서 장르 중, 유난히 덕후들이 많은 장르가 추리소설이 아닐까? 한번 책을 펼치기 시작하면 덮기 어려워지는 추리소설은,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추리소설 덕후로서 이 서점을 안 갈 수 없었다. 이곳 역시 주인장의 큐레이션이 일품이다. 매달 주제별로 진행되는 도서를 진열과 추리 소설 입문자를 위한 ‘이달의 추천 추리소설’ 등 미처 알지 못했거나 놓쳤었던 추리 소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책장에 꽂혀있던 많은 책 중, 내 마음을 훔친 책은 『별을 스치는 바람』이다. 이 책은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팩션 소설이다. 놀랄만한 반전과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트릭은 기본이거니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다이애건 앨리 같은 분위기에서 책을 읽으며 정말 내가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미스터리 유니온’을 가보자.
*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은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