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글쓰기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제야 할 수 있는 글쓰기에 대해

by 이서랍



한동안 일 때문에 써야 하는 글 이외에는 어떠한 문장도 쓰지 못했었다. 한때는 2주에 한 편 이상 일이 아닌 여러 이야기와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곤 했지만, 최근에는 1년에 글 4편을 완성하는 일도 힘든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 때문에 하루 종일 글을 써야 하는 삶을 살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진 게 아닌지 걱정도 했었다.

그동안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좋은 영화를 보고, 책도 읽고, 공연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하고 난 뒤에는 기필코 내 이야기를 담은 글을 다시 써보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몇 개의 글자만을 남기고 허공에 사라졌고, 그 글자들은 문장조차 되지 못하고 그저 몇 개의 단어 뭉치로 남았었다.

그렇게 읽기만 반복하던 날에 서점에서 표지가 예뻐 무작정 산 소설집의 첫 글을 읽고 나서야 나는 다시 이렇게 내 이야기를 담은 문장들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읽은 글은 백수린 작가의 '아주 환한 날들'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었다.

이 짧은 소설은 사랑의 기억과 상실을 다루면서 동시에 글은 어떤 마음에서 시작하는지를 말하는 이야기였다.

단편 속 주인공은 '그녀'라고 불린다. 70대가 넘은 그녀는 삶에서 사별한 남편, 나를 찾지 않는 딸처럼 여러 가지를 잃었지만 상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빼곡히 가득 찬 삶을 산다.

그렇기에 그녀는 수필 교실을 나가지만, 결국 그 교실이 끝날 때까지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책도 읽어보고 촘촘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생각을 골똘히 해보지만 마음에서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앵무새가 그녀의 삶에 끼어든다. 앵무새와의 관계는 새의 특징을 잘 몰랐기에 먹이만 챙겨주던 단계에서 새가 병을 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로 발전했고, 관계의 문턱마다 그녀는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마주한다.

그녀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 남편과의 옛이야기, 멀어진 딸과의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앵무새에게 마음을 쏟고, 애정을 준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앵무새는 그녀의 삶에서 떠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앵무새의 빈자리를 느끼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가 빈 종이에 '앵무새가 가버렸다'는 문장 한 줄을 쓴 뒤에야 그녀에게는 상실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앵무새가 가버렸다는 문장을 쓰자마자 앉은 채로 눈을 질끈 감기 시작한다.

나 또한 짧은 이야기를 다 읽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건 그녀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이유는 단순히 앵무새와의 이별이 아니라 그동안 무던히 넘어가려 묻어둔 사랑했던 것들과의 이별이 만든 상실감이 한 번에 몰려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 아프게 잃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고, 빈자리가 느껴져야 한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부러진 바늘을 애도하는 '조침문'을 쓴 글쓴이의 마음은 어쩌면 이 글의 주인공이 앵무새를 잃고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한 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내 손이 늘 닿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 동물, 물건, 시간 혹은 그 무엇이 사라졌을 때. 그 상실감이 느껴질 때서야 내가 느꼈던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는 것은 참 얄궂다.

이 글들을 다 읽고 내가 사랑했지만, 내게서 '가버렸던' 그 무언가 들이 생각났고, 상실감의 해일이 몰아쳤다.

감정의 해일 탓에 나는 카페 탁자에서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손수건으로 눈 주변을 오랫동안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제야 느꼈다. 그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단어를 넘어 문장으로 이뤄진 어떤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을 가득 채워두었기에, 사랑했지만 잃어버렸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정의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서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잃어버린 것들의 흔적에서 상실감의 상흔이 보여 무작정 메모장에 글을 채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 빈틈없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를 잃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참 씁쓸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해 서글펐는지도 어설프게 가늠해 봤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잃어버릴 걸 알지만, 온기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나의 일상 속 상실을 발견했으니, 부디 마음에서 글이 나오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나를 위해서,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갇혀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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